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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서 리튬 캔다고?…친환경 전기차에 자연환경 뒤집는 유럽

중앙일보

입력

바야흐로 '희귀금속(rare metal)' 전성시대다. 스마트폰에서부터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각종 희귀금속이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이 시장의 큰 손은 다름 아닌 중국과 러시아. 그러나 1년째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욱 첨예해진 미·중 간 전략 경쟁 등으로 인해 그간 중·러의 공급망에 종속돼 있던 서방 국가들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특히 유럽 각국은 전기자동차(EV)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증한 희토류(rare earth)와 리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0여개의 희귀한 금속을 총칭하는 희토류는 반도체에 꼭 필요한 소재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광물이다. 급기야 환경 부담과 비용 문제로 포기했던 유럽 내 광산 개발도 서두르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휘발유 등을 쓰는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전기자동차 관련 소재와 부품 공급망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르노의 전기차 캉구 ZE를 충전하려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휘발유 등을 쓰는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전기자동차 관련 소재와 부품 공급망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르노의 전기차 캉구 ZE를 충전하려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중순 유럽 최대 철광석 생산업체인 스웨덴 국영 광물기업 LKAB는 스웨덴 최북단 키루나에서 대규모 희토류 광맥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100만t 이상의 매장량(희토류 산화물 기준)이 확인된 유럽 내 최대 희토류 매장지다.

이와 관련, 얀 모스트롬 LKAB 최고경영자(CEO)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최근 인터뷰에서 “올해 중 채굴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며 “스웨덴뿐 아니라 전 유럽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낭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토류가 없으면 전기차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배터리 등의 핵심 소재인 리튬 역시 전 세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관련 업계는 리튬의 수요가 2030년까지 현재 소비량의 18배, 2050년까지 60배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2035년부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데 지난해 합의하면서 전기차에 꼭 필요한 희귀금속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이미 EU는 중국ㆍ러시아산 광물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관련 규제를 손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네오디뮴' 가격 급등에 불안  

스웨덴 광물기업 LKAB는 스웨덴 최북단 키루나에서 유럽 내 최대 희토류 매장량을 확인했다고 지난달 12일 밝혔다. 사진은 LKAB가 해당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철광석 광산의 모습. AFP=연합뉴스

스웨덴 광물기업 LKAB는 스웨덴 최북단 키루나에서 유럽 내 최대 희토류 매장량을 확인했다고 지난달 12일 밝혔다. 사진은 LKAB가 해당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철광석 광산의 모습. AFP=연합뉴스

희토류는 스칸듐(Sc), 이트륨(Y), 란타넘(La)족 원소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 중 란타넘족에 속하는 네오디뮴(Nd)으로 만든 영구자석은 전기차의 심장인 모터와 풍력발전용 터빈 등의 핵심 부품이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전 세계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네오디뮴 가격이 급등세다. 무역정보 사이트인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네오디뮴 가격은 사상 최고치(1t당 약 152만 위안ㆍ약 2억7600만원)를 기록했는데, 이후 하락했으나 올해 들어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12일 스웨덴 북북 키루나에서 얀 모스트롬(왼쪽) LKAB 최고경영자(CEO)와 에바 뷰수 스웨덴 부총리가 희토류 채굴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스웨덴 북북 키루나에서 얀 모스트롬(왼쪽) LKAB 최고경영자(CEO)와 에바 뷰수 스웨덴 부총리가 희토류 채굴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희토류의 절대 강자(전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인 중국이 네오디뮴의 거래 역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EU의 역내 희토류 생산량은 전무하고,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98%로 압도적이다.

발 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당장 희토류를 유럽 내에서 자체 조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LKAB 측에 따르면 키루나에서 희토류를 상업화하려면 통상적인 절차를 거칠 경우 앞으로 10~15년이 소요된다.

EU 규제완화 시 채굴 앞당겨 

단 변수는 있다.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EU 집행위원회가 오는 3월까지 중요한 광물 원자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ㆍCRMA)’을 마련하면 각종 규제로 유럽 내 채굴이 어려웠던 희토류 등의 자체 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LKAB 역시 EU의 규제 개혁 수준에 따라 채굴 시기를 5~8년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앞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9월 연례 정책연설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핵심 원자재 일부는 한 국가, 중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며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U는 리튬 등 핵심 원자재의 역내 조달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 광산 개발은 독일ㆍ프랑스ㆍ체코ㆍ포르투갈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유럽 각국은 리튬 역시 희토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칠레 등지에서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독일에선 호주계 신생 자원업체인 불칸 에너지가 독일 남서부 라인 강 협곡을 따라 지하 3000m 아래에 매장된 리튬을 개발하기 위한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개발에 착수해 2025년부터 연간 4만t의 리튬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프랑스 중부 보부와 지역에서도 광물기업인 이메리스가 앞으로 연간 3만4000t을 얻을 수 있는 리튬 광산을 개척 중이다. 이와 관련, 이메리스 측은 “앞으로 25년간 해마다 전기차 70만대분 배터리에 쓸 수 있는 분량”이라며 “2028년부터 본격적인 채굴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간 3만t 이상의 생산이 기대되는 체코 치노베츠 지역의 리튬 광산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사전타당성조사에선 유럽 내에서가장 낮은 비용으로 리튬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나타나 경제성이 입증됐다. 개발 업체 측은 구체적인 생산 시기를 특정하지 않으면서도 “수년 내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포르투갈 등지에서 리튬 채굴 인허가를 기다리는 업체들이 상당수 있다고 유로뉴스 등은 전했다.

실패 잇따르자 '친환경' 내세워 

하지만 이같은 유럽 내 희귀금속 광산 개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최종 생산에 이르지 못한 사례들이 과거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당초 세르비아 정부는 영국ㆍ호주계 광산 업체인 리오틴토에 연간 생산량 5만8000t에 이르는 유럽 최대 규모의 리튬 광산 개발을 허가했지만, 환경 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해 1월 사업권을 돌연 취소했다.

또 스웨덴 남부에서 희토류 광산을 열려던 캐나다계 광물기업 리딩 엣지 머터리얼스의 개발 계획은 지역민 등의 반발에 부딪혀 10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광산 개발로 삼림이 파괴되고 주변의 수질 오염이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사진은 독일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사진은 독일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 때문에 최근 유럽에서 희귀금속 개발에 나선 업체들은 개발 방식이 ‘환경친화적’이라고 내세운다. 독일에서 시범 사업을 하는 불칸 에너지 측은 르몽드에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폐쇄 방식으로 친환경 리튬을 추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럽이 2020년대 중반부터 희귀금속 자체 조달에 돌입한다 하더라도 산업계의 수요가 너무 많은 탓에 중국ㆍ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본다. 결국 유럽 각국은 해외 광산 투자 등 원산지를 다양화하는 현실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자주개발율을 끌어올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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