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의 비밀Ⅱ

내가 강남에 사는 이유

Intro서울 강남의 집값을 떠받치는 힘은 교육, 특히 사교육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와 서울대 공유도시랩이 서울 아파트 가격과 학원 숫자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학원이 많다고 아파트 가격이 높은 건 아니란 얘기다.

교육 컨설팅업체 스터디홀릭의 강명규 대표는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양이 아니라 질의 차이”란 것이다. 그는 “강남만의 문화와 네트워크가 있다. 그 안에서 질이 다른 교육 정보가 오가고 질이 다른 교육 경험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강남의 높은 집값은 이런 네트워크 안에 타지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진입 장벽’ 역할을 한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의 저자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강남의 교육열을 “중산층의 신분상승 혹은 지금 계층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해석했다. 데이터로는 드러나지 않는 강남의 이런 ‘민낯’을 보기 위해 직접 그곳 사람들을 만났다.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고, 이름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썼다.

011년8개월 전 이주한 대치맘 김유미(43)씨

1년8개월 전 이주한 대치맘 김유미(43)씨
김유미씨는 "대치동 엄마들은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화장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1년8개월차 대치맘이에요. 서울 반포에 살다 이사왔어요. 큰 아이가 아들인데 남자중학교를 보내고 싶었어요. 마침 아는 분이 대치동으로 이사를 간다기에 따라갔었는데, 눈이 확 커졌어요. 대치동은 ‘엄마가 살기 좋은 동네’더라고요. 그래서 큰애가 6학년 때 과감히 이사를 결심했죠.

1년8개월 전 이주한 대치맘 김유미(43)씨
김유미씨는 "대치동 엄마들은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화장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사 와서 제일 좋은 점은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냐’는 소리를 안하게 된 거에요. 주위 아이들이 다 열심히 공부를 하니까, 그런 말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지난해 둘째(초4ㆍ딸)네 반을 보니까 여학생 16명 가운데 15명이 전학생이었어요.

맞춤학습 '부티크(boutique) 학원'

저는 이 동네에서 (사교육)안 시키는 엄마 축에 속해요. 한 아이 당 100만원 남짓 사교육비를 쓰죠. 영어ㆍ수학하고 시험대비용으로 과학ㆍ한자 총 네 과목을 가르치는데, 애 수준에 맞게 소규모 맞춤형, 그러니까 ‘부티크(boutique)’ 같은 곳으로 다녀요. 반포보다 대치동이 더 만족스러운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학원 종류가 많고 5명 안쪽의 수준별 수업이 가능한 거요.

주변 엄마들은 좋은 학원 선생님을 따라다녀요. 유명 선생님한테는 선불로 돈을 걸어놓고 대기를 하기도 하죠. 어느 고1 엄마는 고3때 것까지 미리 돈을 걸어놨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정성이에요. 내신 기간에는 주말에 따로 불러내 공부를 봐주죠. 그러니까 과학고ㆍ영재고에 가도, 심지어 해외에 가도 방학에 여기로 공부를 하러 와요.

유별나다고? 화장할 시간도 없다

밖에서는 대치맘이 유별나다고 하죠. 하지만 알고보면 다들 평범해요. 오로지 아이, 공부만 봐요. 자기에게는 투자를 안하죠. 그래서 다들 수수해요. 화장도 잘 안하고 명품 가방도 잘 안 들고 다녀요. 전업주부 비중이 높은데 시험기간에는 아이들 암기과목 (대신) 요약해주느라 밥할 시간도 없어요.

대치동 엄마들이 많이 드는 바오바오백. 4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중저가 브랜드다.
대치동 엄마들이 많이 드는 바오바오백. 4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중저가 브랜드다.

내년에는 방학 기간에 아이를 미국에 보낼까 해요. 중학생이 되니까 주변에서 회화 수업은 하나도 안시키더라고요. 다 내신 영어만 해요. 한 번은 학교에서 원어민이 하는 영어 공개수업을 갔는데, 아이들이 다 너무 잘 하는 거에요. 대화를 자연스럽게 못하는 몇몇 아이들은 기가 죽어있고요. 대치동의 단점이 이거에요. 잘 하지 못하면 아이가 힘들어요. 기가 죽어서 아이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어요.

개천에서 용나기 어려운 세상

집값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요? 이사 오기 전만 해도 반포나 여기나 집값이 비슷했어요. 처음에는 반전세 집을 구해서 들어왔는데 금리가 낮으니까 대출 받아 집을 샀죠. 그 뒤 집값이 오르더라고요. 남편이 좋아했어요. 부동산에 물어봤는데, 정부의 8ㆍ2 대책 후에도 집값이 내리질 않는대요. 사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집 주인들이 집을 안 내놓는거죠.

제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개천에서 용난다’는 얘기가 통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렵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열심히 가르쳐야 해요. 대치동에서 앞으로 10년은 더 살 것 같아요. 아이 키우는 데에는 대치동이 최고니까요.

