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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사용 많은 ICT 기업 ‘탄소빚’ 쌓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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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SK텔레콤은 ICT 복합문화공간인 ‘팩토리 가든’에서 SK의 넷제로 달성을 위한 그린에너지, 친환경 반도체, 클린 솔루션, CCUS(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 등 9가지 항목을 소개 한다. [사진 SK텔레콤]

SK텔레콤은 ICT 복합문화공간인 ‘팩토리 가든’에서 SK의 넷제로 달성을 위한 그린에너지, 친환경 반도체, 클린 솔루션, CCUS(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 등 9가지 항목을 소개 한다. [사진 SK텔레콤]

“통신업체를 탄소배출 무상 할당 대상으로 인정해달라.”

지난달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장관과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요청했다. 정부의 탄소 할당치보다 실제 배출량이 적어 아직 배출권을 구매할 필요도 없었던 LG유플러스는 왜 이런 요구를 들고 나왔을까.

◆무슨 일이야=지난 3월 시행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해야 한다. 2050년 탄소 실질배출량을 0으로, 즉 넷제로(net zero)에 이르기 위한 중간 목표(NDC)다.

정부가 국내 탄소배출 총량을 줄이기 위해 쓰는 핵심 수단은 배출권 거래제다. 2015년부터 주요 기업별로 연간 온실가스 배출 한도를 할당하고 그 규모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제공해왔다. 실제 배출량이 할당받은 규모보다 적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팔 수 있고, 할당량보다 배출량이 많은 곳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매입해 주어진 기준치를 맞춰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주는 배출권도 전부 무료는 아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 1기(2015~2017년)에는 정부가 전량 무상 제공했다. 그러나 기업의 탄소저감 활동을 촉진한다는 목표 아래 2기(2018~2020년)에는 전체 배출권의 3%, 3기(2021~2025년)에는 10%를 경매 등을 통해 기업이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원자재 수출입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 축적이 불가피한 업종 등 일부 업종은 계속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 KT구로타워 옥상에 구축 된 태양광발전소에서 KT 직원이 RE100 가입을 알리고 있다. [사진 KT]

서울 관악구 KT구로타워 옥상에 구축 된 태양광발전소에서 KT 직원이 RE100 가입을 알리고 있다. [사진 KT]

◆이게 왜 중요해=탄소빚 관리가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산업 특성 때문에 ICT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대부분 ‘간접 배출’이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30 NDC 상향안에 따르면, 국내 전체 전력 생산의 68.7%(2018년 기준)는 석탄·LNG 기반 발전에서 얻고 있어 기업의 전력 사용량도 탄소 배출량으로 환산 적용한다.

현재 ICT 기업 중 배출 할당 대상은 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네이버. 이 중 지난해 배출권 관련 비용을 지출한 기업은 SK텔레콤과 네이버 두 곳이다. 이들 기업이 배출권 구매를 위해 지난해 지출한 예산(배출 부채)은 10억원 안팎으로 아직은 규모가 크지 않다. 네이버만 해도 연간 영업이익의 0.001%(7억1000만원) 수준이었다. 문제는 사업이 고도화할수록 전력 사용량도 늘어 ‘탄소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무상 할당? 통신사는 왜=본업인 통신업 경쟁력을 키울 수록 탄소배출량이 늘어난다. 통신 품질의 핵심 인프라인 네트워크 장비가 ‘전기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5G는 LTE보다 데이터 전송량이 많은 대신 전파 도달거리가 짧아, 5G 가입자가 늘수록 통신사는 더 많은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운영해야 한다. 현재 통신사 배출 온실가스는 연간 100만~130만t이지만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배출권 구매에 11억원을 쓴 SK텔레콤은 2030년에는 관련 비용이 2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이라 추산한다. KT도 탄소 관련 비용으로 2025년 310억원, 2030년 1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유플러스도 이르면 내년부터 배출권을 구매해야 할 상황이다.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이 통신업종을 탄소 배출 무상 할당 대상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탄소 중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부로선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럽연합(EU) 등 탄소 중립에 적극적인 국가들은 정부 제공 배출권도 유상 할당으로 전환하는 추세”라며 “일정 수준의 재정적 부담은 기업의 탄소감축 활동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출권 사면 될텐데?=철강·정유업계 등 제조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는 기업들은 재료·공정 방법을 개선해 탄소 배출을 직접 감축한다. 반면 ICT업계는 장비 가동률을 낮추지 않는 한 배출량을 대폭 감축할 수 없으니 배출권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국내 배출권 시장은 규모가 작고 현물거래 위주여서 가격 변동성이 큰 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 3만5000원대였던 2021년물 탄소배출권(KAU21) 가격은 지난 6월 1만3350원까지 떨어졌다가 이달 초 1만9500원대에 거래를 마쳤다. 구매 시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계획 수립에 고충이 크다는 불만이 나온다.

ICT 기업은 20~30년 내에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카카오는 2040년, SK텔레콤·KT는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전력 효율을 높이는 ‘그린 ICT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SK텔레콤은 3G와 LTE 통신장비를 통합 운영하는 ‘싱글랜’ 기술로 연간 1만t 이상의 탄소 배출권을 인정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옥과 데이터센터의 전력사용량을 줄이거나(KT), 건물 밖 찬 공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냉방장치 가동을 대체(LG유플러스)하기도 한다. 통근버스와 법인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네이버, 카카오)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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