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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연금저축 기자가 직접 갈아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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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연금저축은 직장인의 필수 재테크 품목이다. 연 400만원 한도로 짭짤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엔 ‘10년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최근 공개된 연금저축 10년 수익률이 턱없이 저조한 데도 고객들이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중도해지 외에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갈아타기다. 수익률이나 안정성이 더 좋은 다른 회사의 상품으로 계약을 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해본 갈아타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2박3일간 세 번 방문, 수차례 통화, 총 3시간 소요 …. 은행 직원이 허둥댈 만큼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연금저축을 중도에 해지하면 기타소득세(22%) 등을 물어야 합니다. 계약을 해지하기보다는 다른 금융회사 연금저축상품으로 옮기면 그런 세제 불이익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 큰 관심을 모으며 문을 연 ‘연금저축 통합 공시 시스템’. 여기 들어가면 이런 경고 팝업이 뜬다. 계약이전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안내다. 최근 연금저축 수익률이 턱없이 낮다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면서 계약이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계약이전은 현재로서는 애물단지 연금저축을 사후보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기존에 가입한 상품을 통째로 들고 다른 금융사로 이사가는 것이다. 중도해지와는 다르다. 중도해지 하면 그동안 받았던 세금혜택을 토해내야 한다. 소득공제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불입을 중단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말 많고 탈 많지만 연금저축 인기가 식지 않는 건 연간 400만원 한도의 소득공제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갈아타 봤다. 하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안 그래도 낮은 수익률에 수수료까지 붙었다. 2001년 가입, 기자가 11년간 꼬박 부어온 A은행의 연금신탁의 수익률을 확인한 게 한달 전이다. 은행에서는 ‘누적 수익률이 25%’ 라고만 표기했다. 연환산 하면 2%대, 예적금 금리만도 못한 수익률이다. 가입 당시인 2001년 은행 금리는 7%가 넘었다. 사상최저라는 지금도 3%보다는 높다. ‘어떻게 운용했길래…’ 은행에 대한 분노가 솟는다. 노후에 쓸 소중한 돈을 10년 넘게 방치한 데 대해 자괴감마저 든다.

 갈아탈 상품부터 골랐다.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고 펀드평가 사이트에 들어가 이것 저것 수익률을 비교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4.88%, 매년 성과가 들쭉날쭉 하지 않은 펀드를 선택했다. A 은행의 ‘연금신탁’을 B증권사가 파는 ‘연금펀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2일 오후, 연금신탁이 가입돼 있는 A은행의 시내 지점으로 갔다. 처음부터 헛걸음이다. ‘짐을 싸서 이사를 갈 것이니 살던 집부터 찾아가는 게 당연한 순서’라고 혼자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전화로 물어보든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올 걸’. 이사 가려는 집의 동 호수부터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이전하려는 계좌를 먼저 트고 오라는 안내를 받고 10분 거리에 있는 B증권사 지점으로 갔다.

 이전에는 그 증권사와 거래한 적이 없었으므로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다. 투자성향 분석 서류, 온라인 거래 신청서, 성향분석 결과에 대한 확인 서류, 계좌개설 신청 및 가입할 펀드 선택 서류… 직원 안내에 따라 수차례 서명을 했다. 증권사 직원은 새로 만든 계좌 서류와 자신의 명함을 손에 들려 주며 “이제 은행으로 가라”고 안내를 했다. 모두 40여 분이 걸렸다. 그 사이 은행 지점은 이미 문을 닫을 시간이다.

 이틀 후 짬을 내 A은행 지점을 다시 찾았다. 회사원이 근무 시간에 금융사 지점 두 곳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연금저축 계약을 파 가려고 왔다”고 하자 은행 창구 직원은 낯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계약을 옮기러 오는 사람이 많은지 묻자 담당자는 “드물게 있다”고 말한다. 이 직원은 본사 다른 부서 여러 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제야 연금계약 이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절차를 물은 것이다. 기자가 서류에 서명을 하면 은행 담당자가 이를 받아 전산입력하고, 다시 어딘가로 전화해 절차를 문의하는 것이 반복됐다. 문의 전화 네 통 끝에 간신히 처리 됐다. 이틀 전 증권사에서 새로 계좌를 열 때 보다 서명할 서류가 더 많다.

 끝이 아니다. 계약이 넘어갈 증권사 직원과 팩스로 서류를 주고 받고, 직접 통화해서 확인을 마쳐야 실제 송금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증권사에서 받아온 계좌번호와 담당자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은행 담당자에게 건넸다. 하지만 자리를 비웠는지 증권사 담당자가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전산상으로 통보가 이뤄지지 않고, 연금 가입자가 직접 계좌번호와 명함을 들고 다니며 팩스로 서류를 주고 받아야 한다는 것도 다소 의아하다.

 한참 만에 은행과 증권사 담당자 간에 연락이 닿았고 팩스로 서류가 오고 갔다. 겨우 마무리 됐다. 은행에서 은행이 아니라, 은행에서 증권사로 송금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틀 전 지정한 펀드에 실제로 돈이 들어가려면 하루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2박 3일에 걸쳐 금융사 두 곳의 지점을 오고 가는 시간 포함 총 3시간 걸려서야 연금을 옮길 수 있었다. 그동안 은행과 증권사 두 곳의 직원과 다섯 번 통화했다. 발품 뿐 아니라 돈도 들었다. 나중에 서류를 다시 읽어보다가 이전 수수료를 뗀 것을 발견했다. 은행 직원은 이전 수수료가 있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계약이전은 불만족스러운 연금저축을 ‘보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간단치 않은 절차는 이전을 실행에 옮기기 어렵게 만든다. 이전이 얼마나 이뤄지는지 통계조차 없다. 금융감독원 측은 “금융업권마다 보고 양식이 달라 따로 뽑아보지 않으면 옮긴 연금저축 건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이전된 계약은 그리 많지 않다”고 밝혔다. 갈아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수수료 역시 걸림돌이다. 게다가 수수료를 얼마나 받느냐는 금융사 마음대로다. 최고 5만원까지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300원만 받는 곳, 전혀 받지 않기도 한다. 대체로 은행과 손해보험사가 비싸고 연금펀드는 수수료가 전혀 없다. 조운근 금융감독원 팀장은 “수수료 체계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수료는 줄이거나 없애는 쪽으로 개선하고, 계약 이전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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