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계약상황을 가정한 연출사진

‘비싼 달동네’ 해방촌의 명암Ⅱ

사는(Live) 사람, 사는(Buy) 사람

사는(Live) 사람,
사는(Buy) 사람

Intro해방촌(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은 원래 서민들의 삶터였다. 2만8000여 명의 실향민이 모여살았다. 낮에는 ‘요꼬(스웨터 가내수공업)’ 미싱 소리가 요란했고, 저녁에는 밥짓는 냄새가 동네를 휘감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곳곳이 파란 공사 가림막 투성이다. 마을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엔 루프톱 바가 생겼다. 낯선 젊은이들이 찾아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해방촌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데이터로, 숫자로 알 수 없는 해방촌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해 보기 위해, 직접 해방촌 사람들을 만났다.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고, 사생활 보호를 요청한 사람의 경우에는 가명을 썼다.

01기획부동산 브로커 ‘김사장’(40)

해방촌에 관심있으세요? 잘 보셨네. 여기 비전있어요. 여기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동네인거 아시죠? 한강 조망권처럼 서울 조망권이란게 있어요. 연예인들이 여기 사들여서 루프톱 가게 만드는 게 괜히 그런게 아니에요. 내가 포인트 찍어줄테니, 주말에 날짜 맞춰 둘러본 다음 계약서 씁시다.

기획부동산 브로커 김사장
부동산 브로커 김사장은 “묻지말고 사요. 여기 안오르면 내가 손에 장을 지져요!”라고 말했다.
“내가 핫한 포인트 찍어줄께”

이 동네는 지금 단독이면 단독, 다세대면 다세대, 상가면 상가 다 핫(hot)해요. 후암동쪽 가는 길은 거의 다 팔렸어요. 작년에 그쪽 라인이 평당 4000만원대였는데 지금은 더 올랐어요. 햄버거길요? 거기는 벌써 평당 7000만원 넘었죠. 햄버거길 뒤쪽 주택가는 지금 평당 한 5000만원 정도 하는데 아직 괜찮은 곳이 조금 남아 있어요. 용도변경해서 근생(근린생활시설)으로 쓰면서 상가 세 주면 잘 나간다니까. 돈이 좀 부족하면 골목 안쪽도 괜찮아요. 주인들이 잘 안 내놓으려고 하지만 평당 2500만원~3000만원 정도 생각하시면 돼.

신흥시장은 방송인 노홍철, 가수 정엽 들어오고 더 인기가 많아요. 작년에도 젊은 작가 하나가 10평 짜리를 4억원에 샀어요. 강남에선 그 돈으론 살 물건이 없잖아요. 여기는 하나 사서 1층은 작업실로 쓰고 2층은 쉬는 공간이나 주거용으로 쓸 수가 있거든. 전혀 비싼 거 아니에요. 정엽이 산 데요? 지금 공사 중인데, 풍문으론 은행에서 추천해줬다고 하던데.

“진짜 자고 나면 오른다니까”

동네 부동산은 좀 돌아보셨어요? 매물 별로 없죠? 여기는 알음알음 거래하는 물건이 많아요. 부동산에 그냥 찾아가면 물건 못봐요. 예전에 남산녹지축 개발하려던거 있죠? 저야 그 때부터 이 동네 투자해서 잘 아니까 물건 소개할 수 있는 거죠.

해방촌 일대 부동산에 붙어 있는 매물 전단지
해방촌 일대 부동산에 붙어 있는 매물 전단지

전혀 걱정할 게 없다니까 그래.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남산끼고 공기 좋고 전망 좋고, 이태원 경리단이 코 앞인데 용산공원까지 생기니…. 서울에 여기처럼 저평가 된 곳 있나요?

