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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여전히 비탈에 서 있는 내 시 … 갈 길이 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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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풍경, 적막한

*

달의 운필이 동쪽에서 시작 될 때

새순처럼 돋아나는 미간이 밝은 별들

어둠의 솔기 안쪽으로

꽃의 일가는 흩어졌다

고단한 생의 좌표일 수도 있겠다

별들이 빚어놓은 간결한 문장들

내 눈이 붉어지면서

문장을 따라간다

**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입술을 축이며

소인 없는 편지를 가만히 음독한다

달빛은 흰 독말풀 근처를

배회하며 부서졌다

숫눈처럼 깨끗하고 정결한 기쁨이다. 소식을 접했던 첫날은 눈물을 글썽이며 천진한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며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여전히 내게 시는 저만치 먼 곳에 있거늘….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이고 가장 죄 없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말에 기대어 시를 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문학을 꿈꿨으며 고향집 사립에 시인 생가라는 문패를 달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결국 꿈은 현실이 됐다. 시인이라고 불린 지 벌써 10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시는 가파른 비탈에 서 있다. 부족한 작품에 따뜻한 격려의 손을 얹어 주신 심사위원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며 그 깊은 뜻을 가슴에 새겨 정말 괜찮은 시조시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감사해야 할 분들이 참으로 많다.

 처음 시조를 만나게 해주셨고 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시는 이지엽 교수님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존경하는 선후배님들, 오래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광주의 도반과 오늘의 이 영광을 나누겠다.

 이제 더욱 시력을 맑혀 혼신을 다해 시를 바라보겠다. 내게 찾아와 시가 되어준 들꽃과 나무를 닮은 맑고 푸른 영혼이 담긴 시를 쓰겠다. 단순한 선과 점으로 완성된 동양화의 흰 여백, 그 여백에 담긴 말 없는 말들. 내 시조의 지향점은 거기 있다. 갈 길이 멀고 멀다.

◆ 약력=1957년 전남 화순 출생. 한국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년 중앙신인문학상 으로 등단. 오늘의 시조시인상(2011)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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