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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밸브 국산화 … 매출액 80% 넘게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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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경남 김해 본사 집무실에서 사업에 대해 설명하는 구윤회 대표. 그는 수출을 많이 늘린 공로로 5일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제49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사진 한국무역협회]

2002년 2월 아프리카 리비아의 대수로청 회의실. 대수로청 기술담당자가 물었다.

 “직경 2400㎜짜리 대형 밸브도 만들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산업용 밸브 제조업체인 에이스브이의 구윤회(63) 대표가 답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그런 밸브를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창업 3년차, 겁없는 ‘초짜’ 사장이 얼떨결에 내뱉은 대답이었다.

 대수로청 간부는 “일본과 독일 회사로부터 견적을 받았는데 너무 비싸고 납기가 늦어서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귀국 후 구 대표는 납기를 6개월로 적은 견적서를 발송했다. 독일 회사는 12개월, 일본 회사는 10개월에 완성할 수 있다고 한 작업이다. 며칠 후 ‘납기를 4개월로 단축할 수 있으면 계약하자’는 답이 왔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구 대표는 현대중공업 근무 시절 하던 ‘돌관작업’을 떠올렸다. 순서대로 진행해야 할 작업을 동시다발로 여러 명을 투입해 공기를 줄이는 방식이다. 전 직원이 밤낮으로 작업한 결과 3개월12일 만에 부산항에서 집채만 한 크기의 대형 밸브를 선적했다.

 이때의 성공으로 이후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사용된 밸브 대부분을 공급하게 됐고, 이는 회사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은 미국·독일·중국·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50개국으로 수출을 넓혔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출실적은 6153만 달러(약 665억원)어치.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도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32% 늘었다. 2000년 에이스브이를 창업해 이끌고 있는 구 대표는 수출을 늘린 공로로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9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구 대표는 샐러리맨 출신이다.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조선·해양사업부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27년간 배관설계를 주로 했다. 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 설계를 하던 중 창업을 결심했다. 인생은 대학졸업까지가 1라운드, 50대 초반까지 직장생활이 2라운드라면 그 이후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3라운드로 구성돼 있다는 소신에 따랐다.

 국내 조선·기계·플랜트 시장에서 사용되는 밸브가 대부분 수입이거나 외국 기업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제품이라는 데 착안해 밸브 국산화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창업 첫 해인 2000년 4억원이던 매출액은 해마다 두 자릿수로 성장해 지난해 832억원, 올해는 1200억원을 바라본다. 설립 초기 직원 12명이던 직원은 현재 340명으로 늘었다.

 구 대표는 경영 원칙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직원들 월급은 꼬박꼬박 제때 준다는 것과 원자재 구매대금은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했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공급업자들이 제품을 서로 주려고 하기 때문에 질 좋고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할 수 있고, 직원에게 신의를 지키면 그 이상으로 회사에 기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원칙이다.

 구 대표는 "돈 500만원을 빌리러 가서 자존심도 상해봤고, 개발이나 생산 일정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적도 많았으나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고 인정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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