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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택시·조성민·재벌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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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논설위원

당신이 다음 문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소신껏 OX를 표시하면 된다.

 ①데이트를 하던 남성이 여성을 폭행했을 경우 가중 처벌이 필요하다.( ) ②청소년 범죄 억제를 위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의 연령을 현행 14세 미만에서 12세로 낮춰야 한다.( ) ③교사를 폭행한 학부모에 대해서는 가중 처벌을 해야 한다.( )

 이 세 가지 문항 중 2개 이상에 O 표시를 했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있다. 지난 1일 의원 222명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택시법’과 동일한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례들은 류여해(40·형사법) 박사의 『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에서 추려낸 것으로 그가 입법 지원 조직인 국회 법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목격했던 법안들이다. 그를 만나 물어봤다.

 -택시법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누구나 탈 수 있어야 대중교통이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 가운데 가정 형편 때문에 택시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 그렇다면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 포함시켜 버스 차로를 달리게 할 순 없다.”

 -데이트 폭력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데이트를 한번 정의해 보라. 처음 만났을 때? 함께 밥 먹는 것? 손 잡는 것? 뽀뽀하는 것? 어느 단계부터 데이트라고 말할 수 있는가.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을 법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 그래도 법의 취지는 좋은데.

 “법은 좋은 취지만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법이 남용되면 생활을 구속하고 범죄자를 양산한다. 데이트 폭행, 학교 폭력, 학부모 폭행이 나쁘다고, 택시 기사의 근무여건이 열악하다고 특별법으로 ‘특별한 계층’을 만들고 그들을 ‘특별한 일상’ 속에 살게 해서야 되겠나.”

 류 박사는 이런 법률들을 ‘범죄유발성 법’ ‘마이너스 법률’이라고 부른다. 법이 선량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고 혼란과 불편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범죄유발성 법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수많은 특별법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의 범죄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이 많다 보니 검사가 어떤 법으로 기소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마이너스 법률’로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규정을 꼽았다. 의사 과실이 없는 분만 중 사고도 30%의 보상 책임을 지게 한 결과 산부인과 진료과목에서 아예 분만을 빼버리게 된다. 류 박사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의원들의 법안 발의 실적 경쟁과 법제실의 비전문성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와 헤어지고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조성민’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2008년 최진실씨가 숨진 뒤 자녀의 친권과 유산이 전 남편 조씨에게 넘어가게 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변협이 “친권 상실 선고 등 기존 민법 규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친권 자동 부활을 금지하는 조항이 도입됐다. 타당성 여부를 떠나 법이 최씨 이름으로 불린 건 특정인을 향한 집단적 정서가 입법의 동력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새해 들어 다시 시동을 건다는 ‘재벌 총수 집행유예 차단’ 법안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막강 파워의 회장님들이라고 해도 특정 그룹에 대해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게 과연 법 체계에 맞는지 의문이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끔 현행법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게 옳은 방향일 것이다.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악법은 대중의 호응을 받는 곳부터 범위를 넓혀가기 마련이다.

 택시법은 이제 국회가 ‘포퓰리즘 입법’의 포로가 됐음을 드러내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보수-진보를 넘어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음에도 특정 대중을 위해 복무했다. 발의자 명단엔 법을 안다는 율사 출신도 있었다. 법의 정신이 빠진 법 만능주의 사고는 가치 갈등에든, 이익 갈등에든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국회에 핸들을 맡긴 지금, 택시법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