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파리의 루이비통 열풍, 마오쩌둥의 세계관을 넘어서다

중앙일보

입력 2016.07.16 00:01

수정 2016.07.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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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위한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색깔을 다양하게 나타내려는 중국인 욕구의 반영… 고급 가방·지갑 구매는 불합리한 현실과 상황을 잊게 만드는 달콤한 안정제일 수도
 

자연에 둘러싸인 루이비통뮤지엄의 전경. 너무 크고 높은 건물이라 카메라에 전체를 담을 수 없다.

프랑스 도착 3일째 되던 날 파리 최고 중심지로 향했다. 서울의 남산타워,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같은 느낌이 들지만 목적지는 개선문이다. 그러나 통상적 이미지 속의, 이미 수차례 찾았던 개선문은 아니다. 북서쪽 샹젤리제 거리가 아니라, 샹젤리제 거리 반대편 즉 남동쪽에 들어선 개선문이 행선지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생긴 버릇이지만, 무심결에 반복됐던 기억이나 추억을 다른 각도나 관점에서 관찰하려 한다. 신문기사를 읽은 뒤 붙인 코멘트에 대한 다른 독자의 글, 다시 말해 댓글에 대한 댓글을 읽는 자세라고나 할까?

이순신이나 예수를 통한 역사나 종교가 아니라, 원균이나 유다의 눈으로 본 정반대 세계관이다. 사설(邪說)에 빠진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설(異說)을 통해 정설(定說)을 되살피는 심리다.

세상만사 특별한 것이 있을까? ‘결론’은 누구나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결론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직후 많은 프랑스인이 상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프랑스의 품격과 영광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이슬람 전체가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적이라고 강조했다.

왜 샹젤리제가 프랑스인의 가슴 한가운데 있는지, 왜 프랑스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인물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지… 개선문 반대편에 서서 살펴보고 싶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안에 있으면 잘 안 보인다.

개선문 주변은 언제나 그러하듯 글로벌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 소형 디지털 카메라만이 아니라, 무거운 아이패드를 통한 셀카 찍기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그러나 개선문 반대편은 너무도 한산하다.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올 뿐, 아예 인적이 없다.

같은 파리지만, 로마시대 건축물을 본뜬 개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과장하자면 성(聖)과 속(俗), 코스모스와 카오스 분기점에 개선문이 드리워져 있다고나 할까?

개선문 주변 도로에는 아예 차선이 없다. 5차선은 됨직한 복잡한 카오스 도로지만, 접촉사고는 극히 드문 코스모스의 현장이 개선문 주변 도로의 모습이다. 같은 공간에 펼쳐진 전혀 다른 세계는 파리의 매력인 동시에 파리만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꿈같은 얘기지만, 성과 코스모스에서 속과 카오스로 접어드는 순간 ‘특이한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앙증맞은 10인승 전기버스가 서 있는 정류장이다. 버스 유리창에 적힌 행선지가 ‘마하트마 간디’ 거리라고 한다. ‘파리와 간디? 인도의 간디가 파리 거리에 있단 말인가?’

버스 안에는 아프리카 출신인 듯한 흑인 운전사가 앉아 있다. 간디 거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다. 한 번 만에 곧장 달려가는, 5분 거리에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비하게 느껴지는 두 가지 조합을 보면서 10인승 버스에 올라탔다.
 | 런던의 간디 거리에는 간디가 없다

작품 제목 ‘나의 이상’.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의 이성적 가족상을 주제로 했다.


간디의 동상이나 인도의 비폭력운동 같은 이미지가 개선문 도시 파리와 더불어 겹쳐졌다. 손님 5명을 태운 1유로짜리 전기 버스는 소음 하나 없이 물 흐르듯이 달렸다.

소음 제로 자동차는 씨 없는 수박처럼 느껴진다. 소음으로 가득 찬 자동차도 싫지만, 소음 제로나 씨 하나 없는 수박도 탐탁지 않다.

버스는 개선문 반대쪽 코스모스와 성의 공간으로 향했다. 숲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파리 16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브와 드 불로뉴(Bois de Boulogne)공원’이다. 정확히 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큰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간디 거리가 어디냐고 운전사에게 묻자, 손가락으로 발 밑의 도로를 가리킨다. 뭔가 잔뜩 기대했지만, 간디 거리는 동상이나 비폭력운동과 무관한 무늬만 간디인 곳이다. 서울 테헤란로에서 이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듯이, 간디 거리에는 간디가 없다.

