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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가 역사에 남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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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정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쌍둥이 형제를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누가 형이니?”라고 묻는다. 불과 몇 분 차이인데도 대접은 형이 받는다. 그래서 동생이 의기소침해 한다는 이야기를, 앞으로는 꼭 “누가 동생이니?”라고 물어달라는 이야기를 쌍둥이 부모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일주일 뒤면 대선 승자와 패자가 드러난다. 당선과 낙선은 그 표차가 아무리 적다 한들 박근혜와 문재인, 문재인과 박근혜를 하늘과 땅으로 가른다. 승리를 거머쥔 자의 능력과 인품에 대한 찬사가 세상을 덮는다. 패자는 허탈함과 좌절감 속에서 뒤꼍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패배자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손쉬운 방법은 미련을 버리고 위안거리를 찾는 것이다. ‘그래, 이런 어려운 시기에 내가 대통령이 됐다 해도 위기를 극복하고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았을 거야. 이제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지 않게 됐네.’ 아무리 대선 후보라도 이런 생각이 조그만 위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가슴 한편의 진한 응어리를 다 풀어버릴 수 있을까.

 대선 패배자가 더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역사가 주는, 역사로부터의 위안이다. 바로 모든 걸 훌훌 털고 정계은퇴 또는 향후 대선 불출마를 명백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동안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다. 2000년 미국 대선 때 엘 고어는 전체 득표수에서 조지 W 부시를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 밀려 분패했다. 플로리다주에선 법정까지 가는 재검표 소동이 있었다. 많은 미국인이 고어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런데도 고어는 2004년 대선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기후변화 등 환경분야에 몰두했다. 노벨평화상은 그에 따른 보상이었다.

 사실 고어가 대단한 결정을 한 건 아니었다. 한 번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겸허한 마음, 그래야만 더욱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가 등장해 사회를 새롭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 정치의 전통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엘 고어 외에도 월터 먼데일, 마이클 듀커키스, 밥 돌, 존 케리, 존 매케인 등 1980년대 이래 그 어떤 패배자도 ‘대통령이여, 다시 한번’을 외친 사람은 없었다. 지난달 오바마에게 패한 밋 롬니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역대 한국 대선을 돌이켜보면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김대중은 4회, 이회창은 3회, 김영삼과 이인제는 2회 대선에 출마했다. 한 번 출마한 정동영은 아직 대권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을 똑같은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과거 온전한 민주주의가 아니었던 한국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거대 선거를 치른 패배자의 경험과 조직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막고 ‘재수’ ‘삼수’를 외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지를 곱씹어 본다면, 2012년도 결코 빠른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기회를 준 국민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물러서는 새 전통을 세우게 될 첫 번째 패배자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역사가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