또 정부가 팍팍 밀어주잖아. 용산 미군기지 나가고 하면 사실상 여기 쫙 바뀌고 오른다고 보면되요. 서울시에서 여기에 100억 넣어서 사업하는 거 아시죠? 내년부터 정부에서 도시재생뉴딜을 한다는데, 강남 아파트를 묶으면 그 돈이 어디로 가겠어요? 투자할만한 다른 부동산으로 몰리는 거에요. 여긴 진짜 자고 나면 오른다니까.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에요. 강남, 동부이촌동 사모님들이 여기 얼마나 많이 사는데, 아유, 생각 많이 하면 그땐 늦는다니까!

해방촌 김 사장의 ‘작업’ 수법

김 사장 같은 ‘기획부동산 업자’들은 지난해부터 해방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은 ‘업(UP)’계약서다. 먼저 달동네의 대지 10평(3.3㎡) 남짓한 집을 찾아내 주인에게 2억 5000만원을 줄테니 팔라고 한다. 세금 같은 건 다 대신 내줄테니 대신 계약서는 3억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쓰자고 한다. 일단 계약서를 쓰고 나면 잔금 날짜를 뒤로 미뤄둔 채 강남의 투자자들을 찾아간다. “원가인 3억 5000만원에 넘길테니 사라”고 유인해, 거래가 성사되면 원 계약서는 파기한다. 업자는 거래를 도운 현지 부동산에 계약 파기금과 인센티브를 주고도 1억원 가까운 차익을 남긴다. 이런 거래가 몇번 이뤄지면 동네 집값이 순식간에 오른다. 2억원대 옆집이 3억 5000만원에 팔렸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집주인들도 호가를 높이기 때문이다. 소위 ‘손을 탈 수록’ 집값이 오르는 ‘부동산의 마법’이다.

업(UP)계약서는 실제 합의 금액보다 높은 금액에 계약한 것처럼 허위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업계약서는 일반적으로 다주택자가 건물(주택)을 살 때 구입한 비용을 높게 잡아서 나중에 다시 되팔때 (양도차액에 따른)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불법 행위다. 2억원에 부동산을 사고, 업계약서로 2억 5000만원을 쓸경우, 나중에 3억원에 팔더라도 차액인 1억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5000만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구입대금을 높게 잡아서 은행 등에서 대출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다운(DOWN)계약서는 반대로 실제 거래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서를 쓰는 불법행위다. 10억원 건물을 8억원에 거래했다고 하면 집을 판 사람은 양도소득세를 적게 낼 수 있고, 구매자는 취ㆍ등록세를 아낄 수 있다.

불법 계약서를 쓰면 부동산 판매ㆍ구매자와 중개업자는 취득세 3배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양도세 추징, 세무조사 대상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02신흥시장 60년 터줏대감 박일서(78)씨

고추가게(평남상회)는 작년에 용인으로 갔고, 기름집(공산떡방앗간)도 일산으로 갔어. 다들 나이는 많고 장사는 안되는데, ‘값 많이 쳐주겠다’니 가게 팔고 떠난 거지. 에휴, 나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어.

신흥시장 60년 터줏대감 박일서(78)씨
박일서씨는 “옆집도 그 옆집도 이사가 버렸다”며 “나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처음 이사와 국수 면 뽑아 팔기 시작한게 1960년이니까, 벌써 60년이 다 돼가. 그땐 대부분 판잣집이었어. 광복 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살면서 신흥시장이 생겼지. 서울시에서 1968년에 시장 현대화 사업한다고 할때 반대했던 2명 빼고 43명이 여기 상가 주인이 됐어. 가장 연세 많은 어르신은 올해 90(세)을 넘기셨지.

43개 상가 중 남은 집은 4집 뿐

한참 잘 나갈 때는 시장이 북적북적했어. 우리집도 (국수가) 없어서 못팔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그냥 소일거리로 하는 거야. 돈 안돼. 그래도 면을 옛날식으로 정성스레 손으로 일일이 뽑아서 파는 곳은 이제 서울에도 별로 없을걸? 시장이 쪼그라든 건 대형 마트 탓이 컸지. 우리 시장에 원래 상가가 43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덜렁 네 집 남았어. 그나마 계속 장사하는 사람은 우리집하고 양은가게 두집 뿐일 거야.

