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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에 두손 든 정치권 ‘연금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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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철우(오른쪽)·이언주 원내대변인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의원연금 폐지 합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 여론이 정치권의 꼼수를 이겼다. 여야가 본지 보도(1월 10일자 1, 5면)를 계기로 논란이 됐던 국민연금 추진 방안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철우, 민주통합당 이언주 대변인은 11일 “국회에서 다시 의원연금제를 들고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연금 문제와 관련해 물의를 빚은 부분은 정치권이 깊은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사과했다.

 의원연금 도입 추진의 출발점은 헌정회원(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연로회원 지원금 문제였다. 지난해 8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 쇄신 요구가 거세지자 여야는 공동으로 국회 쇄신특위를 구성하고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정부 예산으로 월 120만원씩 평생 주는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을 줄이거나 없애겠다고 했다. 이 돈은 전직 의원들의 재직 기간이나 범법 행위 여부와 관계없이 65세가 넘으면 무조건 지급하게 돼 있어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 논란과 함께 지급 대상의 적절성 논란까지 계속돼 왔다. 그러자 쇄신특위는 지난해 11월 연로회원 지원금을 폐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국회 쇄신 과제’를 발표했다. ▶향후 퇴직하는 의원에겐 지원금을 주지 않고, 기존 수급자에 대해서도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또 제명되거나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엔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쇄신특위는 헌정회 지원금을 없애는 대신 의원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을 물밑에서 추진해 왔다. 본지가 입수한 당시 쇄신특위 합의안엔 “공무원연금과 같은 범주에서 국회의원 연금제도 논의가 필요하다”며 “외부 전문가에게 연금 도입 방안에 대한 용역을 의뢰해 65세 이후 의원들의 연금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엔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일했다고 연금까지 챙겨 먹음?”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니 문제가 될 수밖에”라는 비난 글이 이어졌다. 트위터에서도 “일반 국민이 30년간 국민연금을 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단 4년 만의 공직 수행으로 받아내겠다는 건데, 그럼 우리도 이런 혜택을 달라고 시위라도 해야 하는가” “연금법을 통과시키는 대신 국민소환제를 도입해 국민이 국회의원을 해산시킬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면서 정치권 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여야는 “우리가 의원연금을 추진하겠다는 게 절대 아닌데 그렇게 알려졌다”거나 “일부 의원이 연금제를 거론한 적이 있고, 외국 주요 나라에서 시행하는 의원연금제를 검토한 적이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여론이 누그러지지 않자 새누리당 김기현, 민주통합당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11일 오후 만나 “의원연금 추진은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또 지난해 예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헌정회 지원금 폐지를 비롯한 국회의원 겸직 금지 등의 정치 쇄신안도 조속히 처리키로 했다.

 장승진(정치학) 국민대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특권을 내려놓겠다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며 “국회는 의원연금 등과 같은 제도에선 먼저 국민 여론을 살피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원연금 추진에서 백지화까지

▶ 2012년 8월 22일=국회 쇄신특위 구성, 특권 내려놓기 선언
▶ 11월 22일=쇄신특위, 전직 의원 지원금 폐지 등 발표. 의원연금 도입 검토는 비공개
▶ 2013년 1월 1일=국회 예산안 심사서 전직 의원 지원금 128억원 통과
▶ 9일=여야, 전직의원 지원금 폐지 법안 조문화 완료
▶ 10일=본지, 의원연금 추진 첫 보도
▶ 11일=여야, 의원연금 백지화 공식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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