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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만델라는 어떻게 국부가 됐나, 여기 그의 육성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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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7년 수감생활 중 18년을 지낸 로벤 섬의 감방을 찾은 넬슨 만델라. 아래 작은 사진은 1990년 1월 13일자 일기. 만델라는 글을 또박또박 썼다. [사진 RHK]

나 자신과의 대화
넬슨 만델라 지음
윤길순 옮김, RHK, 564쪽
2만5000원

넬슨 만델라(94)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부(國父)다. 제8대 남아공 대통령이지만 다인종 민주주의 시대를 개막했다는 점에서 국부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1732~99)과 만델라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인종차별 철폐를 압박한 국제여론이라는 ‘외세’ 없이는 워싱턴도 만델라도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해방과 민주주의의 아이콘인 이들은 자국의 지폐를 장식하고 있다. 둘 다 국민의 강요로 마지못해 대통령이 되는 형식을 취했다.

 워싱턴과 만델라는 그들이 이룩한 대업 때문에 좀 멀게 느껴지는 지도자들이기도 하다. 만델라의 자서전인 이 책은 ‘인간 만델라’에 다가갈 흔치 않은 기회를 선사한다. 27년 수감생활 등 80여 년에 걸친 만델라의 일기·서신·인터뷰·메모·연설문을 묶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문을 써 화제가 됐다.

 600만부가 팔린 만델라의 예전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1995)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도록 편집됐다. 반면 『나 자신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myself)』는 그런 식의 편집은 거치지 않았다. 원문 그대로의 생생함과 솔직함이 있다. 만델라는 출간 작업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만델라가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94년 대통령이 되며,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읽는다. 기록광인 만델라가 기록을 꼼꼼히 남길 때 그런 보장은 없었다.

 만델라는 변호사로 편하게 살 수 있었으나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가담했다. 백인 정부는 만델라가 흑인자치구에서 거주하고 무장투쟁을 포기하면 석방시켜주겠다고 설득했다. 만델라는 달콤한 제안을 거부하고 죄수번호 466/64로 남았다.

 만델라는 75년 둘째 부인 위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방은 자신에 대해 알게 해주는 이상적인 장소다”라고 적었다. 62년 투옥된 중년의 만델라는 90년 백발 노인이 돼서야 석방됐다. 젊은 만델라의 사진을 보면 무함마드 알리와 같은 힘찬 결연함이 엿보인다. 감옥의 성찰을 거친 만델라는 성인의 모습으로 출감했다. 어머니와 아들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는 아픔 속에서도 만델라는 감옥에서 자신감과 겸허함을 겸비한 흔치 않은 위인이 됐다.

 만델라는 평생 전통과 서구 문화, 폭력과 비폭력, 복수와 화해의 갈림길에 놓였다. 1918년 농촌 지역인 트란스케이에서 왕족으로 태어난 그는 부족관습에 따라 성인식을 치렀지만 감리교 신자가 됐으며 최고의 영국식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만델라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가 공산주의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61년 만델라는 ‘민족의 창’이라는 군사 조직을 만들어 사령관이 됐다. 인명 희생의 최소화를 원칙으로 삼았지만 공공 시설을 공격한 것도 사실이다. “비폭력은 내가 믿는 원칙이라기 보다는 전술”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는 그는 역사와 고전에 해박하며 인종과는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선각자다.

 만델라는 2004년 “내가 전화할 테니 먼저 전화하지 말라”며 모든 공무로부터 은퇴를 선언했다. 하루 종일 파자마 차림으로 지내고 있는 그는 최근 몇 년간 병원 출입이 잦다. 그가 역사의 성인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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