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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으로 강요된 아이돌 성공 공식 깨고 싶었다”[민희진 인터뷰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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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뉴진스(NewJeans)가 데뷔했다. 이 그룹을 소개할 때 딱 한 문장이면 족하다. ‘민희진 걸그룹’ . ‘천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날린 민희진의 포트폴리오엔 무려 소녀시대ㆍ엑소ㆍ에프엑스ㆍ레드벨벳 그리고 샤이니가 들어있다. SM엔터테인먼트 시대를 뒤로하고 하이브로 자리를 옮겨 레이블 어도어(ADORㆍAll Doors One Room)를 만들었고, 뉴진스는 이의 첫 결과물이다.

'어텐션' 뮤직 비디오 촬영이 진행된 스페인의 한 해변에서 뉴진스 멤버와 민희진 대표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해린, 민지, 혜인, 하니, 다니엘, 민 대표. 사진 민희진 제공

'어텐션' 뮤직 비디오 촬영이 진행된 스페인의 한 해변에서 뉴진스 멤버와 민희진 대표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해린, 민지, 혜인, 하니, 다니엘, 민 대표. 사진 민희진 제공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K팝 데뷔 공식을 깨고 뮤직비디오부터 공개하는 전략으로 3개의 타이틀곡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단숨에 제일 궁금한 K팝 걸그룹으로 떠올랐다. 데뷔 앨범 ‘뉴진스’는 정식 음원 발매 이전 실시된 예약 판매에서 사흘 만에 44만장을 기록, 신인 걸그룹 기록을 경신했다. 음원 공개일인 5일 바로 주요 음원 사이트 차트에 진입해 앨범의 4곡 모두 상위권(10일 현재 스포티파이 한국 톱 50, 1·2·3·6위, 멜론 톱 100, 3· 13·51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현실로 만들어 낸 민희진 대표를 만나 제작 과정과 전략에 관해 물었다. 대면 인터뷰는 지난달 뉴진스 데뷔 전에 진행했고, 데뷔 이후엔 서면 등을 통해 추가 질의했다. K팝 아이돌 성공 공식과 전략을 만드는 데 기여한 주인공이 이를 버리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는 점,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일 중독자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개 소감부터. 예상한 반응 그대로인가. 혹은 그 이상. 
결과적으로는 예상대로의 반응인 것 같다. 그런데 또 이렇게 단답형으로 표현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오해인가.
너무 자신만만하다는 오해. 자신감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고민이 없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정 하나하나마다 신중을 기해 결과적으로 예상대로라고 해도 결코 과정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한꺼번에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 데뷔 공식 깨는 전략이다.  
공식을 싫어하는 편이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문화란 공식이 없는 것에 더 가깝다. 티저의 본래 역할은 궁금증 유발인데, 어느 순간부터 관성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이미 많은 관심 속에 데뷔하는 것이기 때문에 티저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호기심 때문에 최초 공개 콘텐트에 대한 버즈(buzz)량이 가장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 최대 관심사는 그 호기심을 유의미한 효과로 전환하고 싶은 것이었다. 내게 호의적이든 아니든, 궁금해서 한 번은 볼 테니까. 그 한 번의 호기심을 우리 음악을 보고 듣는 기회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내가 선보이고자 한 새로운 콘셉트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대한 효과를 설명한다면.
내가 선택한 곡들이 기존 K팝 아이돌 음악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래야 했다. 좋은 곡이라 하더라도 낯설면 학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음악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여러 번 듣게 하려면 유인 요소로 뮤직비디오가 필요했고. 멤버들을 꼭꼭 숨겼다 공개하는 터라 오히려 사전 정보 없이 공개해야 멤버 식별을 위해서라도 뮤비를 여러 번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부러 멤버 이름을 첫날 공개하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멤버들에 대한 검색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름이 공개된 두 번째 뮤비를 보면서 첫 번째 뮤비를 동시에 찾아볼 것이라 기대했다. 일부러 스타일링을 전혀 다르게 했기 때문에 얼굴 인식에 혼선이 생겨 비교해 보고 싶을 것이니. 또 그로 인해 자발적 버즈가 형성될 수도 있고. 팬덤이 전무한 상태로 출발하는 신인팀의 관심 유지를 위해선 단기간 내 팬덤 확보가 관건이라고 생각해 이런 학습 전략이 필요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팬덤은 빠르게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오래 기다려 준 팬들을 애태우거나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팬덤 확보를 바라면서 상응하는 팬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간을 보거나 이유 없이 뜸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아이돌 데뷔 공식을 모두 덜어낸 민희진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그룹명·멤버 프로필 공개, 티저, 뮤직비디오로 이어지는 기존의 프로모션 방식을 깨고 그룹명과 함께 공개된 ‘어텐션’(Attention) 뮤직비디오는 공개 9시간 만에 7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9일 현재 1200만을 향해 달리고 있다. 뮤직비디오 4편을 연이어 공개하고, 별도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포닝)을 따로 운영해 초기 팬덤을 결집하고 있다. 예상을 깬 등장 방식에 대중은 멤버 찾기에 몰입했고, 하이브 주가는 데뷔 첫날에만 6% 이상 뛰었다.