더불어 필자가 탄 전기버스는 브랜드 가방으로 유명한 루이비통사가 제공한 루이비통뮤지엄행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눈앞에 들어선 ‘초대형’ 건물이 바로 루이비통뮤지엄이다. 전기버스는 뮤지엄과 개선문을 오가는 관람객 전용 교통수단이다.

루이비통뮤지엄이 있는 곳이 간디 거리이기 때문에 행선지를 간디 거리라 붙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미천한 프랑스어 실력 때문이었지만 ‘엄청난 착각’을 통해 얼떨결에 뮤지엄에 떨어진 것이다.

개선문 쪽으로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다. 루이비통 가방에 별 흥미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름은 뮤지엄이라 달았지만, 아마 창립 이래 만들어진 루이비통 가방이나 관련 제품들이 전시하는 광고 이벤트일 것이란 판단도 들었다. 아침 슈퍼마켓에 들르면서도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가는 세상이다.

원리주의자로 비난받을지 모르겠지만,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러 온 청바지 차림의 관객을 보면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 든다. 브랜드는 브랜드에 맞는 품과 격을 필요로 한다고 믿고 싶다. 21세기 글로벌 소비시대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브랜드 특별시민으로 승격될 수 있다.

그게 싫다. 파리와 간디가 아닌, 파리와 루이비통이라는 너무도 천편일률적인 조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형 작품에 승부를 거는 중국식 예술은 글로벌 시장 브랜드 루이비통의 이상과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발을 멈추게 만드는, 뭔가 끌리는 부분이 초대형 건물 전체를 통해 느껴진다. 첫인상이지만, 20여 년 전 루브르뮤지엄에서 접했던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봤을 때의 느낌을 일깨워 준다고나 할까? 나이키의 날개 부분에 해당될 법한 엄청나게 큰 유리천장이 뮤지엄 윗부분으로 솟구쳐 있다.

뮤지엄 스태프에게 어떤 것이 전시되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루이비통 제품 이벤트일 것이란 예단은 빗나갔다. ‘현대중국 예술 시리즈(中國收藏)’가 주인공이다. 루이비통 재단의 자금에 의해 창조된 예술공간이기에 루이비통뮤지엄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을 뿐, 평소에는 근현대 예술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 내용이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간디가 아니라, 마오쩌둥(毛澤東)이 들어선 루이비통…. 입장료는 18유로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과 루이비통이란 포스트 모더니즘 현장을 살피는 수업료치고는 결코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 변화가 일고 있지만, 건축물이 아닌 건물로 가득 채워진 나라가 한국인 듯하다. 건축물이란 예술로서의 심미적 관점을 부각하면서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건물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수용, 가동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는 기능성·작업성·능률성에 주목하는 세계다.
 | 건축물 아닌 건물로만 채워지는 한국

대형 작품에 승부를 거는 중국식 예술은 글로벌 시장 브랜드 루이비통의 이상과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계산은 빠르지만 학문으로서의 수학에 무심한 한국적 모순은 건물, 건축물이란 상이한 공간을 통해서도 재확인될 수 있다. 국내 건축가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전세계 무대에 내놓을 만한 건축물이 없다. 3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세계 건축물 사진전에서 ‘한국의 민낯’을 본 적이 있다.

외국 사진작가가 찍은 서울 주변의 모습이다. 우주 도시를 연상케 하는 초고층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흥미롭게도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 사진은 반대편에 전시된 또 다른 모습의 분신이자 거울처럼 느껴졌다. 북한 평양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다. 서울보다는 층수도 낮고 질적 수준도 떨어지는 아파트 단지지만, 기본적인 발상은 너무도 똑같다.

루이비통뮤지엄은 건물과 건축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모델이다. 2008년 3월 착공에 들어가 2014년 10월 말 완공된, 총공사비 1억3500만 달러에 달하는 문화 공간이 건축물 루이비통뮤지엄의 이력이다.

초대형 건물의 크기에 비해 공사비용이 너무도 저렴하다. 루이비통뮤지엄은 착공에 들어가기 전 프랑스 지성을 이분화시킨 국론 분열의 주범이기도 하다. 21세기 파리의 새로운 명물 창조란 명분 아래 토지의 무상제공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격론과 논쟁 끝에 파리시는 루이비통재단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알짜배기’ 공간을 무상 제공한다.

