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부동산의 나라 대한민국 리포트

대한민국은 ‘부동산의 나라’입니다. 특히 서울의 주택 문제는 심각합니다. 천정부지 치솟는 집값을 잡고, 서민들이 맘 편히 살 수 있게 해주는 ‘꿈의 부동산 정책’은 없는 걸까요? 답을 찾기 위해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를 찾아갔습니다. 모두 서울처럼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도시들입니다. 그곳에서 무주택 뉴요커(New Yorker)·런더너(Londoner)·도쿄진(東京人)을 만나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물었습니다. 대답은 ‘노(No)’였습니다. 그들은 거꾸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얼마나 먼지 알려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죠.

런던·뉴욕·도쿄에서 무주택자로 산다는 것

타냐·파멜라·히로시의 집

더 이상 이사 갈 곳이 없다는 런더너 타냐의 이야기 듣기 더 이상 이사 갈 곳이 없다는 런더너 타냐의 이야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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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직장 함께 잃을까 두려운 뉴요커 파멜라의 이야기 듣기 집,직장 함께 잃을까 두려운 뉴요커 파멜라의 이야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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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빈집 많아 골치라는 도쿄진 히로시의 이야기 듣기 주위에 빈집 많아 골치라는 도쿄진 히로시의 이야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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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사 갈 곳이 없다는 런더너 타냐
집,직장 함께 잃을까 두려운 뉴요커 파멜라
주위에 빈집 많아 골치라는 도쿄진 히로시

01영국 런던에 사는 타냐
"집에서 쫓겨날까 두려워요."

‘사회 청소(social cleansing)’란 말 들어보셨나요? 다른 인종을 박해하고 쫓아내는 ‘인종 청소(ethnic cleaning)’처럼, 사회의 약자를 도시 바깥으로 몰아내는 거예요. 우리 가족은 요즘 이 ‘사회 청소’ 대상이 될까 봐 불안해요.

런더너 타냐
타냐는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심 외곽으로 몰아내는 사회청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타냐 무랏. 올해 쉰살이에요. 런던 서덕 카운슬의 도우스 하우스에서 남편(53)ㆍ딸(14)이랑 같이 살고 있죠. 방 2개짜리인데, 공공임대 주택이라 월세가 주변 시세의 절반이에요.

하지만 이 집은 머잖아 ‘청소’될 거예요. 왜냐고요? 81년 된 노후 주택이거든요. 지난 6월 불이 난 그렌펠타워가 1973년 건축됐는데, 이 집은 1936년에 지어졌어요. 한국으로 치면 일제시대죠. 그러다 보니 엘리베이터는커녕, 방화시설도 없어요. 정부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고장 난 곳도 많죠. 대충 고치며 버티고 있는데, 내일 당장 재건축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에요.

새집 많아질수록 살 집 없어져

재건축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전혀요. 헤이게이트 에스테이트라고 70년대 지어진 공공임대 주택이 있었어요. 1200세대가 살던 제법 규모가 큰 곳이었죠. 몇 년 전 재건축을 했는데 새로 들어온 개발업체가 공공임대 주택 비율을 줄여버렸어요. 임대료도 올렸고요. 정부가 민간업체에 재개발을 맡기며 규제를 풀어준 거예요. 그 탓에 저처럼 임대료 적게 내고 살던 사람은 다 쫓겨났죠. 네, ‘청소’됐어요.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재건축 하나도 안 반가워요. 아니, 무서워해요.

더 이상 공공주택 안 짓는 런던
더 이상 공공주택 안 짓는 런던

여기서 나가면 런던 밖으로 이사가야죠, 뭐. 저는 공공기관에서, 남편은 도서관에서 일하는데, 두 사람 월급 합치면 2200파운드(약 326만원)에요. 지금 월세가 480파운드니까, 아이 키우면서 외식도 한 번씩 할 만하죠. 월세가 800파운드가 되면? 런던에서 못살죠. 버스나 지하철 타고 1시간 넘게 떨어진 외곽으로 가도 지금 같은 크기의 집은 못 구할 거에요. 그러니 막막하죠.

