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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살 보도 방식 문제 많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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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기자실에서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인 하규섭 국립서울병원장이 예정에 없던 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하 원장이 발표한 스타 자살의 사회적 후유증은 충격적이다. 자살한 연예인 5명을 연구한 결과 스타 한 명의 비보가 전해지면 평균 600명이 그 영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추정이다. 스타들의 생명 경시도 문제지만 신중하지 못한 보도 행태에도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다.

 야구선수 조성민씨의 사망 이후 우리 언론이 보여준 보도 방식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우선 보도의 분량·배치가 과했다. 거의 모든 방송사 메인뉴스는 조씨 사망소식을 2~4번째 꼭지로 전면 배치했다. 한술 더 떠, 다음 날 아침 교양·시사 프로그램은 10~20분씩 와이드 편성해 무분별한 경쟁을 벌였다. 일부 신문과 인터넷매체도 1면이나 상단에 며칠째 기사를 배치했다. 자살 동기를 단정하거나 수법을 자세히 알려주는 문제점도 여전했다. ‘조씨 사망원인은 XX 때문’ ‘XX 채 발견돼’ 등을 자막·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최근 입시철을 맞아 ‘성적 비관 수험생 아파트 투신자살’ 기사도 여과 없이 내보냈다. “한 가지 이유라면 자살할 사람이 너무 많다. 자살 원인은 복합적이다. 청소년이 성적을 비관해 15층에서 자살했다는 보도를 자주 하면 그걸 접한 청소년은 성적이 떨어질 때 15층 옥상을 떠올린다”는 하 원장의 지적을 언론은 되새겨야 한다.

 동조적·동정적 시각 역시 바뀌지 않았다. TV 예능프로그램은 조씨 사망을 계기로 자살 충동 관련 토크코너를 잇따라 편성했다. 인기 연예인이 나와 “그때 나도 사회 부적응으로 죽으려 했다” “수면제 90알 먹었다” “오죽 했으면 자살했겠나” 등의 입담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자살을 미화하고 도피 수단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자살예방협회는 ‘자살보도 실천요강’을 제정한 바 있다. ▶낭만적 해결책으로 포장하기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하기 ▶원인을 단순화하기 ▶유명인 자살을 주요 기사로 싣기 등을 금지 강령으로 규정한다. 몇몇 강령만 지켜도 언론이 ‘자살의 조력자’로 취급받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언론은 “자살 보도를 접할 때마다 자살 생각이 든다”는 한 청소년의 상담 내용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