02강남 돌아온 연어맘 이수진(46)씨

강남 돌아온 연어맘 이수진(46)씨
결혼 후 경기도에 자리 잡았다가 아이를 낳고 강남으로 돌아온 이수진씨는 “동네 유흥시설이 없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저는 잠원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에요. 강남이 개발될 때 부모님이 이곳에 5층짜리 아파트를 산 뒤 절 낳으셨대요. 부모님 집은 지금 20층 짜리로 다시 재건축됐어요. 부모님께서 지금껏 살고 계시죠. 최근에 저도 같은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어요.

강남 돌아온 연어맘 이수진(46)씨
결혼 후 경기도에 자리 잡았다가 아이를 낳고 강남으로 돌아온 이수진씨는 “동네 유흥시설이 없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신혼집은 서울 이남 수도권의 전셋집이었어요. 양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는 신혼 부부가 서울에 집구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막상 살려니 주변환경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아파트 단지만 조금 벗어나도 옷가게ㆍ노래방ㆍPC방이 즐비했어요. ‘아이를 키우거나 나이 들어 살기 좋은 곳은 아니구나’ 싶었죠. 그래서 아이 계획을 가지면서 잠원동으로 돌아왔어요. 저 같은 사람을 ‘연어맘’이라고 한다죠?

잠원동으로 돌아오다

처음에는 아예 친정집에 들어가 살았어요. (생활비를 아껴)열심히 돈을 모으자는 생각이었죠. 맞벌이를 하는데 아이는 부모님이 봐주시고, 저희는 생활비와 육아비를 드렸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서 결혼 17년 만에 강남에 집을 샀죠. 부모님이 키워주신 아들은 저랑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새 중학교 2학년이 됐구요.

아이를 키우며 '이사 오길 잘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죠. 여긴 유흥시설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아이들도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와요. 친구들끼리 우르르 모여 딴길로 새는 일이 적죠.

고민 많지만 그래도 강남

고민이 없진 않아요. 여기서는 “만들어진 천재가 타고난 천재를 이긴다”고 말해요. 다 부모가 물려준 자질이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거죠. 여기는 중학생이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해요. 과목당 금액이 200만~300만원씩 하고요. 아이 어렸을 때 유명 영어유치원을 보내려고 했는데 “부모 중 한 사람이 영어회화가 가능해야 원생으로 받아준다”는 거에요. 부모가 아이 영어를 봐줘야 하기 때문이래요.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여기서 (아이가)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죠.

그래도 이사는 안 가려고요. 아이가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부모들이 강남으로 오고싶어 하는 건 아이 공부 잘 시키고 싶어서잖아요. 아이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거, 부모라면 다 같은 마음 아니겠어요? 저만의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벌이 하면서 아이에게 집 한 채 턱 사줄 수 있는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 바람을 갖는 것 같아요.

03강남 떠난 제주맘 박미애(40)씨

강남 떠난 제주맘 박미애(40)씨
박미애씨는 "대치동을 탈출하려고 제주에 왔지만 또다른 대치동에서 단위가 큰 싸움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제주맘이에요. 여기 온 지 벌써 5년 됐네요. 아이들은 둘 다 국제학교에 다녀요. 큰 애는 한국 학교로 치면 중학교 1학년,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죠.

강남 떠난 제주맘 박미애(40)씨
박미애씨는 "대치동을 탈출하려고 제주에 왔지만 또다른 대치동에서 단위가 큰 싸움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 오기 전에는 서초동에 살았어요. 대치동으로 아이를 실어 날랐으니까 절반은 대치맘이었죠. 대치동을 탈출한 건 힘에 부쳐서예요. 저도, 아이도.

대치동 시스템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거 같아요. 유치원생이 밤 7~8시까지 공부하는 동네예요, 거긴. 아이가 안 아픈 게 이상하죠. 용케 몸이 버텨내도 정신이 이상해질 거 같았어요. 늪 같다고나 할까. 사실 초등학생을 학원 몇 개씩 보내고 밤 9시까지 공부시키고 그러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랑 비슷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안 할 수 없죠. 오히려 더 열심히 하게 되고요. 아이도 달라지죠. “왜 엄마만 그래?” 이런 질문을 안해요. 거기선 다 그렇게 하니까요.

'중상층'을 위해서

왜 그렇게 아이 공부에 목을 매냐고요? 그래야 중산층이라도 되니까요. 아니다, 중산층은 아니고 중상층(upper middle class)쯤 되겠네요. 남편도 의사, 시아버지도 의사 이런 집안이 많아요. 근데 그 집안의 부가 또 엄청나게 큰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중상층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그게 압구정동 사람들과의 차이 같아요. 압구정동은 물려받은 것만 가지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동네잖아요?

제주에도 국제학교 주변에 돈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집값이 올랐어요. 30평대 아파트가 7억원 정도 하니까, 서울 집값이랑 별 차이가 없죠. 제주엔 특히 아파트가 많지 않아서 강남에서 온 엄마들 모여 사는 곳이 딱 정해져 있거든요.