 

루이비통뮤지엄 1층 커피숍 위의 물고기 장식물. 건물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노력이 돋보인다.

에펠탑이 그러하듯 탄생 이후 프랑스의 새로운 얼굴로 등장한다. 뮤지엄은 크게 보면 2층 구조로, 건물 높이가 50m에 달한다. 외장은 3584장에 이르는 초대형 유리로 이뤄져 있다. 모든 유리는 직면이 아닌 곡면으로 이뤄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이다.

유리를 연결하는 골격은 직선과 유선형 철골이다. 가능하면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은, 곡면 유리와 유선형 철골로 이뤄진 최첨단 건물이다. 이 같은 건축물을 창조해낸 인물은 캐나다 출신 미국인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다. 건축에 관한 세계적 권위의 상을 전부 휩쓴 인물이다. 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구겐하임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콘서트홀, 미네소타주 와이즈만미술관은 대표작들이다.

표를 끊고 1층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의 끝도 안 보일 정도 높이의 공간이 펼쳐진다. 건물이란 관점에서 보면 공간활용에 전혀 무관심한, 생산성 제로의 설계다. 현대인은 기능성에 근거한 건물관(觀)에 익숙하다. 예술과 기능을 하나로 연결한 것도 있겠지만, 기능성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여부가 예술로서의 건축관(觀)일지 모르겠다.

1층 내에는 작지만, 인상 깊게 새겨질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들어서 있다. 뮤지엄 상설서점이다. 루이비통뮤지엄 내 서점은 마릴린 먼로의 얼굴 왼쪽에 드리워진 작은 점처럼 느껴진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나 할까?

서점 내에 놓여진 책과 뮤지엄 기념품을 살펴봤다. 수적으로 전부 합쳐도 100여 점이 채 안 된다. 싸구려일수록, 자신이 없을수록 양(量)이나 크기로 승부를 보려 한다. 통 큰 호연지기로 표현되는 이백(李白)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기네스북에서처럼 세계 최고·최대에 매달리는 정서가 그 같은 호례(好例)들이다.
 | 인류 최초 아날로그 세계의 원형

루이비통뮤지엄 1층 예술무대. 가운데 색상은 루이비통만이 창조할 수 있다는 인공 컬러다.

세계로 나가는 것도 좋지만 먼저 동네에서 인정받는 빵이나 과자가 중요하지 않을까?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메뉴는 많아야 20가지 안팎이다. 서점의 크기나 많은 종류의 책만이 아닌, 하나의 문제에 관한 깊고도 다양한 접근이 뮤지엄 내 서점의 특별한 이미지로 와 닿는다. 세심하게 선별화된 조명이나 진열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서점 오른쪽에는 50여 명이 들어갈 정도의 카페 겸 레스토랑도 하나 들어서 있다. 엄청난 크기의 뮤지엄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공간이지만, 고급스럽다. 천장에 드리워진 물고기 장식물은 뮤지엄이 지향하는 공간의 의미를 재확인시켜주는 증거로 느껴진다.

건축가 게리는 뮤지엄의 형상을 범선(帆船)으로 해석한다. 바다를 향해 나가는, 길고도 먼 여정에 나서는 ‘보이지(Voyage)’의 무대로서의 뮤지엄이다.

필자의 눈에 비친 니케의 날개는 범선의 돛에 해당될 듯하다. 하늘로 치솟은 돛은 수직·수평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닌, 비대칭 구도로 이뤄져 있다. 게리는 눈에 보이는 대칭형 조화나 질서가 아닌 카오스 속에 숨겨진 ‘화(和)’에 주목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명확한 부조화를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은 이미) 그 자체로서 질서를 갖고 있다.”

때마침 접한 현대중국 예술시리즈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이뤄질, 뮤지엄 오픈 이래 최대의 전시회라고 한다. 반체제 예술가로 통하는 아이웨이웨이(艾未未)를 비롯해 10명의 중국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루이비통뮤지엄은 전부 11개의 상설전시관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가 초대형이다.

현대중국 예술시리즈는 그 같은 뮤지엄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전시회가 아닐까? 크기나 양은 중국예술에서 접할 수 있는 가치이자 공통분모 중 하나다. 손목이 아니라, 손과 팔 전체로 내려치는 중국식 부엌칼에 비견될 만한, 인류 최초 아날로그 세계의 원형처럼 느껴지는 세계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즉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3000척(약 900m)이 된다는 엄청난 중국식 ‘뻥’은 중국 예술의 기초이자 기반이다. 호방, 호탕한 대륙적 기질이라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모습이 결여돼 있다. 남송(南宋)시대를 제외할 경우, 각론이 없는 총론의 문화로 유지돼 왔다. 제대로 된 작은 관광기념품 하나 구입하기도 어려운 곳이 중국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21세기 중국의 예술세계만큼 초대형 작품이 난무한 시대도 없을 듯하다.

