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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꿈틀대는 붓질…그림은 평면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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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미술 전시장에 자주 가는 사람은 안다. 기술이 발달해도 도록이나 디지털 이미지로 본 그림과 전시장에서 직접 본 그림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최근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의 온라인 뷰잉 전시가 늘었지만, 보는 사람이 발품 팔아 직접 마주하는 그림을 대신하지 못한다. 회화는 공간의 분위기, 캔버스의 실제 크기와 표면 질감, 색채의 조화로, 2차원 평면이라는 한계를 넘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중견 작가의 묵직한 회화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요즘 미술시장에서 관심이 뜨거워진 조각가 출신 화가 심문섭(79)과 재불 작가 윤희(72)의 개인전, 그리고 재독 추상화가 샌정(59)의 개인전이다. 최근 막을 내린 김지원(61·한예종 미술원장)의 개인전도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 단단한 팬층을 확보한 이들은 최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심문섭, ‘제시-섬으로’의 일부,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x130㎝. [사진 각 갤러리]

심문섭, ‘제시-섬으로’의 일부,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x130㎝. [사진 각 갤러리]

심문섭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물(物)에서 물(水)로’라는 제목의 전시를 6월 6일까지 연다. 지난 15년간 그린 회화 40여점을 선보였는데, 현재 이번 전시작 절반 이상이 새로 교체됐다. 컬렉터들이 그만큼이나 몰렸다. 이번 달 6~10일 열린 아트페어 테파프 뉴욕에서 세계적인 컬렉터가 산 것으로 알려져 해외 시장 가능성도 커졌다.

심문섭의 회화는 입체적이다. 온통 푸른색과 추상적 이미지로 바다를 표현했는데, 물감과 붓질의 흔적이 캔버스를 차곡차곡 쌓였다. 이번 전시엔 큰 캔버스로 작업한 대작이 주를 이루고, 그중 한 작품은 큰 캔버스 6개를 합친 크기로, 가로만 5m 82㎝에 이른다.

경남 통영 출신인 심 작가는 조각 작업을 주로 하다가 15년 전부터 바다가 내다보이는 고향 작업실에서 회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바다를 그리되 바라보고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라며 “내 뇌리에 각인된 바다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것은 캔버스 표면에 살아 있는 푸른 물감의 결이다. 캔버스에 유성물감으로 밑칠한 뒤 그 위에 수성인 아크릴 물감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1965년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70년대엔 전통 조각 개념에 반발하는 ‘반(反)조각’을 주창하며 전위적인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 펴낸 시화집 『섬으로』에서 작가는 “바다는 아름다움의 고향이다”라고 썼다.

윤희(Yoon-Hee), N° 43,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00x150㎝. [사진 각 갤러리]

윤희(Yoon-Hee), N° 43,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00x150㎝. [사진 각 갤러리]

윤희는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에서 개인전 ‘스스로(By Itself)’를 열고 회화 12점을 선보이고 있다. 조각 작업을 해온 작가가 회화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대형 캔버스에 역동적 움직임을 생생하게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전시 제목 ‘스스로’는 작품이 ‘스스로 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국내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작가는 “나는 조각을 한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형상이 드러난다고 한다”며 “내 모든 작업에선 내가 물질을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오도록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희는 조각 작품으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얻었다. 2019년 아트 바젤 홍콩에서 그의 원구형 금속조각 4점이 완판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의 작품을 눈여겨본 독일 코블렌츠 루드비히 미술관장의 초청으로 6월 11일~8월 21일 독일에서 큰 개인전을 연다. 1950년 개성에서 태어난 윤희는 이화여대 서양화과(학·석사)를 졸업했고, 8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다. 리안갤러리 전시는 6월 25일까지, 대구 인당뮤지엄 전시는 7월 10일까지.

김지원, 풍경화, 2022, 린넨에 오일, 53x65㎝. [사진 각 갤러리]

김지원, 풍경화, 2022, 린넨에 오일, 53x65㎝. [사진 각 갤러리]

전시는 26일 끝났지만, 김지원 개인전도 빼놓을 수 없다. ‘맨드라미 작가’로 유명한 그는 이번에 맨드라미 외에도 물과 불, 레몬 등 다양한 연작을 선보였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물줄기, 강렬한 햇볕 아래 엉켜있는 풀과 나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그림이다. 캔버스에서 맨드라미 꽃과 풀이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것처럼, 분수에서 솟는 물줄기의 에너지와 모닥불 열기도 존재감이 남다르다.

김지원은 꽃과 풀, 물과 불, 무엇을 표현하든 보는 이에게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 즉 생성과 소멸의 서사를 돌아보게 한다. 김 작가는 인하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 미술학교를 졸업했으며, 2014년 제15회 이인성 미술상을 받았다.

샌정(Sen Chung),10 Untitled, 2022, 캔버스에 오일, 117x91㎝. [사진 각 갤러리]

샌정(Sen Chung),10 Untitled, 2022, 캔버스에 오일, 117x91㎝. [사진 각 갤러리]

내면의 풍경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해온 샌정은 이번에 초이앤초이 갤러리에서 ‘고독’(Solitude)을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다. 여백 미가 두드러지는 그의 추상은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바탕에 기하학적 형태의 빨강·파랑·노랑 등 친근한 색채가 어우러져 서정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샌정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영국 첼시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뒤셀도르프에서 작업하고 있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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