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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개표부정 ‘괴담’… 사이버공간, 자정능력 보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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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8대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사이버 공간에선 대선 불복 운동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개표부정이 저질러졌으니 재검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검표가 완료될 때까지 선거 결과에 불복하자는 주장이다. 한 인터넷 토론방에서 ‘재검표 청원’ 온라인서명이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나 사실이 있다면 재검표를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사이버 공간을 떠도는 주장 중 대부분은 객관적·합리적 근거가 희박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퍼뜨린 의도적이고 황당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적절하지 못한 개표기를 썼다’ ‘일부 지역에서 투표자수와 개표 결과 투표수가 불일치한다’는 주장은 개표 과정에 대한 오해와 정보 부족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부정선거를 은폐하기 위해 서둘러 투표지를 소각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200만 표의 무효표가 발생했다’ 등의 악의적인 ‘괴담’까지 넘쳐나고 있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개표 과정에서 심각한 수준의 실수·부실은 발견되지 않았다. 더욱이 당락을 좌우할 만한 조직적 부정이 저질러졌음을 의심할 만한 작은 단서조차 나온 게 없다. 선거에 패한 문재인 후보 진영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선거부정을 눈감는 민주당과 문 후보를 압박하자’는 주장까지 퍼지는 판이다. 그간 대응을 자제해 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어제 발표자료를 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주장이 도(度)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팩트와 합리적 의심에 뿌리를 둔 주장은 민주사회의 질서를 떠받치는 초석이다. 하지만 객관적 근거가 없는 부정개표 주장은 선거 결과에 따라 권력을 주고받는 민주주의 기본정신을 허무는 행위다.

 50여만 표 차이로 승부가 난 16대 대선 때도 이번과 비슷한 개표부정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대법원이 나서 재검표를 실시하는 등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뒤에야 의혹을 제기한 측이 사과하고 넘어갔다. 사이버 여론은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스스로의 자정능력으로 괴담을 추방해야 한다. 자기가 찍지 않은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결과에 승복해야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