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 광복

1대
1948년 5월 10일
  • - 임기 2년의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로 의원정수 200명
  • -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으로, 소선거구제 채택. 투표율 95.5%
  • - 48개 정당과 단체 참여, 초대 의장 이승만

1948년 7월 24일 -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9년6월26일 - 백범 김구 암살

1950년 5월 30일
  • -우리 손으로 만든 선거법에 따라 구성된 최초의 의회로 의원정수 210명
  • -제헌의회 선거에 불참했던 남북협상파 등도 참여해 평균 10.5대1의 경쟁률
  • -무소속 우세 속에 이승만 계열 대한국민당과 야당 세력인 민주국민당이 각 24석

1950년6월25일 - 6·25전쟁

1952년 8월 15일 - 이승만, 제2대 대통령 취임

1954년 5월 20일
  • -입후보 공천제로 치러진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로 정당정치 토대 마련
  • -7개 선거구가 휴전선 이북이라 의원정수 210명에서 203명으로 축소
  • -114석 얻은 자유당 1당 등극. 개헌정족수 확보하려 무소속 포섭해 137석 확보

1956년 8월 15일 - 이승만, 제3대 대통령 취임

1958년 5월 2일
  • -12개 정당 참여했지만 군소정당 몰락하고 자유당 대 민주당의 대결로 압축
  • -3대 때보다 30곳 늘어난 233곳에서 의원 선출. 후보자 난립 막으려 기탁금 제도 신설
  • -양대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각각 126석, 79석 획득해 양당제 기틀 마련

1960년 3월 15일 - 3 · 15 부정선거

1960년 4월 19일 - 4 · 19 혁명

1960년 4월 26일 -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60년 7월 29일
  • -4 · 19에 따른 내각제하의 선거로 민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양원제
  • -민의원은 소선거구제, 참의원은 선거구별로 다수득표자 2~8인 뽑는 중 · 대 선거구제 채택
  • -자유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 온건 보수 민주당이 175석(민의원)

1960년 6월 15일 - 제2공화국 헌법 공포

제2공화국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후의 의원내각제 정부다. 1960년 8월 12일 행정부 수반으로 국무총리 장면(1899~1966)을 선출했다. 대통령으로는 윤보선(1987~1990)이 선출됐다.

1960년 8월 13일 - 윤보선, 제4대 대통령 취임

1961년 5월 16일 - 5 · 16 군사 정변

1963년 11월 26일
  • -박정희 체제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비례대표제 최초 도입
  • -중 · 대 선거구제 폐지하고 무소속 입후보 차단, 개인 선거운동도 제한
  • -12개 정당 중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110석(62.8%) 얻어 1당 등극

1963년 12월 17일 - 박정희 대통령 취임, 제3공화국 출범

1967년 2월 7일 - 신민당 창당

신민당은 3~4공화국에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맞서는 거대 야당이었다. 1970년 전후로 ‘40대 기수론’에 힘입어 김영삼과 김대중이 급부상했다.

1967년 6월 8일
  • -민주공화당과 야당 세력이 모인 신민당의 양당 구도
  • -민주공화당이 129석(73.7%)으로 개헌선 넘김. 신민당은 45석
  • -신민당은 부정선거로 단정하고 장외투쟁 전개, 정국 혼란 가중

1967년 7월 1일 - 박정희, 제6대 대통령 취임

1969년 9월 14일 - 3선 개헌안 통과

1971년 5월 25일
  • -3선 개헌으로 박정희가 3연임한 뒤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 -민주공화당 113석(55.4%)으로 과반, 신민당 89석

1971년 7월 1일 - 박정희, 제7대 대통령 취임

1972년 10월 17일 - 유신헌법 선포

박정희는 한 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한 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대신 상위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1972년 12월 23일 - 박정희, 제8대 대통령 취임. 제4공화국 출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실시한 간접선거로 선출

1973년 2월 27일
  • -유신체제하의 선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 유신정우회 도입
  • -의원정수 3분의 1인 73석을 유신정우회로 간접 선출해 친위대 역할
  • -직접투표는 선거구별로 2인 뽑는 중선거구제. 민주공화당 73석, 신민당 52석
1978년 12월 12일
  • -9대와 같은 중선거구제(154석)+유신정우회(77석) 방식으로 231석 선출
  • -중선거구제 직접투표에선 민주공화당 68석, 신민당 61석
  • -득표율은 신민당(32.8%)이 민주공화당(31.7%) 앞서 장기집권 피로감 반영

1978년 12월 27일 - 박정희, 제9대 대통령 취임

1979년 10월 26일 - 10 · 26 사건으로 박정희 사망

1979년 12월 12일 - 12 · 12 군사반란

1979년 12월 21일 - 최규하, 제10대 대통령 취임

1980년 5월 18일 - 5 · 18 광주 민주화운동

1980년 9월 1일 - 전두환, 제11대 대통령 취임

1980년 10월 27일 - 제5공화국 헌법 공포

1981년 3월 3일 -전두환, 제12대 대통령 취임. 제5공화국 출범

1981년 3월 25일
  • -전두환 대통령 취임 후 유신정우회 없애고 중선거구제+비례대표로 276석 선출
  • -12개 정당이 난립한 가운데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151석(54.7%) 획득
  • -제5공화정이 해체한 신민당 내 일부가 모인 민주한국당이 81석으로 제1야당
1985년 2월 12일
  •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 결합해 276석
  • -야당이 지역 정수의 52.7%인 97석 당선시켜 사실상 야당 승리
  • -총선 후 민주한국당 의원들이 신한민주당에 합류해 양당 구도 형성