외부 사람들이 이 시장을 사들이기 시작한게 한 7~8년 됐나? 2009년인가 녹지개발한다고 할 때였지. 그 뒤 한참 잠잠했는데 도시재생사업 얘기 나온 뒤에 다시 시작됐어.

“도시재생? 나도 잘 몰라...”

도시재생? 나도 추진위원으로 들어가 있긴 한데 사실 잘 모르겠어. 뭐를 한다고 하니까 가서 듣기는 하는데, 정확히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더라고. 시장 슬레이트 지붕 걷어내는 걸 올 10월에 한다고 하더니, 또 밀려서 12월에 한다고 하데? 뭐 때문에 늦어지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나쁘지 않아. 재래시장 안 되는 건 오래된 일이잖아? 다른 걸 해서라도 사람들이 들어오면 활기가 좀 돌지 않을까. 우리 세대는 이제 여기 주인이 아닌 것 같아.

03‘해방촌 라이프’ 즐기는 신혼 이지은(33)씨

처음에 해방촌에 데이트하러 왔었어요.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1988’)아시죠? ‘응팔’ 감성이 남아 있는 동네같아서 좋았어요. 연예인이 운영하는 맛집도 많고, 고개만 들면 남산타워가 한 눈에 들어오고요. 서울 시내 전경도 잘 보이니까 옥상에서 친구들과 파티하기도 딱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이 동네에 신혼집을 차렸죠.

‘해방촌 라이프’ 즐기는 신혼 이지은(33)씨
이지은씨는 “‘응팔(응답하라 1988)’ 감성 남아있는 해방촌이 재미있고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집값이 엄청 비쌀 줄 알았는데, 전세 알아보다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신랑이랑 상의해봤는데 조금 대출받아서 사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서울시내 아파트 얻으려면 6~7억원 금방 넘어가잖아요. 그것보다는 싸니까. 주차가 불편하지만, 도심이랑 가까와서 출근하기 쉬운 건 장점이예요. 이 집 살 때 부동산에서 그랬어요. 몇 년만 지나면 사고 싶어도 못산다고.

“동네 맛집ㆍ공방 구경하는 재미 쏠쏠”

주말이면 동네 맛집에 가요.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재미가 있죠. 바람 쐬러 경리단이나 이태원 가는 것도 편해요. 마을버스만 타면 되잖아요. 가수 정엽씨 루프톱 좌우로 예쁜 식당들 많은데, 거기서 서울시내 내려다 보며 커피 한 잔 하면 참 좋아요.

참! 요즘은 동네에 새로 생긴 공방이나 작업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해요. 재미있는 가게가 계속 생기고 있거든요. 노홍철씨가 만든 ‘철든 책방’은 아직 못가봤어요. 앞을 지나가보긴 했는데 문을 안열었더라구요. 인스타그램으로 문 여는 날을 공지한다니까, 다음에 가봐야죠. 새로 당나귀도 키운다던데…

“이웃과 잘 안 어울려…그냥 지금이 편해요”

동네 사람들하고 그렇게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에요. 워낙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이것 저것 궁금해 하시던데 저희가 부담스러워하니까 지금은 별로 터치하시는 분들이 없어요. 주차 문제로 마찰도 약간 있었어요. 잘 해결되긴 했지만.

젊은 사람들끼리 하는 마을공동체도 있다는데, 아직 잘 모르겠구요.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직장이 있으니까 동네 일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는 않아요. 신혼 생활에다 직장 생활 바쁜데, 동네친구까지는 욕심이잖아요. 그냥 지금이 편해요.

해방촌에 자리한 편의점과 세련된 미용실
해방촌에 자리한 편의점과 세련된 미용실

계속 해방촌에 살 거냐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동네가 흥미롭긴 하지만 어린이집 같은 보육이나 교육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아기 낳으면 여기 전세 주거나 팔고, 딴 데로 이사가야죠. 나중에 공원 생기고 환경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신혼 때 정도만 이곳에서 살려구요.

