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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시청률 대박 '선덕여왕', 3년만에…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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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법원이 43.6%의 시청률로 역대 드라마 시청률 10위를 기록한 MBC 드라마 ‘선덕여왕’을 표절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5부(부장 권택수)는 24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1000만원 등 2억원을 배상하라”며 사실상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뮤지컬 제작사인 ‘그레잇웍스’ 김지영 대표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창작뮤지컬 ‘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표절했다”며 MBC와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 재판에서다. “표절이라 보기 힘들다”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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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는 ‘선덕여왕’의 지상파·케이블·DMB·인터넷 재방영을 금지하고 DVD나 서적 등 2차 저작물에 대한 판매를 금지했다. ‘선덕여왕’은 광고 수입과 해외 수출 등으로 총 540억원대 수입을 올린 ‘대박 드라마’다.

 이번 판결은 2004년 법원이 MBC 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이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를 표절했다고 판단한 이후 드라마 표절 소송에서 나온 두 번째 원고 승소 사례다.

 ‘선덕여왕 표절’ 소송의 핵심 쟁점은 ▶뮤지컬 대본을 피고가 접했는지 여부 ▶주제·줄거리의 유사성 ▶등장인물의 관계 및 성격의 유사성 부분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을 연구하며 뮤지컬·출판·전시 등을 기획한 ‘로즈오브샤론’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MBC가 책 발간 등을 이유로 원고와 접촉한 점 등으로 미루어 대본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어 주제와 줄거리·등장인물 등 내용에 대해서도 “사건 대본과 드라마는 장르적 특성, 등장인물의 수, 성격이나 역할, 세부적 묘사와 사건 전개의 세밀함 등에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 줄거리가 일치하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갈등 등이 상당할 정도로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선덕이 서역 사막에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점 ▶선덕과 김유신의 사랑 ▶미실과 선덕의 권력 대립 등 역사적 사실과 다른 허구까지 일치하는 점을 표절의 주요 근거로 들었다. 피고 측은 “유사성을 인정하더라도 아이디어의 경우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극 저작물에서 주제·인물·구성 등 설정 하나하나는 독립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해도 전체적 저작물은 보호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선덕여왕’ 표절 소송에서 승소한 김지영 대표는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송을 시작해 지금까지 3년이 걸렸다”며 “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세워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대형 방송사 등의 횡포를 없애고 창작 의욕을 고취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어=선덕여왕 표절 소송에서 1심과 2심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온 것은 표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류 열풍 등으로 문화콘텐트가 중요해지면서 매년 한국저작권협의회에 40~50여 건의 표절 감정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도 KBS 드라마 ‘아이리스’ 등 10여 건의 표절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표절에 대한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아직도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

선덕여왕의 경우 1심 재판 당시 서울대 ‘기술과 법센터’에서 4개월간 감정 끝에 표절이란 결론을 내렸지만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지적재산권 재판부를 두고 표절 소송을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선덕여왕’ 소송처럼 재판부마다 판단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지적재산권 재판을 맡고 있는 한 판사는 “음악·드라마·영화 등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 표현을 다루는 것이라 유사성을 논리적으로 따지기가 어렵다”며 “대법원 판례도 많이 나오지 않아 표절 시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호소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황의인 변호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본격적으로 발효되면 해외에서도 표절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서둘러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저작권 관련 기준을 세우고 분쟁을 해결하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유관기관인 한국저작권위원회와 법원뿐이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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