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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르고 꺾고 흐느끼고… 아, 좋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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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호 27면

어쩌면 대한민국 꼬마 중엔 내가 ‘그 음악’을 제일 많이 듣지 않았을까 싶다. 어렸을 적 서울로 레슨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주로 듣던 교통 정보 라디오 프로그램은 늘 ‘이 음악’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절대 예외가 없는 뻔한 화성 진행, 맞추어 춤추기조차 힘들 것 같은 경박스러운 리듬, 직설적인 가사, 노골적인 가수의 창법…. 싫기도 하거니와 이런 음악이 과연 현대인들의 어떤 정서와 융화된다는 걸까 하는 의문이 가장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이 음악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어린 나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트로트의 재발견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여느 때처럼 밤 늦게 가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신 친할머니가 웬일인지 한동안 방에서 아무 인기척도 내시지 않는 거였다. 이상하게 여겨 조용히 방 문을 연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할머니는 방바닥에 멍하니 쭈그려 앉아 조그만 사각 트랜지스터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 나오는 ‘이 음악’에 홀려 계셨던 거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등등한 기상이 늘 좌중을 압도하던 우리 할머니는 음악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여기던 손녀 연주회에서조차 아무 재미를 못 느끼시던 그분이 어느 지친 밤 홀로 방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니. 음악은 실로 전 인류의 것이로구나….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감정의 수요를 음악으로 전환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거구나…. 그런데 가만, 할머니가 들으시던 이 음악이 뭐였더라? 뭐길래 내가 갖은 고생 해가며 배우는 어려운 음악보다도 더 쉽게 저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말이지. 고작 이런 저속하고 유치하고 촌스러운 음악이 대체 뭐길래?

모두 짐작하셨겠지만 이 음악은 바로 ‘트로트’다. ‘전통가요’라고도 불리고 ‘뽕짝’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악은 사실 태생부터가 논란거리인 ‘문제아’다. 일본의 전통가요 ‘엔카’의 변형일 뿐이라는 설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엔카의 태생은 메이지유신 이후 더욱 강력해진 군국주의에 반발하는 사회풍자적이고 해학적인 가사를 전통민요나 민속가락에 붙여 노래하던 거리의 악사들을 ‘자유 엔카시’라 부른 것에 기인한다. 이후 1928년 군부 쿠데타가 성공하자 지금까지의 모든 반사회·반체제적 엔카 대신 사랑을 주제로 하는, 그중에서도 특히 이별과 눈물, 미련과 원망 등을 그린 최루성 강한 엔카가 대량 생산됐으며 이 시기에 레코드 문화가 막 유입된 한국의 전통 가락에 알게 모르게 엔카 물이 들었다는 주장이다.

거꾸로 엔카가 트로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일본 엔카의 시초 격 인물인 고가 마사오(古賀 政男)가 있다. 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 경기창·남도창·서도창 등을 꿰고 있던 그가 1931년 발표한 ‘술은 눈물일까 탄식일까’는 지금까지도 엔카의 비조로 여겨지는 곡으로 공교롭게도 그의 친구였던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과 거의 비슷해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전적이 있다. 게다가 이 시기의 한국은 이미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낙화유수’ ‘봄노래 부르자’ 등 이런 유의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 서양화된 전통 가요는 한국이 일본보다 빨라도 한참 빨랐다는 것이다.

모든 음악이 그렇지만 트로트 역시 출신 성분을 따지기가 참으로 무색하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발생한 빠른 춤곡인 ‘폭스트로트(fox trot)’는 재즈의 ‘래그타임’과 ‘스윙’을 섞어놓았다고 보면 된다. 대신 브라스가 대거 가미된 빅밴드가 연주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쿵짝쿵짝 하는 리듬이 서서히 변형돼 현재 우리가 아는 트로트 리듬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화성 또한 재즈의 영향이 깊어 보인다. 우리가 쉽게 떠올릴 만한 트로트 특유의 화성 중에는 재즈의 9화음이나 11화음이 고르게 분배되는 대신 고유의 스타일로 재배치된 것이 많다. 윤심덕(위 사진)이 1926년 발표한 ‘사(死)의 찬미’는 아예 유명한 ‘다뉴브강의 잔물결’(이온 이바노비치 곡)에 가사만 붙였는데 묘하게도 이 멜로디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계인 ‘라’ 중심의 5음 음계(라-도-레-미-솔) 가락과 유사하게 들린다.

이 정도면 정통 서양 음악에 뿌리를 둔 셈이지만 트로트는 영락없는 한국 음악이다. 한결같이 참담했던 시대가 서글프면서도 지루한 화성 전개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염원이 단순하고 정신 없는 리듬이 되었다. 급격하게 몰아닥친 서구 문명에 우리 고유의 ‘빙빙 돌려 말하기’는 간데없고 직설적인 가사가 난무하는 데 반해 그 배경은 아직도 유교적 체제에 갇혀 있으니 그 간극이 곧 ‘한’스럽다. 우리네 전통 음악과 흡사해질 수 밖에 없다. 시원하게 내지르고 구성지게 꺾으며 흐느끼는 창법은 트로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를 얹었을 뿐 잘 짜인 서양 음악의 틀을 유지하는 한국 가곡보다는 트로트가 훨씬 더 한국적인 음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족의 명운을 같이한 친구의 세련되지 않은 느낌을 싫어하던 나도 이제는 가끔 TV를 돌리다 트로트 음악쇼를 한참 쳐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릴 때도 있다. “아,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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