정부에선 집이 부족하다며 자꾸 부수고 새집을 짓는데, 그럴수록 우리 가족은 살 곳이 없어져요. 새집은 부자들을 위한 거고 우리는 집과 함께 ‘청소’되는 존재라는 걸 딸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공공주택 시장, 민간이 주도

올 9월 런던의 평균 집값은 우리 돈 7억원이 넘는다. 높기만 한 게 아니다. 상승 폭도 가파르다. 2005년 이후 현재까지 상승률은 평균 41%. 영국의 다른 지역(24%)에 비해 2배가량 더 올랐다.

영국 정부는 이런 비싼 집값을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명 ‘저렴주택(affordable house)’을 공급하고 있다. 민간업체가 주택을 지어 임대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일부를 공공 임대용으로 내놓게 하는 것이다. 재정부담 탓에 과거처럼 정부가 직접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어렵게 되자, 생각해 낸 대안이다. 업체를 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도 제시했다. 기존에 시세의 50%만 받던 임대료를 80%까지 올려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1~2015년 런던의 인구는 5.7% 늘었다. 반면 주택 공급은 원활하지 못하다. 매년 5만 호의 신규 주택이 필요하지만, 2004년 이래 그 절반도 채워본 적이 없다. 영국 정부가 재건축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공급 부족 때문에 집값이 오르면서 자가 보유율도 하락하고 있다. 자기 집을 가진 런더너는 2명 중 1명도 안 된다.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는 2025년엔 런던의 10가구 중 4가구만이 자기 집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젊은 층의 주거 부담이 늘고 있다. 2017년 현재 런던의 35세 이하 중간소득층의 70%가 민간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2000년대(평균 40%) 비하면 1.5배 늘어난 숫자다. 부모 집에 얹혀사는 젊은이도 함께 늘고 있다.

공공주택 시장이 이렇게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공급의 역설’이 발생했다. 영국은 저렴주택을 공급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택 숫자를 늘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실제 입주할 수 있는 ‘싼 공공주택’은 오히려 줄어들게 됐다. 사회단체 ‘사회주택 지키기(Defending Council Housing)’의 에일린 베일은 “반값 임대료 주택에서 살다 밀려난 사람들 가운데 시세의 80%인 저렴주택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런던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 대책을 고민하는 우리 정부도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다.

해법 찾기는 쉽지 않다. 런던정경대(LSE) 크리스티안 힐버 교수는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대폭 늘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버밍엄대 크리스토퍼 왓슨 명예교수는 “공급 확대가 서민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02미국 뉴욕에 사는 파멜라 록클리
“집을 잃으면 일자리도 잃는다우.”

나는 뉴욕 동쪽에서 수십 년을 산 50대 뉴요커라우. 부자겠다고? 세상에, 뉴욕 산다고 하면 부자냐고 묻는 외국인이 왜 이리 많은지…. 이스트 뉴욕은 원래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우. 요즘 들어 시쳇말로 ‘힙’해졌지만. 우리 집도 정부가 정한 저소득층(3인 가구 연 소득 합계 6만 8720달러 이하)에 속한다우.

뉴요커 파멜라 록클리
뉴요커 파멜라 록클리씨는 “월세가 오르니까 이사를 가야하는데, 이사가려면 직장을 새로 얻어야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그 나이에 아파트 한 채 없냐고? 뉴욕의 아파트들은 90만 달러(약 10억 원)는 우습게 넘는데, 내가 그걸 무슨 수로 사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보통 남이 갖고 있는 아파트를 월세 내고 빌려 사는 거지.

나는 린덴 플라자란 아파트에 40년째 살고 있는데, 1971년 저소득자들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라우. 미국에선 이런 집을 ‘저렴주택’이라고 부르지. 비영리지역개발회사(CDC)가 짓고 저소득층이 입주하는 비율만큼 나라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주면서 붙은 이름이야. 그래서 방 2개짜리 집 월세가 한국 돈으로 약 7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우.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도 40년간 살았지. 나라에선 ‘적정 월세 비율’을 소득의 30% 아래로 보거든.

