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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원 매물 시한폭탄 ‘뱅가드 쇼크’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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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국내 증권시장에 ‘뱅가드 쇼크’ 우려가 일고 있다. 뱅가드는 인덱스 펀드의 ‘본좌’다. 전 세계 ETF 시장에서 ‘넘버 3’에 든다. 그 뱅가드가 택한 길이 수수료 깎기다. 워낙 시장이 초과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고객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 살’을 깎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깎다 보니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팔수록 손해다. 돈을 벌려면 판매 가격을 낮춘 만큼 원가도 줄여야 한다. ETF 원가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벤치마크 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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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가드는 그래서, 지난 10월 원가 절감을 위해 벤치마크 지수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서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당시 뱅가드 측은 “MSCI의 라이선스 비용이 너무 비싸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의 김군호 대표는 “MSCI 쪽이 연구인력도 많고 지수 개발에 돈도 많이 쓰지만, 사용 비용이 싼 FTSE와 비교했을 때 최근에는 성과 차이가 크지 않아 투자자가 별 매력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MSCI와 FTSE는 별 차이가 없다. 뱅가드가 벤치마크를 바꾼다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일까. 그런데 한국 증시에는 문제가 된다. MSCI지수에서 한국은 신흥시장(EM)에 속해 있지만 FTSE에서는 선진시장에 속해 있다. 뱅가드는 지난 10월 FTSE로의 지수 변경을 발표했지만, 실제 변경 작업은 내년 초부터 이뤄진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뱅가드 쇼크’가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뱅가드의 벤치마크 변경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돈은 8조~9조원이다. 올 한 해 순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절반을 웃돈다. 외국인의 매도세를 받아낼 만한 국내 기관의 여력이 없기 때문에 매도 충격은 고스란히 시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뱅가드 쇼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돈이 빠지더라도 한꺼번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곽상호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뱅가드 인덱스 펀드의 포트폴리오 변경은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약 25주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간 단위로 보면 3000억원을 조금 웃도는 규모다. 아울러 FTSE는 이런 충격을 우려해 뱅가드의 벤치마크 변경을 위한 지수 FTSE는 뱅가드의 벤치마크 변경을 위한 지수(Emerging Transition Index)를 임시로 만들었다. 이 지수는 한국 비중이 25주 동안 매주 4%씩 감소하는 구조다.

 무엇보다 전 세계 투자자가 한국을 원한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이달 초 “뱅가드에 대한 미국 투자자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주식이 다른 이머징 국가보다 주가가 더 뚜렷한 상승세를 보여 선호현상이 생겼다.

 또 뱅가드가 아니라 다른 운용사 ETF를 통해 한국에 투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뱅가드의 EM 펀드에서는 9억 달러 환매가 나왔지만, 세계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의 ETF인 ‘아이셰어즈EM’으로는 약 26억 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여기에 블랙록 역시 최대 65%의 ETF 수수료를 추가 인하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뱅가드로의 자금 이탈을 경계했다.

 장기로 보면 오히려 호재라는 주장도 있다. 이영준 현대증권 연구원은 “MSCI에 한국을 선진시장으로 분류하라는 전 세계 투자자의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며 “한국이 MSCI 선진시장으로 이전할 경우 겪게 될 일을 미리 경험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MSCI 선진시장 이전으로 인해 발생할 충격의 분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뱅가드 쇼크로 돈이 가장 많이 빠질 것으로 추정되는 종목은 삼성전자다. 그러나 매 분기 사상 최고치 실적을 달성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주가 급락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시장 분위기다. 반면에 우리투자증권은 CJ대한통운·삼성정밀화학·다음·한진해운 등으로는 추가 자금이 유입돼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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