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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연민사이…검사에게 눈물이 있는가[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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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한 인간을 처벌함에 앞서 ‘정의’와 ‘인간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간혹 정의(justice)는 객관적인 반면 연민(compassion)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의도 반드시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남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정의의 상대성 때문에 정의만 내세우다가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검사가 인간에 대한 연민 만을 앞세우다가는 법질서가 실종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레미제라블」정의와 연민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다. 동명의 뮤지컬 한 장면. 중앙포토

빅토르 위고의 소설「레미제라블」정의와 연민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다. 동명의 뮤지컬 한 장면. 중앙포토

‘정의’와 ‘인간에 대한 연민’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정의를 포기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추종하는 이념이 절대적 정의라고 하여 그 이념에 위반한 내 가족을 밀고할 수 있다면 한 줌의 가소로운 정의를 위하여 인간은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형법 제151조는 범인을 도피시킨 사람을 처벌하면서도 ‘가족이 범인을 도피하게 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법은 냉혹하고 엄정함에도 이른바 범죄자 처벌이라는 정의 실현을 넘어서는 가족 간의 인간애를 존중하는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레미제라블』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가운데, 정의와 연민에 관한 주제도 담고 있다. 장발장은 은(銀)식기를 훔친 자신에게 미리엘 주교가 베푼 관용으로 새사람이 되나,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쫓기던 장발장은 혁명군에 체포된 자베르를 처단할 권리를 가지게 되지만 자베르를 놓아준다. 그 후에도 계속 장발장을 쫓던 자베르는 결국 장발장을 체포하지만, 그 또한 놓아주게 된다.

자베르는 자신이 믿어왔던 정의와 가치관이 무너진 것과 법의 엄중함을 믿어왔던 자신이 법을 어긴 것에 충격을 받는다. 한평생을 정의롭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그는 자신의 정의에 대한 원칙이 장발장의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에 무너지게 되자 센강에 몸을 던진다.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감옥에 집어넣는 것과 이미 교화돼 자비와 사랑으로 세상을 밝게 만드는 것 중 무엇이 소중한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북송시대 문장가 소동파는 22세 되던 해에 과거에 응시해 제출한 답안지에서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로서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인자함은 지나쳐도 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過乎仁, 不失爲君子, 過乎義, 則流而入於忍人. 故仁可過也, 義不可過也)”라는 문장을 적어 냈다고 한다. 천 년 전 사람이 20대 초반에 이러한 글을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뉴스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뉴스1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확증 편향에 갇힌 검사가 정의를 실현한다는 미명하에 과도한 검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한 번 걸린 김에 전 생애를 뒤져서 반드시 처벌해내고야 마는 별건 수사가 대표적이다. 별건 수사와 더불어 야만적 수사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수사의 동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는 행위와 사법적 판단이 이뤄지기도 전에 여론 재판으로 유죄를 확정시키는 포토라인 세우기 등이 있다.

검찰 등 수사 기관의 이러한 행위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소동파는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해진다고 했는데, 지나친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루소는 『인간불평등론』에서 “만일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의 지주로서 연민의 감정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 모든 덕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이 정의를 포함한 모든 덕성을 가졌더라도 연민의 감정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상의 일반인도 그러할 진데,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검사는 자신이 정의 그 자체라고 자부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더더욱 괴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검사들은 검사 선서를 통해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지난 5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검사들은 검사 선서를 통해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지난 5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검사들은 검사 선서를 통해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검사윤리강령 제10조는 “검사는 인권보호수사준칙을 준수하고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하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관계인을 친절하게 대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하여 친절하고 따뜻한 검사를 주문하고 있다.

선배 검사 중 존경받는 분들은 남보다 많은 사람을 구속하고 엄벌에 처한 검사들이 아니라 수사받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면서도 그들에게 인간적인 존중을 보인 검사들이었다.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줌으로써 신뢰를 얻는다면 비록 그 검사에 의해 구속되더라도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승복할 것이다.

검사는 별건 수사, 피의사실 공표, 포토라인 세우기 등 야만적 수사 방법이 아닌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 등 인권 존중의 수사 방법을 통해 국가형벌권을 신중하게 행사함으로써 법의 정의는 세우되 그 권한이 잔혹하게 행사됐다는 평가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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