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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손으로 살려냈죠, 희미한 옛 서울의 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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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곳은 산과 물, 마음 세 가지가 맑다고 해 삼청동이라 불렸어요. 청계천의 ‘맑을 청’자가 여기에서 비롯됐죠.”

박동(50) 문화정책개발연합 위원장이 설명하자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 주말, 청소년 문화재 지킴이 ‘달항아리 문화학교’가 서울 청계천의 새암을 찾아 삼청동 답사에 나선 길이었다. 북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삼청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1957년 삼청동이 복개되면서 물길도 함께 묻혔다.

청계천 시원을 찾아 삼청동 답사를 나온 달항아리 문화학교 학생들(사진 左). ‘고암회’가 새겨진 바위를 확인하고 있다. 오른쪽은 답사 후 완성한 삼청동 지도. [박종근 기자]


◆맷돌바위부터 고암회까지=삼청동에서 나고 자란 박 위원장은 “북악산 꼭대기 맷돌바위에 있는 샘물에서부터 물길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맷돌바위는 수시로 접근 가능한 곳이 아니다. 삼청동 칠보사 앞길에서 200여 m 올라간 지점에 있는 ‘고암회(高巖回)’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답사가 시작됐다.

‘고암회’는 그 자리가 북악산의 가장 고귀한 돌이 모여있는 중요한 장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청와대 뒷마당 격인 그곳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철책으로 가려져 접근할 수 없었다. 그 바로 아래에 ‘기천석’이 있다. ‘기천석(祈天石)·강일암(康日庵)·서월당(徐月堂)’이 나란히 새겨진 이 바위는 제단으로 쓰이던 것이다. 각각 토속 신앙, 불교, 유교를 상징하는 구절이다.

◆콘크리트 틈으로 보이는 물길=더 아래로 내려오니 정조의 수라상에 진상되던 샘물이 있다. 본격적으로 물길이 보이는 지점이다. ‘우물집’이란 식당 뒤편에는 우물과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계곡이 남아 있다. 이끼가 잔뜩 낀 담벼락에 ‘운용천(雲龍泉)’이란 글씨가 희미하게 보인다.

삼청동길에 있는 지하카페 ‘꺄브’ 안에는 ‘양푼우물’이 보존돼 있다. 양푼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청동 입구 병풍바위에 새겨진 ‘삼청동문(三淸洞門)’이란 글씨를 확인하는 것으로 답사는 끝났다. 삼청동의 시작을 알리던 이 표지석은 정조 때 한양 전경을 그린 ‘도화도’(보물 1560호)에도 적혀 있다. 그러나 마구잡이 개발로 지붕에 가려져 길 건너편 건물 옥상에 올라가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문화지도를 그리다=답사에 나선 아이들은 “청계천만이 아니라 삼청동의 문화재들도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달항아리 문화학교 학생들은 콘크리트 더미에 가려진 옛 서울의 흔적을 살려냈다. 고지도에 삼청동 답사 경험을 섞어 ‘청계천 삼청동문 시원도’를 완성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답사에서 확인된 유물 하나 하나가 시급히 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것들”이라 지적하고 “아이들과 함께 서울 전체의 문화재 지도를 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달항아리 문화학교(http://cafe.daum.net/dalhangari)=민간 문화재 보호 단체 ‘문화정책개발연합’이 올 초 발족한 청소년 문화재 학교. 경희궁 돌담을 발굴하고, 궁궐 주변에 버려진 사금파리를 수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02-2195-4666.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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