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희망] 부산 '새 생명 나눔회'

중앙일보

입력 2003.01.12 17:37

업데이트 2003.01.12 17:39

지면보기

종합 27면

“장기를 이식받아 덤으로 살게 된 인생을 다른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장기 나누기가 활성화돼 새 삶을 살게되는 이웃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10일 오전 부산진구 부전1동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부산본부 혈액 투석실.신장 기증인·이식자 모임인 ‘새 생명 나눔회’회원 10여 명이 환자들을 손을 꼭 잡고 “힘내세요”하며 격려하고 있었다.

이들 회원들은 1백20여 명의 환자들이 4∼5시간씩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 이곳을 1주일에 한두 차례씩 들러 환자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환자들의 손을 움켜잡은 회원들의 뇌리에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절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이들도 신장을 이식받기 전까지는 장기간 투병생활은 했던 사람들.

이상종(48)회장은 7년 여의 투병생활을 하다 새 생명을 얻었다.건축설비 일을 하던 그는 1992년 신장병 진단을 받고 기나긴 투병생활을 했다.일주일에 몇 번씩 혈액투석을 받으면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한 18세 소녀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그는 현재 병마와 싸우는 다른 환자들을 돕는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신장의 주인공이 꽃을 채 피우지도 못한 소녀라는 사실을 알게된 뒤 “그의 삶까지 열심히 살자”며 각오를 다졌다.두 사람의 몫을 살기위해 일자리도 포기하고 봉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는 사후 각막기증도 서약해 놓은 상태다.

심무향(53·여·교사)씨도 10년 전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병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의미와 의욕도 찾기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자포자기 상태에 있던 그에게도 천사가 나타났다.신장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그는 남은 삶을 덤으로 사는 것으로 생각,사회에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이를 실천하기 위해 심씨는 대전엑스포·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 등 대형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지금도 틈날 때마다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영어통역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김영우(31)씨는 2001년 8월 신장이식을 받았다.“자꾸만 깊은 웅덩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던”1년6개월간의 투병 끝에 새 희망을 얻었다.그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고 새 직장을 구한 뒤에 봉사하는 삶을 살 인생계획을 짜고 있다.나눔회 회원 중 봉사활동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 조언을 듣는다.

새 생명 나눔회가 결성된 것은 1998년 9월.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부산본부가 장기 기증인과 이식인들이 아무런 연결 없이 흩어져 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제의해 이뤄졌다.

현재 회원은 70명.기증인 50명과 이식인 20명으로 구성돼 있다.회원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건강문제나 집안 얘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5년간 빠짐없이 모임이 지속 되면서 회원들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사이가 됐다.

심무향 씨는 “회원들이 모임 때마다 서로 고통스러웠던 상처를 쓰다듬으며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이들은 친목을 다지는 한편 다른 환자들을 방문,식사 시중을 들고 말벗이 되고 있다.투석생활을 하는 환자에게 음식 섭취하는 법,물 마시는 법,야채 먹는 법 등 투병에 적응하는 경험도 알려주고 있다.지난해에는 환자복을 구입해 전달하기도 했다.

이 모임은 올해에는 좀 더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을 적극 도울 계획이다.날씨가 풀리면 일일찻집 행사를 열어 수익금으로 기금도 마련할 생각이다.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넓힐 생각으로 거리 홍보캠페인도 열 예정이다.

회원들은 “‘동병상련’이라고 환자들의 고통은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압니다.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관종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