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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입양은 부담 아닌 축복…文 '입양 취소' 발언에 깜짝 놀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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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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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한국 아이들을 위해 국내외 입양 홍보 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미국인 남녀가 있다. 한국 땅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절망했지만, 극적으로 미국 가정에 입양돼 꿈을 키우고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지금은 행복한 가정을 일군 성공한 미국인들이다.

[한국계 스티브 모리슨과 줄리 듀발의 입양 이야기] #미국에 입양돼 당당히 자립 성공 #경험 살려 국내외 입양 적극 홍보 #"시설 아동에겐 가정이 제일 중요 #입양은 아이에게 기회 주는 일 #정부, 자립준비청년 박람회 열고 #입양특례법 현실 맞게 개정해야"

미국에 입양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신들처럼 버려진 한국 아이들의 국내외 입양을 위해 뛰고 있는 줄리 듀발(황순영) LBTO 대표와 스티브 모리슨(최석천) MPAK 대표. 두 사람이 이소연 선한마음연합 대표와 지난 1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이소연 대표는 감사원장을 역임한 남편 최재형 의원과 함께 두 아들을 입양한 경험이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전민규 기자

미국에 입양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신들처럼 버려진 한국 아이들의 국내외 입양을 위해 뛰고 있는 줄리 듀발(황순영) LBTO 대표와 스티브 모리슨(최석천) MPAK 대표. 두 사람이 이소연 선한마음연합 대표와 지난 1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이소연 대표는 감사원장을 역임한 남편 최재형 의원과 함께 두 아들을 입양한 경험이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전민규 기자

 1956년 강원도 묵호에서 '최석천'으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스티브 모리슨(67) 한국입양홍보회(MPAK) 대표, 1963년 부산에서 '황순영'으로 태어나 미국인이 된 줄리 듀발(60) LBTO(Love beyond the orphanage) 대표다. 두 사람은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이자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에서 지금도 매일 버려지는 아이들을 살리겠다며 몇 년째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8일, 18세가 되면 보육원(옛 고아원)을 떠나는 자립준비 청년(옛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박람회 'Move on'을 12개 비영리 단체와 공동으로 열었다.

8세 때의 최석천.

8세 때의 최석천.

 스티브 모리슨(최석천) 대표는 다섯살 때 가정이 해체되면서 강원도의 한 보육원에 들어갔고, 불편한 다리를 수술해 준다는 말을 듣고 상경해 일산 홀트아동복지회 주선으로 수술을 받았다. 미국인 홀트 부부가 세운 이 복지회는 6·25전쟁으로 생긴 고아 10만여명 중 수만 명을 거두었다. 그는 1970년 14세 때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생물학자로 일하던 존 모리슨 부부에게 입양됐다. 양부모는 1남 2녀를 낳고도 모리슨을 포함한 한국인 2명을 입양했다. 새 가정의 도움으로 중·고교를 다니고 퍼듀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려 1979년부터 42년간 항공우주 관련 기업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1982년부터 30년간 미국홀트아동복지회 이사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는 미국에서 입양 홍보 활동을 하다가 1999년 MPAK를 설립했다. 입양을 통해 기회를 얻고 인생을 바꾼 모리슨은 세 딸을 키우면서 한국 남아를 각각 2000년과 2011년 입양했다. 큰딸과 두 입양아의 나이가 모두 25세여서 '1997년생 세쌍둥이'를 둔 셈이다.

스티브 모리슨(한국명 최석천)대표 가족의 행복한 모습. [사진 스티브 모리슨]

스티브 모리슨(한국명 최석천)대표 가족의 행복한 모습. [사진 스티브 모리슨]

 -재산·지위 등 입양에 조건이 있나.
"내 경험에 비춰보면 입양은 한마디로 영아원·보육원·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반 아이들처럼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랄 기회, 사회에서 교육받고 성장하고 성공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입양이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아이의 잠재력을 먼저 봐줬으면 좋겠다."

 -중산층과 사회지도층이 나서야 할까.
"사회지도층이 솔선해 입양하면 좋겠지만, 사회적 지위나 재산은 상관없다. 입양은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고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기에 국내 입양과 함께 해외 입양이 아직은 필요하다."

 -저출산이 심각한데 낙태도 많고 아이들은 계속 버려진다.
"미국에서는 부부가 이혼하면 서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싸우는데,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은 서로 안 키우겠다며 너무 쉽게 보육원에 맡긴다. 미국처럼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책임을 지도록 법적 의무를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재혼하면서 전 남편이나 전 부인의 아이를 못 받겠다는 발상은 미국 문화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키우면서 입양을 후회한 적이 있나.

