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새누리당 당사는 ‘이정희 성토장’이 돼 버렸다. 박선규·조해진·이상일 대변인이 잇따라 기자실을 찾아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TV 토론 태도를 비판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이들은 “예의를 저버리고 상대방을 흠집 내기 위한 적의만 가득했다”(박선규),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줬다”(조해진), “있는 광기와 독기를 모두 발산한 이 후보가 측은하다”(이상일)고 했다. 안형환 대변인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후보가 북한이 사용하는 ‘남쪽 정부’란 표현을 쓴 것은 종북논란에 휩싸였던 통합진보당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했다.

새누리당은 남은 두 차례 TV토론에서도 이 후보가 마찬가지 행태로 나올 것으로 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캠프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 후보를 토론에서 배제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후보가 주제와 무관한 인신공격을 하거나 저속한 용어를 쓸 때 사회자가 적절히 제지만 해 줘도 토론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한 측근은 “이 후보가 막가파식으로 나오는 것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층을 상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통합진보당의 활로를 뚫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박 후보 측은 이 후보가 극렬하게 나올수록 오히려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므로 불리할 게 없다고 보고 있다. 박 후보는 또 2, 3차 토론에선 4월 총선 때 민주당과 통진당의 연대 전력을 더욱 부각해 이 후보와 문 후보를 하나로 묶어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박선규 대변인은 이날 “지난 4월 총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민주당이 단지 이겨보겠다는 목적 하나로 통합진보당과 연합했기 때문에 북한 주장을 노골적으로 반복하는 인사가 대선 후보 토론회까지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조해진 대변인도 “이 후보의 저질 공격 뒤에 문 후보가 숨어 있는 모습이었다.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짜고 나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박 후보가 4일 토론 때 측근 교통사고 사망의 여파로 표정이 너무 무거웠다는 지적이 많아 앞으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이정희 딜레마’에 빠졌다. 이 후보가 박 후보를 거세게 공격함으로써 ‘차도지계(借刀之計·남의 칼을 빌려 적을 침)’에 성공한 측면이 있지만, 문 후보의 존재감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TV토론을 담당하고 있는 신경민 대변인은 토론 전 “2대1 구도가 아닌 1대1대1 구도를 만들겠다”며 “정책으로 두 후보와 확실히 차별화하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토론 뒤 캠프에서조차 “이 후보가 지나친 대립각을 보여서 문 후보의 정책 비전 제시가 가려진 아쉬움이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토론 당일 밤은 물론이고 5일에도 인터넷 주요 포털에는 ‘이정희 어록’만 떠돌아다녔다. 그렇다고 향후 2, 3차 토론에서 문 후보가 이 후보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기도 힘들다. 자칫 ‘문 후보와 이 후보가 같은 편’이라는 인상을 주는 건 새누리당의 의도에 말리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캠프에서는 문 후보가 좀 더 공세적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이 후보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더 나아가 이 후보의 태도나 발언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대응함으로써 안정적이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에 비해 열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TV토론을 반전의 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적진으로 과감히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주문했다.
문 후보 캠프는 1차 TV토론을 계기로 ‘박 후보에 대한 양자 토론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 박용진 대변인은 “새누리당 주장은 이 후보가 없는 토론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두 사람만의 양자토론을 박 후보가 수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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