저렴주택은 어떻게 생겨났나

불타는 뉴욕

맨해튼에서 일하던 뉴요커들은 웨스트체스터ㆍ뉴저지 등 교외에 집을 샀다. 1800년대 후반 뉴요커들을 위해 맨해튼 한가운데 지어진 빌딩들은 텅텅 비어갔다. 임대료가 떨어지자 전 세계에서 이주한 빈민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런 곳에서 살았다.

건물주들은 자신의 건물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임대료를 받느니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이나 받자는 심산이었다. 도심은 갈수록 황폐해졌고 계속 불이 타올랐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빵집ㆍ이발소 등을 운영하는 영세업자들도 갈수록 가난해졌다.

민간이 나서다

각 동네에 오래 산 세입자와 영세업자, 지역 활동가들이 비영리 지역개발회사(CDC)를 조직했다. “(건물주들에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였다는 게 CDC 사이프레스힐스의 누그바우어 대표 이야기다.

CDC는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저렴(Affordable) 주택’을 지어 보급했다. 저렴주택은 건물 한 채에 저소득층만 사는 ‘임대 아파트’와는 다르다. 쉽게 말해 일반 아파트와 똑같이 짓고 이 중 일부를 저소득층용으로 내놓는 형식이다. 100여개의 CDC는 지난 25년간 뉴욕에 약 12만호의 저렴주택을 지었다. 현재도 신축 주택 건설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저렴주택을?

아파트를 지을 때 저소득층용 주택을 얼마나 포함할지는 CDC가 자율적으로 정한다. 단, 저소득층 입주 비율이 높을수록 정부에서 택스 바우처(Tax Voucher, 세금을 낼 때 일정액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를 많이 받는다.

80년대 들어 정부 보조금 규모가 축소되자 이 택스 바우처가 CDC의 새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비영리단체라 세금을 내지 않는 CDC는 직접 택스 바우처를 쓸 일이 없다. 반면 뉴욕의 거대 금융사들은 바우처가 많을수록 세금을 아낄 수 있다. CDC는 금융사에 택스 바우처를 팔아 개발 자금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모건스탠리 같은 금융사가 저렴주택 건축비를 대는 효과를 낳았다.

불타는 뉴욕

맨해튼에서 일하던 뉴요커들은 웨스트체스터ㆍ뉴저지 등 교외에 집을 샀다. 1800년대 후반 뉴요커들을 위해 맨해튼 한가운데 지어진 빌딩들은 텅텅 비어갔다. 임대료가 떨어지자 전 세계에서 이주한 빈민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런 곳에서 살았다.

건물주들은 자신의 건물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임대료를 받느니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이나 받자는 심산이었다. 도심은 갈수록 황폐해졌고 계속 불이 타올랐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빵집ㆍ이발소 등을 운영하는 영세업자들도 갈수록 가난해졌다.

민간이 나서다

각 동네에 오래 산 세입자와 영세업자, 지역 활동가들이 비영리 지역개발회사(CDC)를 조직했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생긴 CDC 중 하나인 사이프레스힐스의 누그바우어 대표 이야기다.

CDC는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저렴(Affordable) 주택’을 지어 보급했다. 저렴주택은 건물 한 채에 저소득층만 사는 ‘임대 아파트’와는 다르다. 쉽게 말해 일반 아파트와 똑같이 짓고 이 중 일부를 저소득층용으로 내놓는 형식이다. 100여개의 CDC는 지난 25년간 뉴욕에 약 12만호의 저렴주택을 지었다. 현재도 신축 주택 건설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저렴주택을?

아파트를 지을 때 저소득층용 주택을 얼마나 포함할지는 CDC가 자율적으로 정한다. 단, 저소득층 입주 비율이 높을수록 정부에서 택스 바우처(Tax Voucher, 세금을 낼 때 일정액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를 많이 받는다.