"혹시 내가 잘못 데려왔나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돌려보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위탁 가정의 경우 며칠이나 몇 개월 키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잘 키우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고, 어떤 이유든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20년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됐고, 반려견 파양 논란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입양을 취소하거나 애가 안 맞으면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한 발언은 수많은 입양 가족을 놀라게 했다. 입양에 대해 선입견도 많고 무지하니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바꾼다는 발상은 부모의 입장인데, 엄마·아빠와 가정이 필요한 아이 입장에서 봐야 한다. 반려동물에 대해선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을 입양했다면 끝까지 제 자식처럼 키워야 한다."
 -입양 정책 중에 개선할 것은.
"2012년에 도입한 '입양특례법'처럼 섣부른 정책이 역효과를 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원 심사로 입양 가정을 걸러내는 것은 맞지만, 미혼모의 출생 신고를 의무화한 조치 때문에 신고를 기피하는 미혼모들이 아이들을 더 많이 낙태하고 화장실과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니 출산율이 올라갈 수 없다. 미혼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미국처럼 한국도 미혼모가 무명·익명으로 남을 수 있게 법을 수정해야 한다."

6세 무렵의 황순영.

6세 무렵의 황순영.

 줄리 듀발(황순영) 대표는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지내다 16세에 퇴소했다. 여러 집을 전전하며 가사도우미로 일했고 판매점에서 일하다 성적 학대를 당했다. 일산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갔더니 자원봉사자로 받아줘 틈틈이 영어를 공부하며 자립을 준비했다.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미국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던 중 오리건주에 사는 진 메이베리 부부의 딸이 됐다. 그 부부는 친생자녀 3명 외에 미국 남아 1명과 한국 여아 3명을 입양한 상태였다.
 듀발 대표는 "새로운 가족을 얻으면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비로소 자신감과 안정감을 얻었고 꿈을 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학 졸업 뒤 변호사 남편을 만나 1992년 결혼했고 20대 딸 둘을 뒀다. 자신처럼 버려진 아이들이 보육원이 아니라 국내든 해외든 입양을 통해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2016년 비영리 단체 LBTO를 설립했다.

줄리 듀발(한국명 황순영) 대표 가족의 단란한 모습. [사진 줄리 듀발]

줄리 듀발(한국명 황순영) 대표 가족의 단란한 모습. [사진 줄리 듀발]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편견과 차별이 심했고, 무엇보다 존중받지 못해 힘들었다. 기회가 목말랐다. 가정을 가질 기회, 사랑받을 기회, 교육받을 기회가 중요했다."
 -LBTO를 만들어 한국 고아 돕기에 나선 이유는.
"나에게 기회를 준 데 대해 늘 감사하면서 뭔가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입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고 싶었다. 보육원을 나가는 자립준비 청년에게 필요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제공해야 하는데, 정부 프로그램이 너무 부족해 나서게 됐다. 설과 추석에 만남 행사를 열고 장학금도 지급한다."

 -정부에 호소하고 싶은 것은.
"시설에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정부가 최근 자립지원금을 올려줬다. 돈도 좋지만, 자립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립준비 청년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박람회도 정부가 주도해 정기적으로 열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등 한국사회 지도층에게 전할 말은.
"한국은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가정이 유달리 많다고 들었다. 유기견 입양도 좋지만, 버려지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이고 먼저 챙겼으면 좋겠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아이들에게 시설보다 가정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널리 알려주면 좋겠다. 입양은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다."
[기고 이소연 '선한마음연합' 대표]

선한마음연합 이소연 대표와 남편 최재형 의원(전 감사원장)은 두 아들을 입양해 키웠다. 전민규 기자

선한마음연합 이소연 대표와 남편 최재형 의원(전 감사원장)은 두 아들을 입양해 키웠다. 전민규 기자

"유엔협약대로 모든 아동은 '가정에서 자랄 권리' 누려야"

보육원을 나오는 자립준비 청년(매년 약 2000명)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최근 커졌다. 자선 단체와 유명 연예인 등 각계 인사들이 나서서 아동 양육시설과 자립준비 청년을 위해 돈과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매월 40만원의 자립수당을 5년간 지급하고, LH를 통한 주거 지원 등 자립에 필요한 다양한 맞춤 대책을 추진 중이다. 바람직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자립준비 청년 관련 사회적 지표를 보면 여전히 암울하다. 보육원을 떠난 청년 4명 중 1명은 곧바로 연락이 끊기고 자립 지원체계의 사각지대로 숨어든다. 대학진학률이 70%를 훌쩍 넘는 이 시대에 자립준비 청년의 대학 진학률은 겨우 15%에 그친다. 자주 발생하는 자립준비 청년의 비극적인 자살을 막아야 한다.
 태어나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은 곧바로 위탁가정이나 입양가정으로 보호 조치하는 것이 일관된 정부 정책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지금까지 60%가 넘는 유기 아동은 정당한 보호 절차 없이 곧바로 집단 보육시설로 보내졌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협약 등은 친권자를 떠나 보육시설로 보내진 아동에게는 가정형 보호가 최우선의 이익임을 명시하고 있다. ‘모든 아동은 가정에서 자랄 권리가 있다’는 아동보호 원칙은 모든 인류 문명권에서 동의하고 약속한 가치다.

 미국·유럽 등 복지 선진국에서 보호 아동은 가정 보호 원칙에 따라 위탁·입양 가정에서 자란다. 한국처럼 한 번 들어가면 평균 10년을 살아야 하는 장기·집단 보육시설은 없다. 사람은 모두 존중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이제라도 정부가 자립준비 청년에게 다양하고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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