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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2 올해의 좋은 책 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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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12년도 역사 속으로 저물어간다.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아 올 출판계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고민과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책의 소명’은 변함이 없었다.올 한 해 출판시장에 반영된 한국 사회는 ‘리셋(Reset)’에 대한 열망으로 요약된다. 개개인의 일상이 힘겹고, 사회는 보수·진보로 갈등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지금 우리 시대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에너지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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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에서 성공의 의미를 묻는 근원적 질문부터 미래사회의 달라진 인간상을 예측하는 문명 진단까지 다양한 콘텐트가 독자들을 찾아갔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2012 올해의 좋은 책 10’을 선정했다.인문, 경제·경영, 과학, 문학 등 장르별로 일종의 ‘필독서’를 꼽았다. 우리 사회를 ‘따로, 또 함께’ 만들어나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되는 책들이다. 올해보다 사정이 그다지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2013년을 열어가는 지혜가 담긴 책들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출판·문학·학술팀  

[인문]
도널드 서순 ,유럽문화사(1~5권)

영국 런던대 교수인 저자가 10년을 공들여 썼고, 이를 4명의 번역자가 3년 반에 걸쳐 한국어로 옮겨냈다. 그만큼 방대하기도 하지만 내용면에서도 수작이란 평가가 아깝지 않다.

 저자는 “1800년의 귀족보다 2000년의 점원이 문화적으로 풍요롭다”고 썼다. 지난 200년 사이에 엄청난 문화적 팽창이 일어났다는 입장이다. 책은 두 세기에 걸쳐 유럽인이 소비해 온 다양한 문화산물의 생성과 번성, 소멸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백과사전처럼 시대순으로 펼쳐놓았으나 지루하지 않고 흡인력이 있다. 통상적인 문화사와 달리 저급문화 혹은 대중문화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문화시장의 팽창에 주목했기에 시장에서 많이 사고 팔린 것이라면 고급과 저급을 가르지 않고 비중 있게 다뤘다.

 문화를 ‘상품’으로 바라본 저자의 관점도 현재적이다. 책이나 영화·음악 그 자체를 분석한 것에서 나아가, 해당 콘텐트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됐으며, 누가 판매하고 소비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문화산업사이자 자본주의 문화사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문화가 어떻게 전세계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짚어내는 데도 유용하다. 인터넷망을 타고 한국의 대중문화가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는 요즘이다. 문화산물의 장기적인 경향과 전망을 탐색하는 저자의 통찰력에서 우리의 미래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인문]
피로사회

2012년을 빛낸 한 권의 책을 고르라면 『피로사회』가 가장 강력한 후보 중 하나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독일에 3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한병철(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철학·53)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를 ‘피로’라는 키워드로 파고든다. 2010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됐고, 올해 한국어로 번역됐다.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이후 달라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의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을) 해야 한다’ 혹은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강제와 규율이었다. 오늘의 자본주의에선 강제와 규율의 자리를 자신에 대한 긍정이 차지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난 할 수 있다’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 착취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를 압축적으로 흡수해 고도성장을 달성한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동양철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서양철학을 전공하며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이 책만 해도 『노자』 『장자』의 ‘무위’(無爲:함이 없음),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 없는 것의 쓸모) 사상을 염두에 두고 썼다. 저자는 동양의 옛 언어가 아니라 오늘의 서양인이 이해하는 언어로 풀어내는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이 책은 출판잡지 ‘라이브러리 & 리브로’가 출판인 180여 명을 설문 조사한 ‘제18대 대통령 당선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첫 책’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늘날 성과주의가 낳은 각종 사회 문제를 성찰하고 있다.

[인문]
콰이어트

‘힐링(치유)’바람이 불어 닥쳤던 한 해였다. 위로에도 감성적인 위로와 지적인 위로가 있다면, 『콰이어트』는 단연 지적인 위안을 준 책으로 꼽힌다.

 스스로 소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자기 포장에 능란한 사람들에게 눌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갖고 있는 힘을 왜 모르는 거야’라며 세상의 그릇된 통념을 하나씩 짚어주고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내향적인 사람들의 특성을 모르고 저지르는 일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브레인스토밍 등이 그 중의 하나다. 창의성이나 효율을 정말 중시한다면 리더십도, 사람들이 협력하는 방법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저자는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법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해온 수전 케인.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과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온 그는 항상 내향적인 성격은 정말 부끄러운 것일까 궁금했다고 한다.

 저자는 ‘고독은 혁신의 촉매’라며 집중력과 통찰, 몰입 등 내향성의 장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흥미로운 성과는 ‘외향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통찰이다. 세상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내향성인데도 사회가 얼마나 외향적인 기질에 최적화돼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콰이어트』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의 행복, 그리고 창의성·혁신 등의 큰 화두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곰곰 재고하게 한다.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다.