80년대 들어 정부 보조금 규모가 축소되자 이 택스 바우처가 CDC의 새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비영리단체라 세금을 내지 않는 CDC는 직접 택스 바우처를 쓸 일이 없다. 반면 뉴욕의 거대 금융사들은 바우처가 많을수록 세금을 아낄 수 있다. CDC는 금융사에 택스 바우처를 팔아 개발 자금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모건스탠리 같은 금융사가 저렴주택 건축비를 대는 효과를 낳았다.

300가구가 하루아침에 길거리 나앉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게 바뀌었어. 뉴욕시에서 기존 저렴주택들을 유지하고 좀 더 살기 좋게 만든다며 요샛말로 ‘레노베이션’을 하면서지. 건물주가 바뀌며 내부를 약간 수리했는데, 임대료가 딱 2배인 140만원이 됐다우. 어떻게 감당하냐고? 못하지.

소득은 제자리, 집값만 뛴 이스트뉴욕

우리 아파트에 저소득층이 1000가구 정도 살았는데, 그중 300가구가 당장 길거리로 나앉았어. 대부분은 나이 들어 가구소득이 절반 이하로 쭈그러든 노인네들이었지. 나머지 300가구는 임대료 싼 집을 찾아 펜실베이니아로, 메릴랜드로, 뿔뿔이 흩어졌다우. 그것도 부부가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경우 얘기지. 옆집에 딸 데리고 혼자 살던 마트 캐셔 여편네는 새 직장을 못 구했어. 결국 방 빼서 교회 다락방에 침낭 깔았다니까, 말 다했지.

나머지 400가구의 삶도 그리 평탄치는 않아. 당장 우리 집부터 월급의 절반을 월세에 쏟아붓고 있다우. 이사 가면 안 되냐고? 이 동네에는 어딜 가든 다 비싼걸. 그리고 우리 할아범을 비롯해 다들 일자리가 집 근처에 있어서, 이사를 하면 일자리도 다시 찾아야 한다우. 이 나이에 어디서 일자리를 새로 구하나.

‘브루클린 라거’도 못 피한 월세난

‘브루클린 라거’로 유명한 뉴욕의 로컬 맥주 업체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올해 초 브루클린을 떠날 뻔했다. 어마어마한 임대료 상승 때문이다. 지역 CDC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언제 이주할지 모르는 상태다.

지역 기반 업체가 임대료를 감당 못 해 딴 지역으로 가버리면, 그곳에서 일하던 지역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게 된다. 브루클린 부시윅의 CDC 에버그린에서 지역 기반 업체의 유지ㆍ재교육을 담당하는 스테판 파비앙은 “땅값이 올라가면 땅 주인이 지역 업체를 내쫓고 공업용지를 주거지나 호텔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 탓에 지역민들의 실직과 강제이주(displacement)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임대료, 치솟는 땅값으로 인해 반강제로 이사를 떠나야 하는 것은 뉴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는 서민들의 달동네로 불렸던 서울 '해방촌'에서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03일본 도쿄에 사는 야마구치 히로시
“주위에 빈집 늘어 골치에요.”

안녕하세요, 야마구치 히로시(山口寬士ㆍ43)입니다. 저는 도쿄 도심 동쪽에 있는 에도가와 지역에 살아요.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37㎡의 작은 집에서 10년째 살고 있죠. 한국으로 치면 원룸 정도 되겠네요. 제집은 아니고 월세예요. 결혼했다면 집을 살까도 생각해봤겠지만, 저는 독신이거든요. 딱히 집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도쿄진 야마구치 히로시
히로시씨는 집은 말 그대로 집일 뿐 단 한번도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한 달 월세요? 9만8000엔(약 97만원)을 내요. 많다고요? 일본에선 이게 보통이에요.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집들은 다 이 정도 하거든요. 거기다 회사에서 월세를 지원해줍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70%까지 내줘요. 그러니까, 제 돈은 3만엔도 들지 않는 셈이죠. 집을 사면 한 달에 2만5000엔을 주거 지원비로 주니까, 차라리 월세 지원받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우리 회사 말고 다른 일본 기업들도 상당수가 이런 주거비 지원을 해줘요. 불황일 때 일부 없어졌는데, 최근 들어 다시 되살리는 곳이 많다고 들었어요. 교통비를 실비로 주는 곳도 많고요.

