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가 4억2000만원인 아파트로 3억5000만원의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받을 수 있다. 대출액이 시세의 83.3%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Loan To Value ratio) 한도인 60%를 훨씬 넘는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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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2일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가장해 한 저축은행 대출모집인에게 이런 조건을 제시하며 대출 상담을 했다. 모집인은 “원래는 LTV 한도 때문에 어렵지만 방법이 있다”며 “사업자 등록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매출이 없어도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주택 시세의 90%까지 개인사업자대출을 내어줄 수 있다”며 “인터넷 쇼핑몰이나 옷 수선을 한다고 쓰라”고 말했다.
가짜 사업자등록증을 활용한 편법 가계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는 돈 빌릴 데 없는 서민, 대출을 알선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려는 대출모집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다. 경기 침체로 딱히 돈 굴릴 데가 없는 제2금융권으로서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변종 사업자 대출은 재테크 사이트나 대출 권유 문자, 전단 등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아파트 시세의 90~95%까지 대출해 드린다는 광고는 거의 다 사업자등록증을 활용한 대출로 봐야 한다”며 “정상적인 개인 대출은 LTV 한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재테크 사이트에는 “아파트·주상복합은 시세 90%, 오피스텔은 시세 80%까지 돈을 빌려주겠다”는 저축은행 대출모집인의 광고 글이 떴다. 그는 “만 20~68세로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분이면 누구나 대출이 가능하다”며 “후순위 대출까지 포함하면 아파트 시세의 95%까지 빌려줄 수 있다”며 고객을 유인했다.
개인사업자 대출이 편법에 활용되는 이유는 LTV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 명의의 주택을 담보로 시중은행에서 한도를 꽉 채워 대출을 받은 이들에겐 주택을 담보로 마지막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구멍이 생기는 셈이다. 무늬는 주택담보대출이지만 금리는 10~20%대로 웬만한 신용대출보다 높다. 기자에게 사업자 등록을 권한 대출모집인은 “금리는 연 18~24% 정도”라며 “사업자 등록을 할 정도면 신용대출도 어려운 분이니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자 등록이 지역 세무서에서 10분 정도 서류를 작성하면 끝날 정도로 간단하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2009년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업자 등록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5000만원)도 없어졌다. 또 다른 대출모집인은 “매출이 있든 없든, 가게가 있든 없든 등록만 하면 끝”이라며 “대출을 받고 몇 달 지나 폐업 신고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영업을 하지 않고 대출만을 위해 사업자 등록을 하더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금융회사도 많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나간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4495건) 중 4.12%(185건)는 사업 수행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승인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시내 중견 저축은행 관계자는 “사실 집에서 번역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한다고 사업자등록증을 가져오면 집에 가 본다 치더라도 사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실제로 창업한 후 한동안은 매출이 거의 없는 사업도 부지기수니 매출을 모두 들여다볼 수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는데 시세 80~90%에 육박하는 편법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면서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개인도 다급하니 편법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자칫하다간 은행과 소비자가 같이 몰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목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1국장은 “변종 주택담보대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며 “충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LTV 초과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도록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릴 때 최대 얼마까지 빌릴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시가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정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수도권은 시세의 50%, 지방은 60%다. 수도권이라도 10년 넘는 장기 대출 때는 시세의 60%까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