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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 貧者의 떡?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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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27면

서울 종로 거리를 지날 때마다 부침개 지지는 냄새의 유혹을 피하지 못한다.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을 걸쳐야 하는 법.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정말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란 노랫말이 맞지 않나요. 배고프고 술 고플 때 이만 한 게 없으니까요.”
“사실 빈대떡이라는 말이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었던 빈자(貧者)떡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조선시대 흉년이 들면 유랑민이 성문 밖으로 수없이 몰려드는데, 그러면 당시의 세도가에서는 이들을 위해 빈자떡을 만들어 싣고 와 ‘어느 집 적선이오’ 하면서 나누어 주었다고 하지. 이 빈자떡이 빈대떡으로 불리게 된 것은 정동의 옛 이름이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대골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빈자떡 장수가 많아서였다고 해.”
“그런데 부침개를 떡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나도 이상해서 찾아봤지.”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 내놓은 음식을 기록한 『영접도감의궤』(1634)를 보면 병자(餠煮)라는 음식이 있는데, 이것은 녹두를 갈아 참기름에 지져 낸 것으로 보이고 이를 녹두병(綠豆餠)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민간에 전해져 『음식지미방』(1670)에서는 ‘빈쟈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조리법을 보면, 팥소를 넣고 기름에 지진다고 했어. 150년 뒤에 나온 『규합총서』(1815)에서는 ‘빙자떡’이 등장하는데, 꿀에 버무린 밤으로 소를 넣고 지지다가 위에 잣과 대추를 박아 한 번 더 지진다고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지.”
“그러면 병자·녹두병·빈자·빙자떡은 일종의 ‘기름에 지진 떡’, 곧 유전병(油煎餠)으로 보아야겠네요.”
“그렇지, 떡으로 보는 게 맞지. 그런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 와서는 ‘빈대떡’이라고 적고 한자어로 ‘빈자병(貧者餠)’이라고 하고 있다는 거야. 조리법을 보면 이전과는 확 달라지지. 녹두를 간 것에 볶은 쇠고기와 닭고기·돼지고기·갖은 야채·버섯·달걀, 게다가 물에 물린 해삼과 전복, 채로 썬 밤·대추를 넣고 지지고 있어. 이것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하고. 여기에 오면 오늘날 빈대떡에 가까운 부침개가 등장하지.”
“결국 병자가 빈자가 되고 빙자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떡 병(餠)이 빙이니, 빙자떡이라는 이름에는 ‘떡’이라는 말이 두 번 들어가는 셈이네요. 그리고 빙자떡이 빈자병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런데 왜 ‘빈자(貧者)’로 적었을까요? 들어간 재료를 보면 전혀 ‘빈자떡’이 아닌데요.”
“이 주장을 따라가 보면 빈대떡을 떡이라 부른 이유는 알겠는데, 지진 떡을 가리키는 병자 또는 빙자가 가난한 자를 뜻하는 ‘빈자’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그것이 다시 ‘빈대떡’으로 불리게 된 경위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러운 게 빈대떡의 참 맛이다. 막걸리 한 모금이 입 안의 기름기를 가시게 하고 다시 빈대떡 한 점 집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배는 부르고 술기운도 오른다. 이제는 비록 손이 아닌 전기모터가 돌리는 맷돌이 놓여 있지만, 주머니가 가벼울 때 가까운 이들과 떠들고 즐기기에는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종로 골목길 빈대떡집들만 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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