콘셉트, 비주얼에 특화·한정된 개념 아냐 

‘음악이 콘셉트’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의 작업을 기다려준 분들은 대부분 콘셉트를 기대하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콘셉트를 비주얼에 특화, 한정된 개념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지금은 매체가 엄청나게 다양화되고 시각화 기법이 넘쳐나는 시대다. 뒤집어 생각하면 뭘 내놔도 더는 새롭게 느껴지기 어렵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동시대성을 무시하고 비주얼라이징(visualizing)에만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다. 좋은 그림을 그림 한장으로 볼 때와 음악이나 공간 등 체험을 더 해 봤을 때 체감되는 감상의 폭은 확연히 달라진다. 모두가 기대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구현을 위해서는 비주얼적 요소는 기본, 플러스알파가 필요했다. 그래서 매력적인 음악이 필수였다. 그리고 내가 음악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기대치가 없던 시장의 고정관념이 흥미로운 반전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감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거다. 음악을 고르는 감각은 만드는 능력과 무관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콘셉트’란 의상, 음악, 뮤비, 사진 등 한 가지 요소로 성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는, 요소를 꼽을 수 없이 복잡한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나게 하는 게 비로소 좋은 콘셉트이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프로듀서로 일하는 것은 어떤가.
내가 독자 레이블을 운영하려고 했던 이유도 온전히 음악 때문이었다. 매력적인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금세 뒤흔들어 단시간 내 감상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보통 시각적 구현 영역과 음악을 구분하고, 나 또한 십여 년을 그런 환경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더 갈급함이 컸다.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음악으로 구성된 음반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개인적 욕구도 있었지만 분명 어떤 사명감도 있었다. 설명이 복잡한, 그래야만 했던 나름의 당위가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외부 간섭을 받지 않는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에 독자 레이블을 출범한 것이다. 내가 작곡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어도어의 음악은 한 가지 스타일로 규정하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레이블) 독립권 보장이 유일한 협상의 조건이었다.  
음악이 K팝스럽지 않다.
그간 ‘히트하려면 이래야 한다’ 라는 어느 정도 공식화된 기존의 K팝 스타일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아 온 느낌이었다. 당연시 돼 온 그 공식을 깨고 싶은 일종의 반항심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대중성’의 개념 또한 반복 학습된 결과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장된 성공을 위해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을 지향하는 것이 업계 종사자로서도 안타까웠기 때문에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 기존의 스타일이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았던 것도 있고. 나는 어디서든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공엔 법칙이 없다. 그런데 ‘내 말이 맞다’ 주장하려면 공식에서 벗어난 스타일도 대중에게 어필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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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회사 내부 반응은 어땠나.
멤버 구성을 확정한 직후,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해 내가 원하는 음반 방향성과 기획 내용에 대해 청음·브리핑하는 시간을 가졌다. 멤버들이나 구성원들 모두 호 반응이었다. 공교롭게도 하이브 내에선 ‘밋밋하다’. 라거나 ‘대중성 없는 스타일’이라는 의견이 꽤 있었다. 기존의 ‘K팝 아이돌 문법이 아니라 히트가 어려울 것’이라 단언하는 의견도 들어봤고. 개의치 않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했고 선택한 곡에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더 빨리 선보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감만으로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순수한 의미에서 내 도전에 대한 실제 반응이 정말 궁금했다. 좋은 결과로 말할 수 있게 되어 비현실적인 느낌도 있고, 뭉클하다.

제작자와 그룹 멤버, 비즈니스지만 감정·합 중요 

팀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다면.
전체적인 조화. 생각하고 고려할 지점이 상당히 많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억지스럽지 않은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 우리도 함께 일하기 힘든 동료와 매일 만나며 일하는 것은 곤혹스럽지 않나. 외모의 합도 중요하지만 서로 성격이 어느 정도 맞고, 팀 분위기를 깨지 않는 조건이 필수였다. 이기적인 성향은 팀 분위기와 모두의 의욕을 저해한다. 즐겁고 밝은 에너지의 건강한 팀을 지향했기 때문에 이에 부합한 인원으로 구성했다. 우리는 서로의 비전, 의지에 대한 신뢰가 있다. 계약 기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비즈니스적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로봇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멤버들 간의 합 외에도 실제 그들을 리딩하는 제작자와의 합 또한 중요한 것이다.  
뉴진스는 시대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의미와 새로운 유전자(Genes)라는 각오를 동시에 담았다. 사진 어도어

뉴진스는 시대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의미와 새로운 유전자(Genes)라는 각오를 동시에 담았다. 사진 어도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일 때와 레이블 대표일 때 차이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전 직장에서도 타인들의 고정관념보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업무 영역이 훨씬 넓었다. 하지만 대표의 역할은 정말 다른 영역의 일이다. 대표라는 직함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일면 대표이사라는 호칭은 오히려 내 실제 역할을 흐리기도 한다. 나는 프로듀싱 총괄이 목적인 사람이다. 음악, 안무 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분야의 결정권을 갖기 위해선, 즉 총괄 프로듀싱을 하기 위해선, 대표이사직이 필수였다. 뉴진스의 론칭은 내게 프로듀서 데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총괄 프로듀서로서의 역량 발휘에 온 힘을 다했다. 모든 제작 과정에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대표이사로서의 책무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밸런스를 잡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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