046년차 ‘마을 활동가’ 김지영(36)씨

이 동네에 산 지 6년쯤 됐네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마을 초입 햄버거길 몇몇 가게 빼고는 해방촌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었죠. 낙후된 달동네라지만 쉐어하우스 문화도 있고, 실향민 어르신들도 이사 오는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셨어요. 그분들은 해방촌이 고향이나 다름없거든요. 근데 이제 어르신들 연세가 70이 넘어가고 한분 한분 돌아가시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6년차 ‘마을 활동가’ 김지영(36)씨
김지영씨는 "외지인 투자 몰리면 이곳 사람들 삶이 나아지는 거냐?"고 물었다.
체할 것 같은 핫플레이스

최근 2~3년 사이 주민들이 살던 곳이 상가로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도 공사중인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언론이 핫플레이스라고 떠들고, 외지인들 투자가 몰리면서 동네 전체가 공사판이 된 거죠. 하지만 이곳 사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외지에서 유입되는 돈은 거품 꺼지면 금방 빠진다잖아요.

사실 동네에 새롭게 들어선 카페나 레스토랑은 자리 잡기가 어려워요. 편의점도 그렇죠. 해방촌 오거리 근처에 편의점만 8개 정도 되는 거 아세요? 슈퍼마켓 없어지고 편의점이 생기는데 이 동네에 사는 어른신들한테 24시간 편의점이 왜 필요하겠어요. 식당도 인스타그램에 사진 찍어 올리는, 그런 곳만 생기는데 저는 체할 것 같아서 못가겠어요.

“노홍철씨 책방요? 자기만의 성()이죠”

신흥시장 아시죠? 원래 30년 가까이 월세가 그대로였던 곳이었어요. 시장이라기 보다는 싼 월세 찾아 어르신들이 들어와 사는 곳이었는데, 이제 그분들이 많이 쫒겨난다고 해요. 15년된 순대국밥집은 올해 월세를 올려줬는데, 가게 주인이 바뀌면서 ‘월세 더 올려줘도 안받으니 나가달라’고 했다네요. 가게 주인이 바뀌면 대부분 계약기간 끝나면 나가달라고 한다네요.

노홍철씨요? 저는 좋게 안봐요. 당나귀 키우는 책방주인이라고들 하던데 저는 정작 ‘철든 책방’ 문여는 걸 못봤어요. 책방이면 직원이라도 구해서 동네 커뮤니티 역할을 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재미난건 뭔지 아세요? 노홍철씨가 책방 내부가 보이는 맞은 편 시장 건물 2층을 임대했어요. 사생활 보호하겠다고요. 여기 주민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 사람만의 성을 쌓은 거에요.

“해방촌은 영화 세트장이 아니예요”

사실 여긴 저처럼 살러 들어온 젊은 사람들과 원래 주민들이 조금씩 어울리며 자생적 재생 혹은 변화를 만들어가던 동네예요. 근데 정부가 도시재생사업한다고 나서면서 이상해졌어요. 거주민을 위한 사업이라기 보다 여기 부동산 가진 사람들, 관광객을 위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요즘은 정부 정책 때문에 해방촌이 비정상적인 부동산 투기장이 되고 주민들이 동네 밖으로 내몰리게 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종의 ‘관(官)트리피케이션’이죠.

여기는 살아있는 공간이에요. 해방촌에 사는 주민들은 영화 세트 속 배역을 맡은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이구요. 이 동네에 필요한 건 ‘철든 책방’이나 루프톱 카페가 아니라, 어린이집이고 주차장이에요.

기획부동산 브로커 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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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동산 브로커 김사장
신흥시장 60년 터줏대감 박일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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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 60년 터줏대감 박일서씨
해방촌 라이프 즐기는 신혼 이지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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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라이프 즐기는 신혼 이지은씨
6년차 마을 활동가 김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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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차 마을 활동가 김지영씨

발행일 : 2017.10.26

  • 기획 정선언, 김현예, 정원엽, 조혜경
  • 사진 우상조
  • 디자인 임해든, 유수경
  • 개발 전기환, 원나연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