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한국 공예에 빠진 명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5호 34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최근 1920년대 영국 작가가 만든 상감기법의 도자기를 발견했는데, 그 기법은 한국 (고려청자)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상감기법은 정말 마법 같은 기술이다. 이야기가 담겨 있고, 매력적인 컬러를 갖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7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만난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의 말이다. 2017년 방한 시 달항아리 20개와 조선시대 목가구를 사갈 만큼 한국 공예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요즘은 한국 공예 중 어떤 것에 관심이 있나’고 묻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꺼낸 이야기다. ‘상감기법(象嵌技法)’이란 도자기·목재 따위의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서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은·보석·뼈·자개 따위를 박아 넣는 공예 기법이다. 그런데 이 ‘상감기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샤넬·로에베 등 장인 협업 느는데
우리의 공예 상식 수준은 충분한가

2013년 로에베에 합류한 앤더슨은 브랜드의 전통 계승과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연결을 위해 ‘공예’에 주목하고 로에베 재단과 함께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출범시켰다. 제5회 시상식과 전시회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렸고, 기쁘게도 올해 최종 우승작으로 한국작가 정다혜씨가 만든 말총 바구니가 선정됐다. 당시 수상기사를 쓰면서 ‘말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에 놀라 ‘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이라는 설명을 붙였던 기억이 난다.

해외 명품 브랜드의 한국 공예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샤넬은 재단법인 예올과 손잡고 ‘올해의 장인’에 금박장 박수영을,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 옻칠공예가 유남권을 선정했다. 서울 북촌에 있는 예올 전시장에선 12월 16일까지 두 사람의 작품전 ‘반짝거림의 깊이에 관하여’가 열린다. 샤넬은 향후 5년간 후원사로 참여해 ‘예올X샤넬 프로젝트: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1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가회동에 있는 휘겸재에선 ‘발베니 메이커스’ 전시가 열린다. 정통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가 전통 공예 장인 6명, 현대 공예가 6명과 무려 2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다. 위스키 장인들의 손때묻은 도구들과 한국 장인들의 손길이 함께 어우러진 협업 제품들은 아이디어가 모던하고 세련됐다. 김동식 선자장은 오크통 조각을 합죽선 변죽으로 사용했고, 김춘식 소반장은 나주소반의 다리를 길게 해서 소파 옆에 두고 술 한잔하기 좋은 테이블을 만들었다. 서신정 채상장과 소병진 소목장은 위스키 병을 둘 선물함과 장식장을, 정해조 옻칠작가는 유려한 곡선의 잔을, 조대용 염장은 공간을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하게 장식해줄 대나무 발을 제작했다. 6인의 현대작가들 역시 한국 공예의 미래를 보여줄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위스키를 흘려 적절히 스며든 한지로 조명을 만든 권중모 한지공예가의 작품은 가을 낙엽으로 덮힌 산수화를 연상케하는 동시에 은은한 위스키 향까지 불러서 특히 눈에 띄었다.

12월 11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선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 전시·영원한 아름다움’이 열린다. ‘에그 체어’ ‘스완 체어’ 등으로 유명한 덴마크 명품가구 프리츠한센의 주요 컬렉션과 4명의 공예장인, 3명의 현대 디자이너가 함께한 ‘코리아 프로젝트’를 전시하는 자리다. 결은 다르지만 지난 11월 1일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서울의 역사적 상징인 경복궁 보존사업을 위해 3년간 후원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자타공인 ‘명품’임을 내세우는 핵심은 타협하지 않는 장인 정신과 헤리티지다. 젊은 세대를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때론 길거리 패션·문화와도 손을 잡지만, 명품 브랜드로서 진정한 가치를 발하는 순간은 장중하고 미려한 공예 예술과 만났을 때다. 이렇게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공예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있는 지금,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는 과연 이 협업 프로젝트들을 충분히 감상할 만큼 한국 공예에 대해 알고 있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