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철호의 시시각각

정리해고를 다시 정리하자

중앙일보

입력 2013.01.08 00:00

업데이트 2013.01.08 00:00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사태가 또 뜨거운 감자다. 정리해고자들의 철탑 농성과 희망버스를 보며 7년 전 영국과 프랑스의 입씨름을 떠올린다. 영국 좌파와 노조는 “프랑스 노동자보다 영국 노동자들이 해고되기 쉬운 열 가지 이유”라는 반박문을 내놓았다. 그중 몇 가지를 우리와 비교해보자.

 ① 프랑스는 해고 시 5개월 전에 알린다. 영국은 3개월이다. → 한국은 50일 전 통보한다.

 ② 프랑스는 정리해고 때 최소한의 노사협의 횟수가 법으로 규정돼 있다. 영국은 그런 의무규정이 없다. → 한국도 없다.

 ③ 프랑스는 노조가 선임한 회계사가 경영 악화로 정리해고가 마땅한지 살핀다. → 한국은 사용자의 양심에 맡긴다.

 ④ 프랑스 정부는 사전 자구노력 여부에 따라 정리해고를 제한한다. → 우리 노동부는 부당해고 여부만 가린다.

 ⑤ 프랑스의 1인당 정리해고 비용은 평균 1억7000만원이다. 인력 재배치, 재교육, 재고용, 사회보장 비용도 내야 한다. → 한국은 없다.

 ⑥ 프랑스 정치가는 정리해고 기업을 욕한다. 영국 정치인은 시장에 책임을 미룬다. → 우리 여당은 팔짱을 끼고, 야당은 희망버스만 탄다.

 물론 프랑스의 정리해고 제도는 홍역의 산물이다. 화염병과 가두시위, 보스내핑(경영진 납치)은 애들 장난이었다. 2000년에는 정리해고 당한 프랑스의 셀라텍스 근로자들이 새 직장을 달라며 맹독성 황산 5000L를 뫼즈강에 쏟아부어 버렸다. 프랑스는 물론 이 강이 관통하는 네덜란드·벨기에까지 덜덜 떨었다. 재미를 본 프랑스 운송 노조도 센강에 독극물 살포를 위협했다. 이후 프랑스 노사관계의 중심축은 임금협상에서 정리해고로 옮아갔다.

 냉정하게 따지면 쌍용차·한진중 사태는 미래가 안 보인다. 국정조사로 풀릴 문제라면 그깟 국정조사 수백 번 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 청문회는 한진중 사태를 만성질환으로 악화시켰을 뿐이다. 희망버스 역시 ‘우리도 언제 정리해고될지 모른다’는 국민의 불안심리와 막연한 공포심에 편승하는 느낌이다. 솔직히 대한문에서 농성하는 쌍용차 정리해고자의 복귀 가능성은 희박하다. 경영이 나아져도 사내 유급휴직자(90여 명)→무급휴직자(455명)→희망퇴직자(1904명)→정리해고자 순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아직 무급휴직자조차 재취업 엄두를 못 내니, 차라리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재정으로 전직(轉職)을 지원하는 게 합리적 수순으로 보인다.

 우리 고용시장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고원(高原)구조다. 대기업 정규직도 정리해고되는 순간 절벽으로 추락한다. 그럼에도 올해 대기업들은 구조조정의 일상화를 예고하고 있다. 감정 대신 이성적으로 정리해고에 접근할 때다. 우리 정리해고의 고질병은 불신과 불투명이다. 노사가 서로를 믿지 못하니 파국으로 치닫는다. 정리해고 제도부터 다시 한번 정리해야 한다. 우선 해고 예고기간을 석 달 이상 늘렸으면 한다. 근로자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 가능해야 불안감을 덜 수 있다. 노동위원회 등이 지명하는 중립적인 회계사가 경영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법적 근거도 마련했으면 한다. 정리해고에 앞서 경영진이 자산매각이나 출자전환을 통해 자구노력을 다 했는지도 면밀히 따져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 구조조정인지, 사용자의 자의적인 판단인지 믿을 수 있게 된다.

 시장은 냉혹하다. 강한 노조가 일자리를 지켜주던 시대는 끝났다. 기업들이 잘나갈 때 미리 고용안정기금을 거둬 충분히 쌓아야 고난의 시절에 대비할 수 있다. 당연히 그 기금의 운용은, 쓸데없이 고용보험을 수천억원씩 헐어 직업체험관이나 세운 고용노동부에 맡길 일이 아니다. 길게 보면 사회적 형평성도 감안해야 한다. 정리해고자들의 눈물겨운 몸부림과 대조적으로, 다른 한쪽에선 하루빨리 명예퇴직을 하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도 있다. 교사·군인·공무원 등 특수직 연금 대상자들은 6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평균 소득의 70% 이상을 연금으로 받는다. 한쪽에선 일자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고, 다른 쪽에선 국민 혈세에 기생해 북유럽 뺨치는 연금복지를 누리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런 일그러진 ‘양극화’를 바로잡지 않으면 한강도 언제 프랑스 뫼즈강처럼 독극물의 비극을 맞을지 모른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