ADVERTISEMENT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시리아 내전과 킬링필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5호 29면

시리아 내전의 사망자가 반정부 시위 발발 22개월 만에 6만 명을 넘어섰다. 유엔은 이달 초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모두 5만964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반군 측은 최근 사망자가 4만5000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를 내놓았는데 유엔 통계는 친정부 세력 사망자까지 합쳤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나비 필레이 유엔 최고인권대표는 희생자 통계를 발표하면서 “아직도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사망자는 올해 초 6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담당 특사는 지난해 12월 말 “내전이 한 해 더 지속되면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리아 내전은 이미 21세기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협상 가능성이 작아 비극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처음엔 독재와 민주의 싸움으로 보였던 시리아 내전이 이젠 이슬람 종파 각축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반군을, 이란은 친시아파 집권세력을 각각 물밑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전은 중동·이슬람권의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수니파 국가 터키는 보다 복잡하다. 시리아 사태를 지역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삼는 것은 물론 자국과 시리아 모두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쿠르드족도 견제할 목적에서 활발한 개입을 하고 있다. 시리아 국민이 죽어나가는 동안 이웃 나라들은 주판알을 튕기며 국익을 계산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희생자가 6만 명을 넘었다는 발표가 나와도 국제사회 반응이 미지근하다는 점이다. 유엔에선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인권이나 인도주의라면 버선발로 달려나갔던 서구국가들도 이번만은 조용하다. 이는 서구세력의 세계사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간 국제사회가 인도주의 범죄를 허술하게 단죄해온 것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학살이 대표적이다. 공산세력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장악한 캄보디아에선 대대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처형이나 굶주림·질병 등으로 1975~79년 이 나라 인구 800만 명 가운데 170만~2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방은 이를 두고 킬링필드라고 불렀다. 신원이 파악된 희생자만 136만6734명이다. 발견된 집단매장 구덩이가 2만 개가 넘는다. 97년 캄보디아 정부는 유엔에 대량학살 전범 재판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재판 절차와 판사 구성을 합의하는 데 9년이 걸려 2006년에야 판사가 임명됐다.

그나마 지금까지 실형이 확정된 전범은 악명 높은 S-21 교도소(현재 학살 견학시설로 유명) 소장이던 캉 켁 이우 정도다. ‘죽음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불리던 이곳에서 4년 동안 1만2000명을 학살한 책임자다. 그는 학살·고문 등의 죄목으로 3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여러 이유로 19년으로 감형됐다. 지난해 2월 유엔 특별법원 항소법정에 와서야 범죄가 충격적이고 가증스럽다는 이유로 형벌이 종신형으로 늘었다.

유엔까지 나선 반인도주의 범죄 응징이 겨우 이 정도다. 그러니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수백만 명을 학살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사회는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무것도 없다. 21세기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자 서구세력의 현주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