사는(Live) 집, 그리고 행복

지금 사는 집을 구한 이유는 단순해요. 1시간 이내에 회사 출근이 가능하고, 출장이 잦은 편인데 하네다 공항과 가까워서 좋아요. 한국 사람들은 ‘내 집 마련’이 꿈인 경우가 많다고들 하데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가족, 그리고 신뢰 가능한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취미예요. 집은 들어있지 않아요.

집이 남아도는 도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저는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데, 100만엔가량 하는 자전거를 5대 갖고 있어요. 월급을 받으면 자전거에 쓰는 거죠. 저는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최소한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라요. 만약 은퇴하게 되면 부모님 집을 물려받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고향이 오사카인데, 나이 들면 거기에서 살 계획이거든요. 그러니 앞으로도 집은 살 생각이 없죠.

요즘 일본은 부모님 세대가 남긴 빈집 문제가 골칫거리예요. 저랑 달리 자식들이 시골에 있는 낡은 부모님 집을 떠맡기 싫어하거든요.

노후대비요?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연금제도가 있으니 그거면 될 것 같고요. 재테크랄 것도 없어요. 주식투자를 아주 조금 하긴 하는데, 대체로 저축을 해요. 금리가 낮아도 ‘모은다’는 데 의미를 두는 편이죠. 친구들도 대체로 저랑 비슷해요.

일본 부동산연구소의 야마모토 히로히데 연구부장은 “‘잃어버린 20년’이 일본 주택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던 ‘버블’이 90년대 들어 사라지면서 집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집값ㆍ임대료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데다 20년간 소득도 늘지 않자 임대주택에 사는 것이 보편화됐다”며 “주택공급 증가로 주택 수가 세대수를 넘어서면서 살 곳 찾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운진 일본 부동산연구소 박사는 “민간임대주택 회사들이 오래된 목조주택을 재건축ㆍ리모델링하면서 시스템 부엌 등을 갖춘 소형 아파트(맨션)가 늘었다. 이렇게 젊은 세대의 선택지가 늘어난 것도 ‘임차인 사회’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임대가 보편화하다 보니 임대와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오팔레스21, 다이와 리빙 같은 부동산 관리 회사들도 성업 중이다.

고령화의 그림자, 떠맡아야 하는 '빈집'

일본은 최근 뜻밖의 복병과 싸우고 있다. ‘빈집’ 문제다. 부동산 중개ㆍ관리회사인 고이즈미 코퍼레이션의 고이즈미 나오토 대표는 “요즘 일본인들에게 집은 투자가 가능한 부동산(不動産)이 아니라, 떠맡아야 하는 부동산(負動産)”이라고 말했다. 장기불황에 이어 고령화ㆍ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집을 사고 싶지 않아 하는 의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구수는 2010년 1억2806만 명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했다. 대도시인 도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2025년 1398만명을 정점으로 사람이 줄기 시작해 2060년엔 인구가 1173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일본의 세대 당 주택 수는 이미 2013년에 1.13호를 기록했다. 주택 수가 세대수를 약 85만호가량 앞서고 있다.

하지만 부모세대가 소유한 집은 대부분 오래된 목조주택이다. 상속세 부담으로 자녀들이 상속을 거부하거나, 상속을 받아도 재건축할 돈이 없어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도쿄도 도시정비국 하마모토 마키 과장은 “2015년 법을 바꿔 소유자 불명의 빈집은 지방자치단체가 강제 철거 할 수 있도록 했다. 소유자가 있는 경우에는 빈집 상태로 방치해 주거환경을 해치지 말도록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주택임대 회사인 레오팔레스21의 오이시 모토요시 임대사업부장은 한국이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일본에서는 ‘이제 토지신화는 끝났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도 이제는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행일 : 2017.11.09

  • 기획 정선언, 강혜란, 김현예, 정원엽, 조혜경
  • 사진 우상조
  • 디자인 임해든, 유수경
  • 개발 전기환, 원나연
  • 도움말 한만희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 박준 동대학원 교수 오도영 런던정치경제대(LSE) 박사과정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