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저 수평선 너머로 새로운 태양

중앙선데이

입력 2013.01.06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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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27면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달력 속의 인위적인 경계일 뿐이지만 매듭과 단계를 의식하는 일도 필요하리라. 시간의 변곡점마다 생각도 함께 변모할 수 있다면 이생의 지긋지긋함에서 때때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출발점에서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나의 언어는 무엇일까. 머리가 텅 빈 듯해서 남의 생각을 차용하기로 했다.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어떤 블로거의 좌우명인지 아이디 밑에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이성적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적으로 낙관하라.’ 고승대덕의 해타인 듯 느낌이 팍 온다. 그래, 오케이. 의지적으로 낙관하자. 그게 늙어 깃털이 다 빠져가는 자의 인생에 대한 예의다. 불안, 떨림, 방황, 혼돈 따위의 시끄러운 깃발은 20~30대에게 물려주자. 그리고 지금 듣고 있는 사적인 신년 하례곡이 본 윌리엄스(작은 사진)의 ‘바다의 교향곡’이다. 곡 이전에 작곡가 이야기가 먼저 필요하다. 본 윌리엄스, 엘가, 딜리어스, 벤저민 브리튼, 심지어 마이클 티펫까지. 이들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지루한 작곡가들이라는 점이다. 왜 그럴까? 영국인이니까!
두어 차례 방문해 본 런던이 결코 지루한 도시는 아니었다. 피커들리 거리의 펑크족들은 데카당스와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잇는 듯 활기차고 파괴적으로까지 보였다. 그렇지만 그래 봤자 영국이다. 임어당의 고저 생활의 발견에 나온다. 균형 잡힌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낮은 유머지수와 평균적인 감수성. 한마디로 영국인은 오로지 재미없고 성실한 모범생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못 말리는 자기중심성이라니. 유럽에 오래 살았던 친구가 말한다. “걔들은 베토벤보다 엘가를 더 높이 치더라고!”
고전음악을 듣는다 함은 독일계에 함몰되거나 이탈리아계에서 춤추는 일이다. 간혹 프랑스·동유럽·러시아 계통이 틈입하지만 영국의 자리는 없다. 실제로 들어보면 그렇다. 거의 찬송가 수준의 지루한 선법과 고루한 구조들이 한없이 이어지는 것이 영국 대표 작곡가들의 음악이다. 그런데 뭘 잘못 알고 있는 점은 없을까. 왜 영국의 신사숙녀들은 바다의 교향곡처럼 숨이 찰 정도로 스케일은 크고 지루할 정도로 정형적이고 하염없이 심각하기만 한 곡에 열광하는 것일까. 바다의 교향곡을 필두로 ‘런던’ ‘남극’ 등 아홉 곡이나 되는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들을 진지하게 들어본다면 이유를 알게 될까. 우선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이 영국음악 특유의 기질이 ‘격조’의 산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영국이 낳은 금세기 최고의 작곡가라고 교과서에 도장이 콱 박힌 본 윌리엄스의 음악도 바르토크, 코다이처럼 지방 민요채록에 자양을 두고 있건만 그 안에 담긴 본질은 인간에 대한 성찰, 생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 등으로 묵직하다. 정면으로 교과서적인 것을 추구한 음악적 분위기가 때론 지루함으로 때론 격조로 다가오는 것이다.
‘월터 휘트먼의 시에 의한 소프라노, 바리톤,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바다의 교향곡’은 그의 1번 교향곡에 해당된다. 1910년 초연되었으며 각 악장에 ‘모든 바다, 모든 배를 위한 노래’ ‘고독한 밤의 바닷가에서’ ‘파도’ ‘탐험가’ 같은 표제가 붙어 있다. 전 4악장 가운데 꽤 활발한 1악장에 이어 거대한 칸타타처럼 구성된 4악장에서 목소리의 장관을 느껴볼 수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은 뼛속까지 영국인인 존 바비롤리나 에이드리언 볼트 지휘로 들어야 제격이다. 송년음악으로 베토벤 9번 ‘합창’이 사랑받듯이 신년맞이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류만 즐길 것이 아니라 이 거창한 ‘바다’는 어떨까 싶다.
자기 앞의 생이 혹은 이 시대가 비관의 아이템으로 그득한 것은 누구나 안다. 지금 공허하게 ‘가자 희망의 나라로!’를 외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의지적인 낙관’이 꼭 노숙, 연륜의 품목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다교향곡에서 지루함 대신 격조를 느끼는 영국인처럼, 이 비관 충만의 시대에 낙관을 구가하는 것도 일종의 품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낙관하는 청춘이라니 얼마나 낯설면서도 신선하고 새로운가. 다만 낙관의 근거를 묻지는 말아 달라. 부디 낙관의 의도를 따지지도 말아 달라. 왜? 새해가 밝았으니까!
사족 하나. 엘가나 본 윌리엄스 교향곡을 이 악물지 않고 듣는 법을 알아냈다. 애주가들 귀가 번쩍 뜨일 말일 텐데, 술 그중에서도 독한 양주를 조금씩 홀짝거리며 듣는 것이다.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내가 지금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레미마틴을 석 잔째 홀짝거리고 있다. 아으, 바다가 춤추고 지나온 세월이 만화경처럼 빠르게 스쳐가고 우뚝, 저 수평선 너머로 새로운 태양이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네. 새해의 말씀인즉 의지적 낙관이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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