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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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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서영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3학년

아침 여덟 시. 맑은 공기로 상쾌한 시각. 저마다 책임 두 동강씩 양 어깨에 올려놓은 이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일터로, 학교로 분주히 움직인다. 늘 그랬듯 버스는 만원이다. 좌석에 앉는 건 이미 포기. 천장에 매달린 링 도너츠 하나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가까스로 운전석 가까이 있는 봉 하나에 몸을 지탱했다. ‘얼른 출발해 버렸으면 좋겠다’. 맘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버스가 도통 출발하질 않는다. 여기저기서 시퍼런 볼멘소리가 들린다. “기사님 출발 안 해요?” “거 참, 버스 언제 갑니까”. 승객들 호통이 거세다. 그러다 ‘똑 까악’ 버스 문이 열린다. 남학생 세 명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버스에 올라탄다. 한 명은 얼마나 달렸는지 안경 한쪽이 빨개진 볼 아래 걸려 있다. 기사님, 그제야 한마디를 남기신다. “죽기 살기로 뛰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요.”

 지난 한 해 나는 불안한 아이였다. 집안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휴학을 한 뒤 맞이한 삼학년이었다. 또래 친구들에 뒤처진단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겁을 줬다. 삼학년은 발음부터 ‘사망년’이라며 정신을 바짝 차리랬다. 사학년은 어떠랴. 앞에 붙은 ‘사(死)’부터가 심상찮다. 추억보단 취업을, 적성보단 돈을, 꿈보단 현실을 영혼에 새겨야 하는 시간. 학년이 오르고 나이가 들수록 꿈도 짙어져야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다.

 대학생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 교과부가 실시한 진로교육조사에서 2만여 명의 초·중·고생 아이들 반 이상이 자신의 인생 목표를 ‘돈’이라 답했다. ‘보람’은 최하위였다. 초롱초롱 빛나야 할 아이들의 꿈에도 현실의 그림자가 덧씌워져 있다. 눈치 보며 깎아낸 꿈엔 절박함이 덜하다. 자기 꿈을 향해 뚜벅뚜벅 힘차게 걷는 이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그래서일까. 어느 평범한 날의 아침풍경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친다. 버스를 타려고 죽을힘을 다해 뛰던 세 명의 남학생의 모습이다. 그들에겐 버스를 타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한 목표였지 않았을까. 한껏 뛰어 버스를 놓치기도 수십 번, 떠난 버스 뒤에서 울상 짓던 날도 있었을 것. 그래도 한결같이 내달리다 보면 누군가는 뜨거운 진심을 봐줄지도 모른다. 바쁜 아침 버스를 기다려 주던 그날의 기사님처럼.

 앙드레 말로는 말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새해가 벌써 십여 일 지났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올해엔 다시 자기 꿈과 열렬히 닮아가는 시간을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 가슴 저 밑자락에 묻어둔 소중한 꿈이 있거든 계사년(癸巳年) 밝은 기운으로 당당히 꺼내 보자. 운동화 끈 바짝 조이고, 다시 한 번 뛰어보자. 목표를 향한 열정이 통할 날도 머잖아 오리라. 죽기 살기로 뛰는데 그냥 지나칠 사람 없지 않겠는가.

최서영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