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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츠는 내 친구] 암벽타기

중앙일보

입력

자연은 살아있다. 그리고 바위는 숨을 쉰다. 매서운 햇볕과 모진 눈보라 속에서도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바위.

매끈하면서 부드러운 화강암의 경사면을 따라 크랙(손가락 ·손 ·발 ·팔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가진 바위 틈새)과 침니(두면 또는 세면이 암벽으로 둘러 싸이고 그 속에 몸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바위 틈새)를 기어오르고 오버행(암벽에서 수직 이상의 경사도를 가진 부분)을 넘는 순간에는 클라이머도 암벽속에 묻혀버린다.

그러나 정상을 밟고 나면 바위는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화강암으로 된 수직벽이 하늘을 향해 솟은 서울 우이동 북한산 인수봉(8백10m).

80여m의 대슬랩(신발의 마찰력에 주로 의존하여 등반하는 경사 30도에서 70도 사이의 비탈)을 올라 고개를 돌리면 멀리 도봉산의 만경대.자운봉.만장봉.우이암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서울 상계동의 아파트군(群)너머로 불암산과 수락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주말이면 50m짜리 자일(10.2㎜)한동과 암벽화(靴).캐러비너.안전벨트, 그리고 프렌드(바위틈새에 끼고 암벽을 오를 때 사용하는 톱니바퀴 모양의 장비)와 주마를 배낭에 챙겨 북한산 인수봉으로 떠나는 여성 클라이머 3명이 있다.

강연미(35.파이브 텐 직원).박윤정(25.현대증권 직원).박소정(21.한국체대 3년)씨다.

코오롱 등산학교 동문이며 산바라기 산악회(http://user.chollian.net/~sanbbaraki)회원들이다.

암벽등반 8년 경력의 강씨는 "선등(先登)에 서다 보면 홀더를 잡을 곳을 찾는 것에 몰입하게 돼 1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풀린다" 며 "자기 성취감은 물론 항상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고 설명한다.

5년 경력의 윤정씨는 "직장 동료들이 암벽을 탄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을 남성처럼 취급하는 것이 불만" 이라며 "하산길에 선후배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이 가장 기분좋다" 고 말한다.

지난해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는 소정씨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단신(1백60㎝)이지만 투지가 대단한 새내기다. 지난 여름 캐나다의 부가부(3천63m)산군 암벽등반을 했을 정도.

이들은 인수봉 대슬랩 구간을 가볍게 올라 40여개의 암벽코스가 시작되는 오아시스에 닿았다.

머플러로 머리를 질끈 묶은 윤정씨가 이곳부터 선등을 선다. 빌래이(동료의 안전을 위해 로프를 다루는 방법)보는 것은 막내인 소정씨의 몫이다.

늘 이들이 오를 코스는 난이도 5.10b급의 의대길(1백36m). 윤정씨는 유연한 몸동작으로 첫피치와 둘째 피치를 가볍게 오르면서 뒷사람이 오르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세번째 피치(12m)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지 몇번의 시도 끝에 볼트가 박혀있는 확보지점에 닿은 후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선등을 바꿔 강씨가 앞장선다.

비교적 쉬운 4, 5번째 피치를 지나 난이도가 가장 높은 마지막 여섯번째 피치를 겨우 넘으니 어느덧 등반한 지 3시간이 지났다.

짧은 가을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백운대 아랫녁까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매주말마다 보는 모습이지만 이들에게는 갑자기 콧끝이 찡하고 눈이 시리도록 아팠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여성 암벽 등반가가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남성의 경우 힘이 좋아 크랙이나 침니 등 체력과 기술을 요하는 등반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여성은 슬랩에서 오히려 강점을 보이고 있다. 섬세함과 균형 유지가 뛰어나기 때문.

등산은 지구력을 필요로 하므로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암벽 등반은 순발력을 요하기 때문에 주중에 체력을 축적하지 않으면 주말 등반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한국 근대 등반의 요람인 인수봉에는 주말이면 평균 50팀 2백여명의 산악인이 몰린다. 그래서 가끔씩 인명사고도 발생한다.

'주말마다 왜 인수봉을 찾느냐' 는 질문을 윤정씨에게 던졌다.

"강물은 흘러가쟎아요. 그러나 바위는 항상 그 자리에 묵묵히 있지요. 암벽을 오르며 바위와 소근소근 이야기하다 보면 바위의 믿음직스러움에 반하게 되고 그런 바위를 닮고 싶은 것이 자그마한 소망이 되지요. " 라는 답이 돌아왔다.

각 지역 등산학교에서 암벽등반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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