[문학]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올해 한국소설은 영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작가는 소설가 김연수(42)다. 한 해에 두 편의 장편소설을 냈다. 『원더보이』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다.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보태면 그의 이름을 달고 독자를 찾아간 책만 세 권이다. 나름 다작임에도 김연수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침체된 소설시장 속에서도 그의 7번째 장편소설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친부모를 찾아 나선 입양아의 여정을 뒤쫓는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사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 사이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사실이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져 있는지, 사람 사이의 말이 얼마나 공허한 울림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심연을 건너는 힘이 사랑임을 작가는 강조한다. 친부모의 사랑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아닌, 부모의 아름다운 사랑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된 뒤 스스로로 완벽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는 친엄마의 말에서 따온 시(詩)적인 제목처럼 소설에는 김연수의 감성적이며 감각적인 문체가 흘러 넘친다. 게다가 1인칭과 2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필력은 이야기꾼 김연수의 솜씨가 무르익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2012 한국소설의 활력을 드러낸 작품 중 하나로 뽑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중국을 다룬 책이 쏟아진 한 해였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체제의 부조리를 진솔한 자기 고백의 언어로 풀어낸 점에서 돋보였다. 장편 『허삼관매혈기』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余華·52)의 산문집이다. 저자는 인민·영수·독서·글쓰기·루쉰·차이·혁명·풀뿌리·산채·홀유 10개의 단어로 중국을 읽어냈다. 각 단어에 얽힌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고, 이를 중국인의 역사의식과 사회문제로 확장시켰다. 반체제 성향 때문에 중국에선 출간이 금지됐다.

 작가는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은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215쪽)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을 내걸며 G2로 급부상했지만, 점점 더 피폐해지는 서민의 삶은 모른 척해왔다고 비판한다. 또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냈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이 그러하듯, 중국의 아픔을 쓰면서도 그 속에 인간애를 잃지 않는다.

 중국 작가협회 부주석인 모옌(莫言·57)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어느 때보다 논란이 됐던 한 해였다. 위화는 이 책에서 공공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역할에 대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독립된 존재로서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에세이]
와일드

올해는 유독 ‘관념의 언어’가 에세이 시장을 독점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언어는 읽는 순간 달콤할지언정 신기루처럼 휘발되기 마련이다. 『와일드』는 요즘 쉽게 쓰인 ‘힐링 서적’에 물린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4285㎞에 이르는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종주한 땀과 눈물의 기록이다.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는 이 트레킹 코스는 사막·화산·설원을 넘나드는 극한의 여정이다. 스물여섯의 셰릴 스트레이드는 인생의 벼랑 끝에서 PCT를 종주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남편과 이혼한 후 방탕한 생활을 거듭했던 삶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 고독과 참회의 시간을 견뎌낸다.

 저자가 묘사하는 광활한 대자연의 풍광은 인간의 발걸음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PCT의 냉정함과 포개지며 신비롭게 다가온다. 특히 만신창이가 된 등산화를 벗어버리고 맨발로 산을 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저자는 신발과 함께 자신의 한계도 함께 벗어 던졌다. 맨살로 세상과 정면 승부하는 한 인간의 도전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이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PCT를 종주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답은 같을 것이다. 인생의 큰 산을 넘은 고통의 기록은 온몸에 흔적으로 남아 다음 산을 등정할 수 있는 지도가 된다는 것을. 저자는 그 작은 두 발로 증명하고 있다.

[경제·경영]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공약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명쾌한 대안이나 비판은 차치하고 경제민주화의 정확한 개념부터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전문가들마저 경제민주화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을 썼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경제학자 정승일, ‘시사IN’ 기자 이종태의 대담집이다. 장 교수가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장 교수는 경제민주화론과 재벌개혁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벌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이 우리 사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일이라고 했다.

 또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고,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닌 ‘공동구매’로 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만 골라 시혜를 주듯 지원하는 미국식 복지는 생산 그 자체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복지를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주장은 좌우 진영논리를 뛰어 넘는다. 양 진영 모두로부터 비판받을 소지가 큰데도 저자들은 지금 시대가 풀어야 할 문제와 그 해법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풀어놓는다. 대안적 담론이 절실한 우리 현실에 토론의 출발점을 마련하고 있다.

