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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의대반까지…한 자녀에 올인, 사교육 지출 더 늘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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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초등학교 2학년생 아이를 둔 학부모 이모(43)씨는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원래 다니던 영어·검도 학원에 수학학원을 추가해 지출이 늘면서다. 주변에선 논술·코딩 학원도 보내라는데, 그럼 학원비만 월 120만원이 넘는다. 이씨는 “애들 나이에 ‘0’ 하나 더 붙인 게 학원비라는 건 옛말이다. 요즘은 나이에 2~3을 더한 뒤 ‘0’을 붙여야 맞다”며 “초등학생 의대반까지 있는데, 우리 애만 뒤처질까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생 아이를 둔 워킹맘 김모(41)씨는 급여가 오르면 아이 학원을 갈아탄다. 비싸고 멀어도 좋다고 입소문 난 학원으로 옮긴다. 이러다 보니 초등학교 입학 때보다 학원비로만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더 나간다. 맞벌이라 학원 말고는 아이를 맡길 데도 없다. 김씨는 “사교육은 일단 시작하면 후진이 없다”며 “소득보다 학원비가 더 늘어 생활은 늘 팍팍하다”고 털어놨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폭등한 물가도 급증한 사교육비 앞에서는 무색하다. 교육부·통계청이 7일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 사교육비 지출 총액은 26조원이다. 전년(2021년)보다 학생 수는 4만 명 줄었는데 지출 총액은 2조5380억원 늘었다. 전년보다 10.8% 늘어난 건데 지난해 물가상승률(5.1%)의 두 배 수준이다. 지난해 3~5월, 7~9월 전국 3000여 학급, 7만4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41만원으로 전년보다 4만3000원(11.8%) 늘었다. 박은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2007년 조사를 시작한 뒤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학원이 문을 닫은 2020년을 제외하곤 꾸준히 증가세”라고 설명했다.

특히 초등학생 사교육비 증가가 두드러진다. 초등학생 1인당 월 사교육비는 37만2000원으로 전년보다 4만4000원(13.4%) 늘었다. 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까지 포함한 평균치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 기준 사교육비는 52만4000원이다. 사교육 참여율도 85.2%로 1년 새 3.2%포인트 높아졌다. 중학생(76.2%), 고등학생(66.0%)이 그 뒤를 잇는다. 초등학생의 주당 사교육 참여 시간도 7.4시간으로 전년 대비 0.6시간 늘었다.

코로나 학습 결손에 초등생 사교육 급증

교육부는 초등학생의 사교육 증가 원인으로 ‘학습 결손 우려’를 꼽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초등학생은 학교에 가지 못해 학습 결손을 많이 겪었다”며 “출발선에서 보충하지 않으면 중·고교에 진학해서도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등학생 사교육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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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수가 적을수록 사교육에 투자하는 액수(자녀 1인당)도 커졌다. 자녀가 1명인 가구의 월 사교육비(1인당)는 46만1000원, 2명 가구 43만원, 3명 이상 32만원이다. 전년 대비 증가 폭도 자녀가 1명인 가구가 4만9000원으로 가장 높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자녀가 한 명밖에 없으니 ‘올인’하게 된다”며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기대는 (항공기 서비스로 치면) 비즈니스 또는 퍼스트클래스인데, 지금 공립학교는 이코노미 수준이니까 서비스를 별도로 추가 구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 경제활동 상태로 보면 맞벌이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가장 높았다. 자녀 1인당 월 사교육비는 맞벌이 가구가 43만2000원으로 외벌이 가구(38만9000원)보다 많다. 맞벌이 가구의 소득 수준이 더 높기 때문일 수 있지만, 교육비를 위해 맞벌이를 선택하는 가구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맞벌이 가구의 사교육 선택 이면에는 ‘돌봄’ 문제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등학생의 경우 사교육 이유로 ‘보육·친구사귀기’(18%)가 ‘진학 준비’(6.1%) 응답보다 많다.

“EBS 수능 연계, 방과후 학교 강화해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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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 디바이드(divide·격차)’가 확연했다. 가구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모두 높았다.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는 사교육비로 64만8000원, 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는 17만8000원을 각각 지출했다. 사교육 참여율도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가 88.1%로 가장 높았고, 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는 57.2%로 가장 낮았다.

한국교총은 “정부의 기존 사교육비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사교육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1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중·고생 학부모는 사교육비 경감에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EBS 수능 연계’(응답자 25.5%)를 꼽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 때 축소한 EBS 수능 연계를 확대하고,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 중 하나인 ‘교육개혁’이 수월성 교육 강조라는 점에서 사교육을 더욱 부추길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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