전시 중인 현대중국 예술시리즈는 ‘사이즈의 예술’로서의 중국을 음미하게 만드는 최적의 공간이다. 가로 10m 이상의 그림은 보통이다. 루브르뮤지엄에 걸린 최대 크기의 그림 나폴레옹 대관식을 소품으로 여길 만한 작품들이다.
 | 중국인의 애플 사랑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어

뮤지엄에 전시된 목이 잘려진 채 버려진 부처. 문화혁명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현대중국 예술시리즈는 뮤지엄이 탄생된 2014년 10월 이후 최대 규모 전시회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까 뮤지엄 내 손님의 절반이 중국인들이다. 여성의 경우 대부분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다.

18유로짜리 전시회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입장료도 그렇지만,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도 궁금하다. 루이비통뮤지엄 완공 이래 가장 큰 전시회가 중국 관련이라는 사실과, 중국인으로 채워진 파리의 문화공간…. 흥미롭지 않은가?

그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은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인터넷판 뉴스사이트인 <런민망(人民網)>이 지난 2월에 발표한 기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2015년 중국인의 해외 여행 관련 기사다. 지난해 외국 여행에 나선 중국인은 1억2000만 명에 달한다. 13억 인구의 9% 정도가 한번쯤 외국에 나간 셈이다.

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구입한 고급 브랜드 제품에 대한 소비 총액은 무려 183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 경제 위축이 본격화된 해라고 하지만, 2014년의 1650억 달러에 비해 10% 정도가 늘어났다. 1830억 달러는 전 세계에서 소비된 고급 브랜드 총소비액의 46%에 달하는 금액이다. 고급 브랜드의 내용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고급 브랜드 리스트는 어떤 것이 있을까? 리서치 전문회사 포천캐릭터(www.fortunecharacter.com)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톱 브랜드 5는 다음과 같다. 1위 애플, 2위 루이비통, 3위 구찌, 4위 카르테, 5위 크리스챤 디올.

미국·유럽·일본 어디를 가도 애플 매장의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다. 보통 애플이라고 하면 젊은층을 연상하기 쉽지만, 중국인의 경우 남녀노소 구별 없이 매장을 찾는다. 애플 후속모델에 대한 열기가 식으면서 주춤해지고 있지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한꺼번에 서너 개씩 구입하는 70대 노인도 볼 수 있다.

스스로 사용하기 위한 구입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국으로 돌아가 되팔기 위한 것이다. 세금이 붙은 중국 내 가격과 외국에서 구입한 제품가의 중간 어디쯤에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한다.

루이비통은 그 같은 중국인의 세계관을 반영한 고급 브랜드의 정수에 들어간다. 그러나 정상의 애플과 다른 4개의 톱 브랜드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성격의 상품이다. 전자제품 애플의 경우 아무리 비싸도 1000달러 이하에서 해결될 수 있다. 열혈 애플팬은 예외겠지만, 한번 구입하면 2~3년 뒤쯤에야 신상품에 눈이 간다.

루이비통이나 구찌는 소비재 상품이다. 개별 상품의 가격도 높지만, 종류도 많고 계절별로 등장하는 신상품 때문에 구입 비용도 한층 더 높다. 한번 구입하면,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 평생 이어진다. 전부 비슷하게 보이지만, 디자인이나 재료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중국인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프랑스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 루이비통은 소비재 고급브랜드 세계 1위를 점하는 곳이기도 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5년 루이비통의 기업가치는 27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최하 1000달러에서 시작되는 최고가 브랜드의 대명사인 에르메스(Hermes)는 2위다. 기업가치는 189억 달러다. 3위와 4위는 각각 기업가치 138억 달러와 89억 달러의 구찌와 샤넬이다.
 |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 가방, 지갑

루이비통뮤지엄 1층 로비에서 바깥쪽 정원으로 통하는 거울 건널목.(좌) / 뮤지엄 3층에서 바라본 바깥쪽 정원의 상징인 흐르는 시냇물.