[경제·경영]
3차 산업혁명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진 몰라도,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69)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5월 번역된 『3차 산업혁명』은 올 한 해 대선을 앞두고 미래의 국정 패러다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리프킨은 석유시대의 수명은 끝났다고 진단한다. 부동산과 금융시장이 차례로 위기에 처하고, 환경파괴가 날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가 제시하는 유일한 대안은 인터넷 기술과 재생 에너지의 결합이 낳을 ‘3차산업혁명’이다. 각각의 도시가 태양열·풍력·수력·지력 등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렇게 형성된 생물권역 수천 개가 인터넷으로 연결돼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리프킨은 이탈리아의 로마, 모나코 공화국 등을 대상으로 이미 마스터 플랜을 구상 중이다.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3차 산업혁명과 함께 나타날 세계 패권의 지형 변화다. 리프킨은 이 혁명이 분산적이고, 협업적이며 인접한 땅덩이를 따라 수평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았다. 즉 세계화에서 대륙화로 변모한다는 것. 리프킨은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등 지역 교역 블록이 만들어지고 있고, 여기서 한국이 앞서갈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저자의 도전적 제안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측해 보는 것도 이 책의 관전 포인트다.

[과학]
미래의 물리학

자고 일어나면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디지털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예컨대 휴대전화 하나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돌아보자. 과학적 발견과 혁신이 정치·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미래 예측이 호기심 차원을 넘어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 할 주요 의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물리학』은 올해 나온 과학책 가운데 단연 손에 꼽힌다. 이론물리학계의 석학 미치오 카쿠(미 뉴욕시립대 석좌교수)가 100년 후 2100년대 상황을 예측한 책인데, 미래 사회의 모습을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담았다 . 50년 후, 그리고 100년 후의 우주여행, 에너지, 컴퓨터, 의학, 인공지능, 나노 테크놀로지, 부의 재편 등이 궁금하다면 정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영국 BBC, 케이블 사이언스채널 등에서 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저자는 세계 첨단 연구현장에서 만난 과학자 300여 명을 인터뷰했다. 바로 이들과 나눈 생생한 대화가 이 책의 기초가 됐다. 덕분에 이 책은 전문성과 대중성, 현장성과 과학 이론이 결합해 어떤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지 한 눈에 보여준다.

 책은 물리학 문외한 독자를 껴안을 만큼 쉽게 쓰여졌다. 하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너무 정직하게 지어졌다. 원제가 『Physics of the Future』이니 그릇된 것은 아닌데, 책 내용과 달리 딱딱한 전문서 느낌을 준다. 미래의 생활에 방점을 찍은 책의 고갱이가 제목에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만화]
미생(1~4권)

윤태호의 『미생(未生)』은 만화라는 장르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호평을 끌어냈다. 올해 초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되기 시작했으며 총 네 권의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흔히 ‘만화 같다’는 표현을 쓴다. 현실성이 부족한 과장된 상황을 묘사할 때 인용하는데, 『미생』은 그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는 샐러리맨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그 안에서 설득력 있는 메시지와 만화적 재미를 동시에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표현도 특별했다. 작가 자신이 “배경도 계속 같고, 극적인 장면이 없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정적인 장면이 대부분이다. 많은 컷들이 등장인물의 미세한 움직임과 표정을 담는다. 텅 빈 사무실의 구석구석을 보여주거나 네온사인이 빛나는 밤거리 풍경을 반복해 묘사하기도 한다. 독자들이 장면장면을 음미하면서 의미를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만화이기에 가능하고 효과적인 구성이었다.

 이 책은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다 실패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 장그래가 회사라는 새로운 환경에 한 수 한 수 맞서 가는 과정을 그렸다. 바둑에서 죽음과 삶이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은 돌의 상태를 말하는 ‘미생’은 조직이라는 판 위에서 ‘자신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 직장인들을 은유한다.

 2012 오늘의 우리만화상, 대한민국 콘텐트 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선정했나

‘2012 올해의 좋은 책 10’ 선정에는 중앙일보 출판·문학·학술팀과 교보문고 도서추천 전문가 북마스터 10명이 함께 참여했다. 우선 교보문고 북마스터가 예비 도서 120권을 고르고, 중앙일보와 교보문고의 토론을 거쳐 후보 도서를 압축했다. 최종 선정에는 출판 전문가 10명의 자문과 추천도 반영됐다. 올해의 좋은 책은 시대의 주요 화두를 담아내고 탄탄한 콘텐트로 완성도를 높이고 편집·글쓰기에서 대중성을 갖춘책에 초점을 맞췄다.

●출판계 추천위원 (가나다 순, 자사 출판물은 제외)

권선희(사이), 김언호(한길사), 김인호(바다출판사), 김미정(책세상), 박종만(까치), 선완규(천년의상상), 염현숙(문학동네), 장은수(민음사), 최연순(김영사),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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