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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업,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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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왼쪽부터 김영모 명장, 권상범 명장, 김상용 대표.

지난해 한국 사회는 ‘빵’으로 들썩였다. ‘골목빵집’ 업계의 모임 격인 대한제과협회가 프랜차이즈 빵집 체인을 규탄하자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일부도 “프랜차이즈 빵집 가맹점주 역시 영세 자영업자”라고 맞섰다. 동반성장위원회조차 지난달 27일 제빵업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한 달 뒤로 연기하는 등 좀처럼 ‘빵의 충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해에도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중재안 논의마저 중단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인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법제화를 검토 중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제과 명장인 원로와 스타 제빵인 등 3인에게 골목빵집 업계의 부활 방안을 물었다.

◆김영모=‘김영모 과자점’을 운영하는 김영모(60) 대표는 2007년 ‘대한민국 제과명장’으로 선정됐다. 1982년 서초동에 20㎡(6평) 규모의 빵집을 직원 4명과 시작한 지 25년 만이다. 지난해 은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그는 강남에서 베이커리 세 곳과 카페 한 곳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맞서고 있다. 김 대표는 “동네빵집 점주들이 경쟁력 강화 노력을 못한 것이 문제 악화의 한 이유”라고 자성하면서도 “동네빵집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독일의 빵집협동조합 ‘베코(BAKO)’를 동네빵집 부흥의 모델로 제시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베코는 550명의 동네빵집 주인이 조합원으로, 7000만 유로(약 98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2007년 기준). 식재료, 제빵기계, 포장지까지 저렴하게 공동 구매하는 게 경쟁력의 핵심이다. 베코는 마케팅·영업 컨설팅도 제공한다.

 김 대표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명장조차 창업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기능인에게는 신용대출 같은 금융 혜택의 폭을 넓혀 창업이 쉽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상범=지난해 1월 비싼 임대료 탓에 30년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은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 창업주인 권상범(68) 제과명장은 최근 서울 연희동에 새 매장을 열었다. 79년 서울 성산동에서 시작한 리치몬드는 연희점 외에 성산·ECC점과 제과학원을 운영 중이다. 권 대표는 “소비자의 식성은 변했는데 오너 셰프(빵집 주인)들이 공부를 하지 않은 게 동네빵집이 무너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권 대표는 “제빵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했다. 무너진 동네빵집을 되살리는 방법으로는 ‘기술 전수’를 강조했다. 국내의 대표 제과 조직인 한국제과기능장협회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대한제과협회에서는 그 기술을 전수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그가 93년 세운 ‘리치몬드 제과기술학원’에서는 400명이 넘는 제빵기술자가 배출됐다. 권 대표는 또 “내 자식에게는 제빵을 시키지 않으려는 제빵인이 늘어난다”며 “한국도 독일·일본처럼 기술인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용=롯데백화점 평촌점 지하에 지난해 4월 들어선 ‘옵스(OPS)’는 89년 부산 남천동의 동네빵집 ‘삼익제과’로 시작해 백화점에 입점했다. 월평균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평촌점 식품 중 전체 1위, 화장품·의류 등을 모두 포함해도 전체 3위의 호성적이다. 김상용(50) 옵스 대표는 그 비결을 “수제빵 덕분”이라고 했다. 냉동 생지(반죽)를 쓰지 않고 빵을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국내에선 여간해선 수제 빵집이 성공하기 힘들다”며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같은 잣대로 재는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일본·프랑스는 핸드메이드 빵집에 대한 식품 규제가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첨가제를 넣거나 냉동한 제품은 그 표시를 확실히 해 소비자에게 정보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가 프랜차이즈 빵 대신 실력 있는 파티시에가 손으로 만든 빵을 더 많이 사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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