루이비통이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여러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백발삼천장’, ‘비류직하삼천척’ 같은 중국식 사고는 최고·최상 글로벌 브랜드로 연결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듯하다.

필자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가방과 지갑’이란 물건에 주목한다. 루이비통의 간판은 구두·스카프·옷이 아닌, 가방·지갑이다. 에르메스 가방·지갑도 있지만, 워낙 가격도 높고 한정판이기에 실제로 갖고 있거나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상대적이지만, 루이비통은 에르메스에 비하면 중가(中價)에 속한다.

생산량도 많다. 고급 브랜드 가방으로 가장 대중화된 상품이 1000달러 이하에서도 손쉽게 구입 가능한 루이비통 제품이다. 일단 손을 뻗치면 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에르메스에 비해 대중적 성격이 강하다. 중국인은 그 같은 부분에 주목하면서 루이비통 가방·지갑 사재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구두·옷·스카프가 아닌, 가방·지갑일까? 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서의 가방·지갑이 해답이 아닐까? 가방·지갑은 외출을 전제로 한 소지품 보관용 도구다. 예측 가능한 소지품으로 가득 찬 책가방이나 점심보관용 보따리와 달리, 자신만을 위한 프라이버시의 특별한 장소가 가방·지갑이다.

중국 역사를 되돌아볼 때, 20세기 말은 보통 중국인이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으로서의 가방·지갑을 소유하게 된 초유의 전환점이 아닐까 싶다. 공산 체제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양과 크기에 가치를 두는 각론이 없는 나라가 바로 중국의 역사이자 위업일지 모르겠다.

최근 보스톤에서 중국 우표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지만, 희한하게 느낀 것은 우표 속 인물의 수에 관한 부분이다. 작은 우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최소한 10여 명, 많으면 점으로 나타나는 수백·수천 명에 이른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단 한사람은 마오쩌둥이다. 중국은 마오쩌둥과 그 밖의 사람으로 대별되는 나라다. 개성으로 무장한 다양한 캐릭터가 없다. 개인이 없다. 마오쩌둥 외에는 인민과 중국만이 있을 뿐 나만의 시간이나 공간과 무관한 곳이 통 큰 대륙의 실상이다.

루이비통 가방·지갑은 그 같은 중국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가치’일지 모르겠다. 루이비통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개인용 가방·지갑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때마침 글로벌 브랜드 루이비통이 중국인 눈에 들어온 것이다. 중국인이 최고 브랜드로 여긴다는 애플과 에르메스의 700달러짜리 스카프도 루이비통 가방 안에 쏙 들어갈 수 있다.
 | 마오쩌둥과 그 밖의 사람으로 대별되는 나라
사실, 개개인 개성을 나타내는 공간으로서의 브랜드 가방·지갑만이 아니라, 한국·일본 나아가 루이비통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루이비통이 유명해진 것은 그리 트리아농(Gris Trianon)이란 이름의 초대형 고급여행용 트렁크에서 시작된다. 1m가 넘는 크기지만, 가볍고 도난방지용 특수자물쇠가 달렸다는 점에서 인기를 끈다.

1854년 탄생된 루이비통의 역사는 당시 등장한 유럽 내 철도여행의 궤적과 일치한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보통사람들을 위한 여행이 프랑스 철도를 통해 나타난다. 인상파 화가들이 중산층 시민들의 바닷가 여행을 그림의 주된 테마로 잡던 시기다. 짐꾼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초대형 루이비통 트렁크는 해변에서 이뤄지는 샴페인 파티용 액세서리로 받아들여졌다.

개인을 단위로 한 여행은 100년 뒤인 1970년대 일본으로 넘어간다. 비행기를 통해 유럽 여행에 나섰던 보통 일본인들이 루이비통에 매료된다. 대형 트렁크를 대신해, 손잡이 가방과 작은 지갑이 한순간 열도 전체로 퍼져나간다.

한국의 경우 올림픽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정착된 1990년대부터 루이비통 가방·지갑에 빠져든다. 전체를 위한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색깔을 다양하게 나타내고 삶을 즐기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것이 루이비통 가방·지갑이다.

