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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즉시 짜는 '참기름'으로 대박낸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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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달 25일 서울 중곡제일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아리청정’ 참기름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 SK텔레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곡제일시장. 저녁 장을 보는 주부들과 하굣길에 시장 구경을 나온 중·고생들로 추운 날씨에도 북적였다. 태양참기름집의 유형근(49) 사장은 가게를 찾은 손님 응대를 하는 틈틈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인터넷으로 우리 가게 참기름을 산 손님들의 구매 후기를 확인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유 사장의 가게를 비롯한 시장 내 기름집 5곳의 온라인 매출은 지난 두 달 사이 100배나 늘었다. 유 사장은 “인건비와 가게 임대료, 기름틀 비용은 이미 나가고 있던 거라 온라인 매출은 재료값 빼고는 순이익인 셈”이라며 “여기서 장사한 지 13년 만에 새해 전망이 밝은 것은 오랜만”이라고 했다.

 시장에는 스마트폰을 든 쇼핑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중곡시장에서는 와이파이로 연결해 모바일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엄마 심부름으로 친구와 시장에 왔다는 주연화(15·여) 학생도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틈틈이 웹 서핑을 하고 있었다. 주양은 “시장에 오면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편하다”며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맛있는 것도 사먹을 겸 자주 오게 된다”고 했다.

중곡제일시장의 모바일 할인쿠폰. [사진 SK텔레콤]

 중곡제일시장은 SK텔레콤이 지난 9월 말 시작한 ‘전통시장 혁신 프로젝트’의 1호다. SKT가 ‘새로운 가능성의 동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장에 정보기술(IT)을 도입해 운영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회사는 시장 전역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T 와이파이’를 깔았고,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을 수 있는 시장 전용 할인쿠폰을 만들어 인근 대리점을 통해 주변 고객에게 발송했다. 가게마다 판매 데이터나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태블릿PC와 소프트웨어 ‘마이샵’을 지급하고 사용법을 알려줬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는 참기름·건어물 같은 시장 제품을 입점시켜 사이트에서 적극 홍보하고 판매했다. 그러자 지난 두 달간 온라인에 입점한 가게들의 매출이 총 1억원, 15%가량이 늘었다. 중곡제일시장 박태신(59) 협동조합이사장은 “시장 브랜드가 알려지고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까지 합하면 시장이 얻은 가치는 더 크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 생긴 중곡제일시장은 대형마트·기업형 수퍼마켓(SSM)과의 경쟁 속에 살아남으려고 노력해 왔다. 2003년 143개 점 상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인회 차원에서 시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으며, 온누리 상품권이 나오기 전인 2005년에 국내 전통시장 최초로 자체 상품권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줬다. 위생적인 화장실과 주차장은 물론이고 2만원 이상을 구매하면 집까지 배달하는 공동배달시스템도 갖췄다. 지난해에는 조합에서 4000만원을 들여 자체 브랜드 ‘아리청정’도 만들어 참기름·건어물·견과류 같은 제품에 붙였다.

 하지만 상인들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소비자들은 점점 쇼핑 편의성이나 브랜드를 중시하는데, 시장 상인들의 힘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온라인 판로를 뚫으려는 시도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유명 인터넷 오픈마켓에 제품을 등록해 팔았지만 수수료를 빼면 남는 것이 없었고,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었더니 제품 사진·설명 등록이나 배송 같은 웹 관리가 벅찼다.

 SKT와 인연이 닿은 것은 그때였다. 회사는 시장 상생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연초부터 유통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사전조사 작업을 한 결과 중곡제일시장을 1호로 선정했다며 조합에 연락을 했다. 지난 9월 26일 하성민 SKT 사장이 시장을 찾아 박태신 이사장과 ‘중곡제일시장 활성화 업무 협약’을 맺었고, 상인들의 교육과 지원에 착수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11번가에 올린 시장 자체 브랜드 ‘아리청정’ 국산 참기름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시장 자체 판매사이트에서는 월 4~5건에 그쳤던 판매 수가 30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기존 대량생산 제품과 달리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당일에 가게에서 기름을 짜서 보내줬더니 “신선하다” “적극 추천한다”는 후기가 인터넷에 줄이어 올라왔다. 판매 페이지 관리, 고객 대응, 배송은 11번가에서 맡아서 해줘 시장 상인들은 물건에만 신경쓰면 됐다.

 모바일 지갑인 ‘스마트 월렛’과 접목한 상품권 판매도 대박이 났다. 시장에서 운영하던 자체 상품권을 스마트폰 쿠폰을 가져오면 8%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는 행사를 3주간 진행했더니 850만원어치 상품권이 팔려나갔다. 평소의 두 배다. “시집간 딸이 스마트폰으로 보내줬다”며 휴대전화를 들고 오는 50~60대 아주머니 고객도 부쩍 늘었다.

 시장 상인들도 변했다. 단골 고객에게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려면 일일이 전화번호를 입력하던 이들이 ‘마이샵’ 단말기에 등록된 목록으로 문자를 자동 발송한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감이다. 덕수건어물의 신현덕(58) 사장은 “포장과 브랜드만 보완하면 우리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 서울 중곡제일시장의 변화

▶SK텔레콤과 이렇게 상생했더니

-인터넷 쇼핑 11번가에서 시장 상품 판매·배송
-모바일 할인 쿠폰 발송
-무료 와이파이(Wifi) 설치
-가게마다 판매 데이터 관리 태블릿 ‘마이샵’ 지급

▶이렇게 바뀌더라

-온라인 매출 100배 증가
-대기업과 대량주문 계약
- 중곡제일시장 전용 상품권 3주 만에 850만원어치

▶판매

-청소년·20대, 스마트폰 들고 시장 나들이
-단골 고객에게 안내 SMS 보내고 고객 데이터 관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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