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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흙·물·돌·허공 담는 '지나 손'/ 쉰둘에 대지미술 품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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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 지나 손(Gina Sohn)

권혁재의 사람사진 / 지나 손(Gina Sohn)

그는 2010년까지 신문사 편집기자였다.
기자 노릇을 딱 20년 채우고 그만뒀다.
직업을 버린 그는 나고 자란 안면도로 귀향했다.
이는 어릴 적 꿨던 꿈을 좇아간 귀향이었다.

예서 섬을 돌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섬을 알기 위해 찍고 걸은 7년,
결국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었던 섬을 통해 자신을 찾게 됐다.
이때까지의 이름은 손현주였다.

2017년, 그는 프랑스 베르사유 시립 미술대학에 편입했다.
나이 쉰둘이었다.
이는 새 이름 ‘지나 손 (Gina Sohn)’으로 디딘 새로운 도전이었다.

예서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사진을 넘어 대지미술에 눈을 떴다.
대자연이 예술의 재료이며 대상이 된 게다.

2019년 지나 손 은 부표 오브제 수백개를 해변에 기하학모양으로 설치 후 파도에 의해 해체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렇듯 자연의 맥동에 의해 해체되거나 변이되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것 또한 지나 손에게는 대지미술인 게다.

2019년 지나 손 은 부표 오브제 수백개를 해변에 기하학모양으로 설치 후 파도에 의해 해체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렇듯 자연의 맥동에 의해 해체되거나 변이되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것 또한 지나 손에게는 대지미술인 게다.

대지미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미술가인 지나 손은 2021년 지구촌 작가들의 드로잉이 포함된 튜브 1천개를 바다에 띄웠다. 이는 인류의 코비드에 대한 저항을 설치로 표현한 대지미술이었다

대지미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미술가인 지나 손은 2021년 지구촌 작가들의 드로잉이 포함된 튜브 1천개를 바다에 띄웠다. 이는 인류의 코비드에 대한 저항을 설치로 표현한 대지미술이었다

하나 대지미술은 우리나라에선 낯설 뿐만 아니라 불모지나 다름없다.
1일 서울 자하미술관 전시 개막을 앞둔 그에게 대지예술을 물었다.

“’허공을 드로잉하다’라는 이야기로 계속 대지미술 작업을 했습니다.
파리에선 빨강·노랑·파랑 막대기를 허공에 던지면서 영상을 찍기도 했죠.
사실 이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비어 있는 허공을 건드린 겁니다.”

지나 손은 지난 4월 2일 불탄 인왕산 숲에 욕조를 놓았다. 이는 숲의 정령들에게,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네는 것이며, 아울러 대지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씻김과 정화를 주는 그의 대지미술이다. 대지미술가 지나 손의 전시 〈인왕목욕도〉는 자하미술관서 6월11 일까지다.

지나 손은 지난 4월 2일 불탄 인왕산 숲에 욕조를 놓았다. 이는 숲의 정령들에게,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네는 것이며, 아울러 대지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씻김과 정화를 주는 그의 대지미술이다. 대지미술가 지나 손의 전시 〈인왕목욕도〉는 자하미술관서 6월11 일까지다.

그의 대지엔 흙·물·돌은 물론이거니와 허공까지 포함된 개념이었다.
이른바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드로잉을 넘어서는,
기운만으로 허공에 그리는 행위 또한 그에겐 그림 행위인 게다.

지나 손은 자하미술관 숲에 자투리 천을 세로로 세워 심었다. 이름하여 ‘여름의 색’이다. 대지에 촘촘히 심은 헝겊의 겹엔 그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지난해 5월 유방암 판정을 받은 그는 대지에 핀 색 덩어리에 자신의 몸속에 핀 몹쓸 꽃을 투영한 게다. 결국 그가 호미로 이 가상의 꽃, 가상의 색을 심은 뜻은 그가 다시 일어서서 찬란하게 피어날 시간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게다.

지나 손은 자하미술관 숲에 자투리 천을 세로로 세워 심었다. 이름하여 ‘여름의 색’이다. 대지에 촘촘히 심은 헝겊의 겹엔 그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지난해 5월 유방암 판정을 받은 그는 대지에 핀 색 덩어리에 자신의 몸속에 핀 몹쓸 꽃을 투영한 게다. 결국 그가 호미로 이 가상의 꽃, 가상의 색을 심은 뜻은 그가 다시 일어서서 찬란하게 피어날 시간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게다.

그렇다면 이로써 그가 관람객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
“실내에 있어야 할 캔버스를 바깥에 설치했으며 퍼포먼스도 준비했습니다.
이를테면 나만 소유하는 예술이 아니라 모두가 소유하는 예술이라는 의미죠.
다들 현대 미술을 어렵게만 생각하잖아요.
대지와 함께하는 작품을 보고, 퍼포먼스도 같이 참여하다 보면
현대미술의 중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을 발견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