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서른 즈음에' 30년…그땐 서른이 중년, 지금은 46세

중앙일보

입력 2023.06.09 05:00

수정 2023.06.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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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가수 고 김광석이 이 노래 ‘서른 즈음에’를 발표한 건 1994년 6월이다. 이 노래가 나올 때 태어났다면 올해로 서른이다. 이들은 당시 이 노래가 중년에 접어드는 쓸쓸함을 주제로 공감을 얻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 한다.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히 진행하면서 30세와 중년의 거리는 멀어졌다.

1995년 6월 'KMTV 김광석수퍼콘서트'에 출연한 가수 고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있다. 유튜브 캡처

청춘 안 멀어졌고, 잔치 안 끝났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1994년의 중위연령은 28.8세였다. 중위연령은 국내 인구를 출생연도별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위치한 나이다. 같은 해 최영미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가수 김광석이 “청춘이 멀어져 간다”고 부를 때, 시인 최씨가 “잔치는 끝났다”고 쓰던 당시엔 30세라면 전체 인구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하지만 올해 중위연령은 45.6세다. 29년 전과 비교하면 16.8세 높아졌다. 연간 출생아 수가 100만명에 이르렀던 1960년대와는 달리 최근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졌고,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50대가 되면서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드라마를 보면 최근 종영한 ‘닥터 차정숙’에서 레지던트 1년 차로 병원 일을 시작한 차정숙(엄정화)의 나이는 46세다. 정숙은 극 중에서 나이가 많다는 핀잔을 듣지만, 이젠 40대의 도전은 비난보단 응원을 받는다.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출판 시장도 30년 전과 다르다. 올해 2월부터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김미경의 마흔 수업’ 등 40대 또는 마흔이 제목이나 부제에 들어간 책이 올해에만 19종 나왔다. ‘나의 마흔에게’,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등이다. 인생의 중반부에서 고민하는 독자를 위한 책들은 30대가 아닌 40대를 겨냥하고 있다. 
 

높아진 초혼연령, 삼순이는 어린 축

높아진 중위연령은 결혼·출산‧취업‧은퇴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2005년 방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이른바 ‘노처녀’ 역할로 나오는 삼순이(김선아)의 극 중 나이는 30세다. 삼순이는 결혼정보업체 매니저로부터 “여자 나이 서른에, 이런 조건으로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구박을 받는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과 그의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올해 나이가 37세라는 설정이다. 2000년대 중반에 노처녀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나이보다 한참 많다지만, 드라마 내에서는 물론 시청자 사이에서도 이런 인식은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과 그의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올해 나이가 37세라는설정이다. 사진 넷플릭스

1994년 25.1세, 2005년 27.7세였던 여성의 초혼연령은 지난해 31.3세로 높아졌다. 삼순이보다 나이가 많다. 혼인 건수는 크게 줄었다. 2005년 31만4304건이었던 연간 혼인 건수는 지난해엔 19만1690건으로 39% 감소했다. 결혼을 아예 안 하거나 한다고 하더라도 이전보다 늦게 했다는 의미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인구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사회 변화를 인구 압박으로 설명한다. 윗세대 인구가 많을수록 현세대를 짓누르는 압박이 강해지고, 사회적 진도가 늦어진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서른 즈음에가 나올 땐 29세면 위보다 아래가 많은 사회적 어른으로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야 했다”며 “지금은 위가 가득 찼으니 사회 진출 연령대가 늦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니 연령과 사회적 위치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 특정 나이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나 호봉제를 완화하는 게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신입사원은 30대, 60대도 일할 나이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 평균 나이는 2019년(30.9세)에 30세를 넘어섰다. 1998년엔 25.1세였다. 인구 압박이 사회 진출을 늦췄다는 풀이가 나온다. 정연우 인크루트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은 "경쟁 심화로 지금의 신입사원 평균 나이는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회생활의 시작이 그만큼 늦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만 19∼34세 청년 1만49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7.5%는 부모 집에 거주하는 이른바 ‘캥거루족’이었다. 이들은 생계비를 이유로 부모와 함께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중 3분의 2(67.7%)는 뚜렷한 독립 계획이 없었다.
 
한편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김광석이 1990년 공개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는 인생의 끝자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한 노인의 독백이다. 이 역시 지금의 60대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됐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 수와 증가 폭은 동시에 사상 최다·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45만2000명 늘어 585만8000명에 달하면서다. 1년 새 40만명이 넘게 증가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4월엔 627만4000명에 달하면서 월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김영선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장(노인학과 교수)은 “곧 70대에 진입할 베이비붐 세대 ‘욜드(YOLDㆍyoung old)’는 과거의 70대보다 학력이 높고, 정보기술(IT)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다”며 “60대에게 더는 황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