21세기초에 나타난 중국의 루이비통 열풍은 한국·일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애플 제품에서 보듯, 남녀노소 관계없이 루이비통에 열광한다는 부분이다. 필자의 구시대, 구세대적 판단이지만, 루이비통 가방을 맨 남성을 보면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60대 남성이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여행을 다닌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중국인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돈이 있다면 10대 아들에게 루이비통 가방을 선물하고, 아들도 학교에 자신 있게 들고 가서 자랑을 한다. 급우들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중국 문화 때문이라 말하겠지만, 그 이상의 논리와 세계관이 루이비통 열풍 속에 잠재해 있다.
 | 사방팔방 문을 전부 오픈한 루이비통뮤지엄

뮤지엄 3층에서 1층 아래로 내려다본 모습. 유연한 선으로 처리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중국 경제가 내리막으로 들어가면서 브랜드 구매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필자는 반대로 본다. ‘잠시’ 주춤하겠지만, 다시 급상승할 것이다. 중국인의 상식과 세계관이 주된 배경이겠지만, 개인으로서의 주장과 외침이 앞으로 한층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독재에서부터 부정·부패에 대항하는,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이나 주장만이 아니다. 돈도 있고 미국에 버금가는 슈퍼파워란 소리도 듣지만, 뭔가 부족하고 어둡다. 닫힌 벽을 향한 반발과 반감이 개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중국적 단점이자 장점일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외침에 그친다는 데 있다. 손문(孫文)의 유언을 빌리자면, “흩어진 모래알(散沙) 같은 사람이 바로 중국인”이다.

루이비통 가방·지갑은 그 같은 불합리한 현실과 불건전한 상황을 잊게 만드는 달콤한 안정제, 아니 글로벌 만병통치약일지 모르겠다. 고급 브랜드를 통해 자신을 특별하게 나타내려는 심리는 인류 공통분모에 해당된다.

짝퉁일망정 그 같은 특별 심리를 어느 정도 보상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인은 그 같은 인류공통의 심리를 넘어선, 개인으로서의 특별한 외침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루이비통 열풍에 빠지고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루이비통뮤지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특이한 점은 두 가지다.

먼저 물과 거울이다. 1층에서 바깥쪽 정원으로 통하는 통로로 걸어가면 물을 통한 물결이 바닥 전체를 적시고 있다. 입체화된 거울을 통해 사방을 비추면서 물이 흘러간다. 정원에 설치된 초대형 인공호수도 인상적이다. 심야에 인공호수 쪽에서 뮤지엄을 바라보면 불을 밝힌 범선의 모습으로 비쳐진다고 한다.

뮤지엄은 먼 여행을 떠나는 환상의 공간에 해당된다. 거울은 그 같은 여정(旅程)을 스스로 관찰하도록 만들어주는 증거일지 모르겠다. 유리물 거울은 건축가 게리가 사용하는 건축물의 주된 소재이자 주제에 해당된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물의 흐름을 느끼게 만드는 소리다. 절제된 음(音)이든, 야성적인 성(聲)이든 여부에 관계없이 소리를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었으면 좀 더 인상적이었을 듯 하다. 소음제로 자동차처럼, 흘러가기는 하지만 소리가 없다.

둘째는 건물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문(門)이다. 뮤지엄은 2층 구조물이지만, 곳곳에 계단을 설치해 아래 위로 걸어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계단을 중심으로 하면 전부 5층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이들 계단은 유리 바깥쪽 난간 구조물로도 연결된다.

고마운 것은 유리 바깥쪽으로 연결된 문을 전부 오픈한다는 점이다. 전부 확인해봤지만, 잠겨진 문이 없다. 따라서 뮤지엄 바깥쪽 난간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다. 전 세계 뮤지엄 가운데 사방팔방 문을 전부 오픈한 곳은 루이비통뮤지엄이 유일하지 않을까?

루이비통뮤지엄에서의 시간은 중국전시관에서 1시간, 건축물 관람 4시간 정도를 필요로 했다. 크기와 양으로 채워진 중국전시관은 ‘관(觀)’이 아니라 ‘시(視)’로서도 충분하다. 사실 자세히 관찰할만한 각론이 극히 드물다. 특별전시물보다 건축물 관람이 훨씬 더 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간디를 대신해 마오쩌뚱으로 채워진 루이비통이지만, 브랜드 회사가 만든 브랜드 뮤지엄이란 느낌이 분명히 와 닿았다. 바다의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이란 나라로 떠나는 범선으로의 뮤지엄 공간이란 사실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한 환상으로 범선을 탄 것이 아니다. 범선을 타고 어디로 떠나고 싶던 차에 중국이 나타났을 뿐이다. 중국브랜드 가방과 지갑에는 무심하지만, 브랜드 뮤지엄에 대한 부러움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