1987년 5월 1일 - 통일민주당 창당

신민당의 내각제 구상에 반발한 세력이 대거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만들었다. 총재 김영삼, 고문 김대중. 그러나 양김(兩金)은 곧 분열했고, 김대중은 10월에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1987년 6월 29일 - 6 · 29 민주화 선언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 끝에 숨지고, 6월엔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등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의 희생이 잇달았다. 시민들은 격분했고 ‘넥타이 부대’로 불리는 직장인과 상인, 주부들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가담했다. 6월 26일엔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만여명이 밤 늦도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6월 항쟁’이다.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대표위원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29일 특별 선언을 했다. 여야 합의를 통해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 이듬해 2월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1987년 10월 29일 - 현행 헌법(제6공화국 헌법) 공포

1988년 2월 25일 -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 제6공화국 출범

1988년 3월17일 - 선거법 개정으로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

선거제도가 1개 선거구에서 득표 상위 2명을 선출하던 중선거구제에서 1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1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 바뀌었다. 중선거구제가 유신헌법의 잔재로 권위주의 정권이 국회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1988년 4월 26일
  •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현행 6공화국 헌법 공포 뒤 처음 실시된 선거
  • -한 선거구에서 최대 득표자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로 299석 선출
  • -민주정의당(125석)의 과반 확보 실패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 등장
  • -87년 대선 앞두고 분열한 야권, 총선에서도 분열 이어지며 원내 제1당은 민주정의당 차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59석)이 2 · 3위
  • -리더들의 출신지 따라 TK(대구 · 경북)=민주정의당, PK(부산 · 경남)=통일민주당, 호남=평화민주당 구도 출현


  • “제13대 이후 다시 실시된 소선거구제하에서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 정준표 · 정영재. 2005. 『선거제도의 정치적 효과』

  • 지역간 경쟁구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야당과 민주화 운동이 통합되는 것을 막으려 권위주의 세력이 동원한 결과. 지역은 정치 엘리트와 정당이 동원할 수 있던 가장 손쉬운 정치적 자원이었다.
    -최장집. 2002.『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1990년 1월 22일 - 민주자유당 결성

노태우(민주정의당)는 13대 총선으로 형성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돌파하려 했다. 김영삼(통일민주당)은 김대중과의 경쟁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필요성이 있었다. 제4당으로 전락한 김종필(신민주공화당)도 돌파구가 필요했다.
세 사람은 1월 22일 3당 합당을 선언해 보수 연합을 꾸렸다. 지도부는 총재 1인(노태우)과 대표위원 3인(김영삼·김종필·박태준)의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됐다. 그러나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다음 총선에서 149석에 그쳐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민자당은 이후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모태가 됐다.

1992년 3월 24일
  • -의원정수는 299명이지만 지역구 224석에서 237석으로 확대
  •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과 김대중의 민주당, 현대그룹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간 3파전
  • -거대 여당이었던 민자당은 1석 차이로 과반수 실패. 여소야대 구도 재현

1993년 2월 25일 -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1994년 7월 8일 - 김일성 사망

1996년 4월 11일
  • -선거 공정성 확보를 위한 통합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
  • -신한국당(139명), 새정치국민회의(79명), 자유민주연합(50명)의 3당 구도로 재편
  • -지역 할거주의 및 여소야대 국회 지속

1997년 11월 21일 -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

1998년 2월 25일 -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취임

2000년 4월 13일
  • -1997년 IMF 경제위기로 의원 정수도 299석에서 273석으로 축소
  • -한나라당(133석), 새천년민주당(115석) 양당 구도 속에 자유민주연합 17석
  • -총선 시민연대의 ‘낙천 · 낙선 운동’ 사회적 파장 야기

2003년 2월 25일 -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

2004년 4월 15일
  • -의원수 299명으로 회귀. 유권자 한 명이 정당과 후보자에 각 1표씩 던지는 정당별 비례대표제 채택
  • -민주노동당, 정당득표율 13%로 10석(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 확보해 원내 진출
  •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152석 차지하며 16년 만에 여대야소 국회 탄생
  • -1987년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비한나라당계 조경태 후보 부산에서 당선

2008년 2월 25일 -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취임

2008년 4월 9일
  • -한나라당이 계파 갈등에도 153석 획득. 친박연대 14석 등 여권 성향 후보자도 다수 당선돼 안정 과반 확보
  • -46.1%의 투표율은 역대 전국단위 선거 사상 최저

2008년 9월 15일 -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 신청

2011년 12월 17일 - 김정일 사망

2012년 4월 11일
  • -의원정수 1명 늘어나 사상 최초로 300석 도달
  • -새누리당(152석) 과반 확보, 민주통합당(127명)도 의석수 대폭 회복
  • -김부겸(민주통합당, 40.4%)과 이정현(새누리당, 39.7%)이 불모지인 대구와 광주에서 선전하며 주목
  • -이정현은 2014년 7월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당선. 13대 총선 이후 호남에서 당선된 최초의 여권 후보

2013년 2월 25일 -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