제주 국제학교 인근에서 대당 가격이 1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 같은 명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제주 국제학교 인근에서 대당 가격이 1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 같은 명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제주는 ‘또 다른 대치동’

처음 제주도 왔을 땐 탈출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도 대치동이 됐어요. 정확하게는 더 비싼 대치동이죠. 여기선 엄마들 몇 명이 연세(※제주에서는 12개월 치 월세를 한 번에 주고 연(年) 단위로 집을 빌림)로 아파트 하나를 빌려요. 그리고 대치동 유명 강사를 모셔와요. 비행기 값 따로 주고요. 이거저거 따져보니 강남 살 때보다 딱 10배 더 들더라고요. 여기는 그걸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데에요. BMWㆍ벤츠ㆍ아우디 정도는 너무 흔해서 좋은 차 축에도 못끼죠. 마세라티 정도는 돼야 ‘좋은 차 몬다’는 소리를 들어요.

굳이 제주랑 대치동의 차이를 찾자면, ‘단위가 다른 싸움’이라는 거예요. 대치맘이 국내 명문대를 꿈꾼다면 제주맘은 해외 명문대를 원하거든요. 아이를 한국의 엘리트가 아니라 글로벌 엘리트로 키우고 싶은 거죠.

04‘목동 vs. 대치동’ 수학강사 조민국(45)씨

‘목동 vs. 대치동’ 수학강사 조민국(45)씨
대치동 수학 강사 조민국씨는 "부모들의 욕망이 강남 불패 신화를 만든다"며 "대치동은 영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대치동에서 수학을 가르칩니다. 고등학생들이 제 ‘고객’이죠. 목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대치동으로 넘어온 게 3년 전이예요. 대치동에 오니 뭐가 다르냐고요? 선생님이 다르죠. 대한민국에서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이 몰려들고,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위 ‘일타강사’(※1등 스타 강사의 줄임말)들이 모이는 곳이 대치동입니다.

‘목동 vs. 대치동’ 수학강사 조민국(45)씨
대치동 수학 강사 조민국씨는 "부모들의 욕망이 강남 불패 신화를 만든다"며 "대치동은 영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목동 선생님들이 자영업자라면 대치동 일타강사들은 중소기업 급이에요. 대형학원의 유명한 선생님 수업에는 500명씩 몰리기도 해요. 그런 선생님들은 세금만 한해 2억 원씩 냅니다. 일타강사 밑에는 보통 10명 남짓 연구팀이 붙죠. 교재 연구하고, 시험 트렌드 분석하는 사람들만 10명이란 이야깁니다. 거의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수준이죠. 그러니 다른 곳에 있는 선생님들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경제력+교육열의 복합체

대치동은 학원비가 비쌉니다. 고등학생 기준 한 과목에 50~60만원인데, 4과목만 들어도 한 아이 앞으로 200만원은 족히 듭니다. 서민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금액이죠. 그런데도 대치동에 왔다는 것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아이 교육에 뭐든 하겠다는 부모의 의지가 담겨 있는 거예요. 오로지 교육 하나만 보겠다는 건데 워낙 고액이 들다보니 선생님들끼리는 이런 말을 해요. ‘이 동네에서 고3까지 공부시켜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못 보내면 헛일’이라고요.

교육 때문에 온다지만 대치동이 다 좋은 건 아니에요. 불리한 게 하나 있죠. 내신이요.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고 집안 경제력이 되는 아이들이 다 모이니까 내신이 불리하죠. 그러니까 이곳 아이들 대입전략이란 게 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수시를 노리는 거예요. 그래서 소위 ‘컨설팅 학원’이 성업 중이죠. 고1 때부터 아예 설계도를 그려줍니다. 그런 컨설팅은 1년에 수천만 원씩 든다고 해요.

사회가 안바뀌면 대치동은 영원

‘학원 천국’인 대치동 집값이 수십억 원씩 하는 것은 나보다 나은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욕망이 반영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수요-공급의 관점에서 보면 대치동은 앞으로도 영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에는요.

제가 학원 강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하는데, 혹 대치동 가면 잘 하지 않을까’하고 이사를 오는 건,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이 동네 집값을 띄우고 ‘강남불패’를 만드는 거거든요.

1년8개월 전 이주한 대치맘 김유미(43)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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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8개월 전 이주한 대치맘 김유미씨
강남 돌아온 연어맘 이수진(46)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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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돌아온 연어맘 이수진씨
강남 떠난 제주맘 박미애(40)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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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떠난 제주맘 박미애씨
목동 vs. 대치동 수학강사 조민국(45)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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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vs. 대치동 수학강사 조민국씨

발행일 : 2017.09.28

  • 기획 정선언, 김현예, 정원엽, 조혜경
  • 내레이션 JTBC 황남희
  • 사진 우상조
  • 영상 우수진
  • 디자인 임해든, 유수경
  • 개발 전기환, 원나연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