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주의 데이터로 찾아낸 로드킬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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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지난 22일 오후 11시 경남 하동군 남해고속도로.
배 모(40)씨가 몰던 차 앞에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차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고 뒷차들도 줄줄이 사고가 나 12명이 다쳤다.

로드킬(Road-Kill).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가리킨다.
최근 3년 간 고속도로에서만 총 6639마리가 희생됐다.

로드킬은 주로 어디서, 왜 발생하는 걸까.
중앙일보는 전국 고속도로를 50㎞씩 잘라,
2015~17년 로드킬이 150건 이상 발생한 위험 구간을 찾아냈다.
전체 사고의 절반이 집중된 ‘마()의 구간’ 13곳이 확인됐다.

지난 22일 오후 11시 경남 하동군 남해고속도로. 배 모(40)씨가 몰던 차 앞에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차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고 뒷차들도 줄줄이 사고가 나 12명이 다쳤다.

로드킬(Road-Kill).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가리킨다. 최근 3년 간 고속도로에서만 총 6639마리가 희생됐다.

로드킬은 주로 어디서, 왜 발생하는 걸까. 중앙일보는 전국 고속도로를 50㎞씩 잘라, 2015~17년 로드킬이 150건 이상 발생한 위험 구간을 찾아냈다. 전체 사고의 절반이 집중된 ‘마()의 구간’ 13곳이 확인됐다.

01
마()의 트라이앵글
당진대전·서천공주·서해안 고속도로

삼각형 트라이앵글

당진대전고속도로 서세종IC 인근.

산을 깎아 만든 쭉 뻗은 도로 위를 차들이 빠르게 달린다. 고속도로 순찰 대원들이 질주하는 차들 사이로 도로 주변을 살핀다. 순찰차 트렁크에는 큰 포댓자루가 잔뜩 실려 있었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발견하면 포댓자루에 담아 갓길에 놓고 가요. 그러면 다음 순찰 차량이 수거해 폐기 처분하죠. 사고가 잦을 때는 한 번에 고라니 4마리를 처리한 적도 있어요.”-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순찰대원

당진대전선에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
당진대전선에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사진 한국도로공사]

피해 동물 94%가 고라니

충남 당진~대전을 잇는 당진대전선(총 연장 92㎞)은 ㎞당 로드킬이 가장 잦은 고속도로다. 지난 3년간 야생동물 총 759마리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체의 94%가 고라니였다. 전국 고속도로 평균(89%)보다도 높은 수치다.

대전당진선과 삼각형으로 연결된 서해안선ㆍ서천공주선 역시 전체 로드킬의 96~97%가 고라니다. 왜 이 지역에서만 유독 고라니 로드킬이 많이 발생하는 걸까.

산 깎아 만든 도로에 서식지 뺏겨

고라니는 전국 곳곳에 살지만, 특히 충남 지역의 서식 밀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 곳에 2009년 당진대전선과 서천공주선이 잇따라 건설되면서 로드킬 문제가 불거졌다.

“고속도로가 금북정맥을 관통하다 보니 산을 깎아 만든 구간이 많다. 세종시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든 고라니들이 이동 중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다가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해연 한국도로공사 품질환경처 차장

02
끊어진 백두대간 생태축
중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중앙포토]

단일 노선 가운데 로드킬이 가장 많은 곳은 중앙선이다. 강원 춘천에서 충북ㆍ경북을 거쳐 대구까지 이어지는(총 연장 280㎞) 이 고속도로에선 최근 3년간 1114마리가 로드킬 당했다.

중앙선은 백두대간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있다. 주변에 산이 많고 야생동물이 많이 산다. 특히 백두대간이 가로지르는 강원ㆍ충북 경계선 지역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꼽힌다.

야생동물들은 산과 산, 산과 하천 등 생태축을 따라 이동한다. 이 생태축을 끊는 고속도로 구간에서 로드킬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중앙선은 전국에서 멧돼지 로드킬이 가장 잦다. 3년간 총 65마리가 피해를 입었다.

중앙선에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
중앙선에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 [사진 한국도로공사]

춘천~단양 '최악의 구간'

중앙선 광주IC-남이JC 고라니 426, 멧돼지 12, 너구리 6, 기타 3, 멧토끼 2

중앙선 가운데서도 로드킬 위험이 가장 큰 곳은 강원 춘천~충북 단양 150㎞ 구간이다. 영동고속도로와 만나는 만종 분기점 인근은 오래전부터 ‘최악의 로드킬 구간’으로 불렸다. 2016년에는 멸종위기종인 삵이 이곳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이 구간에 로드킬을 막기 위한 야생동물 유도 울타리가 2005년 전국 최초로 설치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는 중앙선 대부분의 구간(총 250㎞)에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울타리 뛰어 넘는 고라니의 점프력

고라니 유도울타리 실험 영상. [국립생태원 제공]

울타리를 쳤는데도 왜 여전히 로드킬 사고가 이어질까. 국립생태원 최태영 책임연구원은 최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생태원에 사는 고라니 27마리를 대상으로 어느 높이까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알아봤다.

울타리 높이를 0.5m에서부터 10㎝씩 높여가며 실험한 결과, 고라니 절반이 1.3m 높이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울타리 높이가 1.5m는 돼야 고라니들을 막을 수 있었다(실패율 97%). 하지만 현재 울타리 설치 기준은 평지 1.5m, 비탈면은 1.2m다.

