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통사고로 다 잃은 줄 알았는데 … 어느 날 날아온 희망 편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1995년 교통사고로 다리에 마비가 온 김영민(51)씨가 지난달 16일 헬스용 자전거를 타며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아내와 딸이 옆에서 조금 더 힘내라며 응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달 16일 오후 인천 남동구 H교회 체육관. “아빠, 파이팅!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김영민(51)씨가 헬스용 자전거에 앉아 힘겹게 페달을 돌리자 둘째 딸 소현이(11)가 큰 소리로 응원을 했다. 이들을 지켜보던 아내 박재연(47)씨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충북 천안에서 ‘잘나가던’ 목수였다. 1995년 동료 차를 얻어 타고 공사장으로 가던 중 대형 레미콘트럭이 추돌했다. 그는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쳐 전신이 마비됐다. 일을 못해 수입이 끊기면서 생활도 금세 어려워졌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은 됐지만 딸 교육비에 생활비까지 감당이 안 됐다. 김씨는 “당시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고 기억했다.

 2000년 8월 김씨에게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뜻밖의 편지가 날아왔다. 김씨처럼 교통사고 중증 후유장애를 입은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를 통해 지원을 신청한 게 공단과의 첫 인연이었다. 김씨는 현재 공단에서 재활보조금(월 20만원)과 두 딸의 장학금(분기별 5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또 생활자금으로 매달 40만원씩(만18세까지 자녀당 20만원)을 무이자 대출 받는다. 자녀들이 다 성장해서 직장을 잡을 무렵부터 조금씩 갚아나가는 조건이다. 현재의 아파트도 2009년 공단과 LH공사의 전세금 대출사업을 통해 마련했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김씨의 몸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재활 치료를 더 자주 받을 수 있어서다. 아직 다리는 불편하지만 상체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실내에서는 목발을 짚고 이동도 가능하다. 가정에도 웃음이 늘었다. 소현이는 지난해 겨울 공단이 주최한 2박3일짜리 스키 캠프에 다녀왔다. “우리 집 형편에 스키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정말 짜릿한 경험을 했다”며 웃었다. 몇 달 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영화 구경도 했다. 공단이 제공한 문화바우처카드(연 15만원) 덕이다. 김씨는 “공단 지원이 크나큰 힘이 됐다”며 “2007년부터 배우고 있는 구두수선 기술을 활용해 자활하고 남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이 2000년부터 시행해온 ‘교통사고 피해 가족 지원사업’이 적지 않은 효과를 내고 있다. 부모나 배우자의 교통사고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은 자동차 소유자들이 내는 책임보험료 일부를 재원으로 시작됐다.

 교통사고 중증 후유장애자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최저생계비(현재 4인 가구 월 소득 149만원 이하·가구재산 8300만원 이하) 이하 생활자 등이 지원 대상이다. 13년간 23만여 명에게 3620억원이 지원됐다. 올해만 2만4700명에 440억원 규모다. 공단의 이재흥 교통복지처장은 “교통사고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제공하고 가정 붕괴를 막는 것이 사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최소정(27·광주광역시)씨 자매도 공단과의 인연이 깊다. 최씨는 10살 때인 1995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뜬 지 2년 만이었다. 당장 살길이 막막해진 최씨와 세 동생은 친척집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2004년 공단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네 자매는 다시 한집에 모여 살 수 있게 됐다. 최씨는 공단이 주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마치고, 현재 지역아동센터 전남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 초에 결혼도 했다. 세 동생들도 모두 대학에 진학해 자립했다. 최씨는 “공단의 지원 덕에 ‘우리끼리 홀로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상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