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했다가 당했다···목숨 거는 '이별' 작년만 229명

중앙일보

입력 2020.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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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지난 3일 오전 8시쯤 자신이 살던 제주시 오라2동 주택에서 여자친구를 사흘간 감금하고 성폭행한 강모(37)씨를 감금 및 강간ㆍ상해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A씨에게 이별을 통보받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 강씨는 A씨의 손과 발을 묶어 성폭행하거나 흉기로 위협하고 담뱃불로 신체 주요부위를 지져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최근 일어난 이 사건을 두고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군포시에선 20대 남성이 자신의 연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해 구속됐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헤어지자고 해 화가 나 그랬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지난 1월 인천 미추홀구에선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자신의 목을 흉기로 찌르겠다고 협박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비슷한 유형의 '이별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대책은 딱히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트폭력 이미지.

헤어진 연인이 저지른 이별범죄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2019 분노게이지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살인ㆍ살인미수 피해자가 229명에 달했다. 이 중 29.6%(58명)는 이혼ㆍ결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지인 남성이 살해한 여성은 975명에 달한다. 살인 미수까지 포함하면 1810명, 주변인까지 포함하면 2229명이다.
 
문제는 이별범죄를 예방할 법적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데이트폭력의 경우 납치와 폭행 등 범행이 벌어져야 사건 파악에 나설 수 있다. 수사기관이 예방 차원에서 개입하기 어렵다. 이별범죄의 전조라 불리는 스토킹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해 1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조치를 할 수 있다. 국회에서 발의한 ‘스토킹 처벌법’은 21년째 답보 상태다.   

데이트폭력 이미지.

“전조 미연에 막아야”

전문가들은 이별범죄는 전조(前兆) 증상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연에 전조를 알아채고 범죄를 방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데이트 폭력을 이별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라 생각하는 수사기관의 안일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친밀한 상대라는 이유로 범죄라고 인식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개인이 알아서 책임지게 둘 것이 아니라 24시간 신변을 보호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자문위원)는 “신변 보호조치를 신청한다고 해서 누구나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며 “피해자 또는 피해 우려에 노출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때 가급적 빠짐없이 실질적 보호조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이별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2014년 '클레어법(가정폭력 및 학대정보제공 제도)’을 도입했다. 폭력 위험에 노출된 사람 또는 피해자 가족 등 제3자가 경찰에 데이트 상대의 전과기록을 요구하면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다. 일본은 2013년 ‘배우자 폭력 방지법’을 개정해 ‘법률혼·사실혼’으로 한정했던 범위를 ‘현재 동거 중이거나 동거했던 교제 상대’로 넓혔다. 생명ㆍ신체를 위협하는 폭력, 협박한 연인은 보호 명령 대상으로 지정해 피해자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도록 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