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산천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꽃피운 사람은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이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풍경묘사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풍광을 화폭에 담으려는 노력은 겸재 이전에도 있었다.
예컨대 2008년에는 현전하는 진경산수화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인 신익성(1588∼1644)의 ‘백운루도(白雲樓圖)’가 발견됐다. 1639년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의 발견으로, 진경산수화의 역사는 18세기 초에서 17세기 중반으로 앞당겨졌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효시로 불리는 ‘백운루도’의 이본(異本·같은 소재를 그렸지만 부분적으로 다른 그림)이 최근 공개됐다. 고미술 경매회사 ‘옥션 단’은 2008년 공개된 신익성의 ‘백운루도’와 구도가 조금 다른 ‘백운루도’가 그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화첩을 발굴해 14일 열리는 경매에 출품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백운루도’는『전가홍보(傳家鴻寶·집에 내려오는 큰 보물)』라는 제목의 화첩에 담겨 있다. 그림의 소재가 된 ‘백운루’는 선조의 사위이자 당시 이름난 문인이었던 신익성이 경기도 용문산 백운봉의 서쪽 기슭에 지은 정자다.
신익성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서명과 인장(印章)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견된 ‘백운루도’와 구도만 약간 다를 뿐 똑같은 풍경을 같은 화풍으로 담고 있어 신익성의 그림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림의 뒤쪽 장에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1567∼1608)의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담겨 있다. 선조의 글씨는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뛰어났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며 거의 소실됐다. 화첩에 적힌 글씨는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9824>)의 ‘양심설(養心說)’로 규장각이 소장한『선묘어필첩』에 담긴 선조의 글씨와 획이나 삐침 등이 거의 같다.
고미술전문가 황정수씨는 “전쟁이 끝난 후, 훼손된 민족의 자긍심을 고양하자는 의미에서 사라진 왕의 글씨를 모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당시 신익성이나 그 측근이 선조의 글씨를 수집해 그림과 함께 문집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그림에 작가의 인장 등이 없는 이유도 왕의 글씨나 그림 앞에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던 당시 풍조를 따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경매에선 신사임당(1504~51)이 그린 매화도가 담긴 화첩과 영조대왕(1694~1776)이 내의원에 내린 친필 교서, 고려시대 발간된 『십칠가해주금강경』등도 나온다. 출품작은 13일까지 서울 수송동 ‘옥션 단’ 전시장에서 공개된다. 02-730-5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