“울타리 높이 기준을 지형에 관계없이 1.5m 이상으로 일원화해야 고라니 로드킬을 더 줄일 수 있다” - 국립생태원 최태영 책임연구원

03
반달가슴곰이 나오는 고속도로
중부·통영대전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5월 5일 새벽. 통영대전고속도로 함양분기점 인근을 지나던 고속버스가 커다란 물체와 ‘쿵’ 부딪혔다. 인근 지리산에서 나온 반달가슴곰이었다. 이 곰은 며칠 뒤 김천 수도산에서 왼쪽 앞다리가 부러진 채 구조됐다.

고속도로 사고로 파손된 버스(왼쪽)과 앞다리가 부러져 깁스한 반달가슴곰
고속도로 사고로 파손된 버스(왼쪽)과 앞다리가 부러져 깁스한 반달가슴곰

수도권이라고 방심은 금물

중부선 광주IC-남이JC 고라니 426, 멧돼지 12, 너구리 6, 기타 3, 멧토끼 2

중부ㆍ통영대전 고속도로는 경기 하남에서 경남 통영을 잇는다. 길이가 총 330㎞가 넘는다. 반달가슴곰이 사고를 당한 곳은 남부의 지리산 구간이다.

하지만 로드킬 위험이 가장 높은 구간은 의외로 서울 근교인 경기 광주에서 충북 청주까지 100㎞ 구간이다. 산과 맞닿은 구간이 많아 고라니는 물론, 멧돼지ㆍ너구리 등이 종종 도로에 뛰어든다.

로드킬 끊이지 않는 호법분기점

영동선 마성IC-여주IC 고라니245, 멧돼지 5, 너구리 4, 오소리 1
호법분기점
호법분기점. [중앙포토]

중부선과 영동선이 만나는 호법분기점은 상습 정체구간이다. 운전자들은 웬만하면 이곳을 피해가고 싶어한다. 야생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지난 3년간 로드킬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도로가 워낙 넓어, 사고 뒤처리도 쉽지 않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있는 동물 사체를 치우는 건 우리한테도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일이에요”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순찰대원

서해안선 발안IC-대천IC 고라니 291, 너구리 4, 오소리 3, 맷돼지 2, 기타 1
당진대전선 당진JC-유성JC 고라니 716, 너구리 23, 기타 11, 맷돼지 5, 오소리 4
서천공주선 동서천JC-청양IC 고라니 191, 너구리 4, 멧돼지 4, 기타 1
중앙선 광주IC-남이JC 고라니 426, 멧돼지 12, 너구리 6, 기타 3, 멧토끼 2
영동선 마성IC-여주IC 고라니245, 멧돼지 5, 너구리 4, 오소리 1
중부선 광주IC-남이JC 고라니 426, 멧돼지 12, 너구리 6, 기타 3, 멧토끼 2

Chapter 02

로드킬은 사람에게도 위험하다.
자칫 로드킬을 피하려다가 더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지난 22일 남해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가 그랬다.

운전자는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를 피해 핸들을 급히 꺾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는 5중 추돌 사고로 이어져 총 12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로드킬 위험 구간과 시간대, 운전 중 야생동물이 나타났을 때 대처방법을 정리했다 .

로드킬은 사람에게도 위험하다. 자칫 로드킬을 피하려다가 더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지난 22일 남해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가 그랬다.

운전자는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를 피해 핸들을 급히 꺾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는 5중 추돌 사고로 이어져 총 12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로드킬 위험 구간과 시간대, 운전 중 야생동물이 나타났을 때 대처방법을 정리했다.

로드킬 위험 구간 '마의 13'

전국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어디일까. 최근 3년간 로드킬 사고가 많았던 13개 위험구간(50km 기준)을 순위 별로 정리했다. 붉은 색이 진할수록 사고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로드킬 주로 언제 발생할까?

6639건의 로드킬 사고를 시간대별로 보면 자정 이후부터 이른 아침 사이에 사고가 가장 잦다. 특히 오전 7~8시 사이가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가장 위험했다.

동물별로 보면 야행성인 멧돼지는 오전 1~2시에 총 40마리가 희생됐다. 삵과 오소리는 아침에 사고가 잦았다. 삵은 오전 8~11시에 8마리, 오소리 오전 7~9시에 18마리가 로드킬을 당했다.

고속도로 로드킬, 이렇게 대처를

로드킬 위험 구간에 들어서면 우선 속도를 줄이고 갑자기 야생 동물이 튀어나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 동물을 피하려고 핸들을 급하게 틀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된다.

황해연 한국도로공사 차장은 "상향등은 동물의 시력장애를 유발하거나 자칫 차량으로 뛰어들 수도 있기 때문에 켜지 않아야 한다"며 "경적을 울리면서 가급적 천천히 통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부득이하게 동물과 충돌했다면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차를 이동한 뒤에 안전한 곳에서 도로공사 콜센터(1588-2504)로 신고하면 된다.

발행일 : 2018.07.26

  • 기획 천권필
  • 데이터분석 배여운
  • 영상편집 왕준열, 박승영, 유채영 인턴
  • 디자인 임해든, 유선우 인턴
  • 개발 원나연, 전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