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비준안 제출 1년 뭉갠 산업부, 한국 ‘관세 왕따’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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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중앙포토]

한국·중국·일본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모두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내년 1월 1일 발효된다.

하지만 한국은 국회 비준 시기를 놓쳐 ‘첫차’를 타지 못하게 됐다. 정부가 이 협정에 서명한 지 약 1년 뒤에야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는 등 국내 절차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관세 장벽 철폐를 목표로 추진하는 RCEP의 발효가 늦어질수록 관세 혜택을 받는 시기도 그만큼 미뤄진다.

협정문에 따르면 RCEP는 6개 이상의 아세안 회원국과 3개 이상의 비아세안 서명국이 아세안 사무국장에게 비준서를 기탁하고 60일이 지나면 해당 국가에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지난달 2일 싱가포르 등 아세안 6개국과 비아세안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한 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가 자국 내 비준을 마쳐 조건을 충족하면서 내년 1월 1일 발효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과 함께 아직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내년 1월 1일 발효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10월 1일에야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했으며, 비준안은 현재 법안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비준 뒤에도 실제 발효까지 60일이 더 걸리기 때문에 아무리 서둘러도 내년 1월 말은 돼야 발효가 가능하다.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 RCE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개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년 11월 RCEP에 서명한 15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6조 달러(약 3경901조원), 인구는 22억7000만 명, 무역 규모는 5조6000억 달러(약 6656조원)에 이른다. RCEP가 최종 출범하면 전 세계 인구와 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메가 FTA’가 된다. 자동차 부품과 농산물 등의 관세 철폐, 지식재산권 보호 및 전자상거래에 관한 공동 규칙 적용 등 폭넓은 분야가 대상이다.

사실 한국은 이미 RCEP 서명국 중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13개국과 양자 간 FTA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의 ‘간접적 FTA 혜택’이 RCEP의 핵심이 됐다. 하지만 상대국인 일본은 내년 1월 1일 RCEP ‘첫차’를 타고 먼저 출발한다.

청와대가 RCEP 서명 직후 “경제협력 강화, 한국 산업의 고도화 등을 모색해 코로나19 극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는데도 ‘정시 출발’이 불가능해진 건 이례적이다. 전윤종 산업부 통상교섭실장도 지난달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저희가 지금 상당히 늦은 편이 됐다”고 시인했다.

RCEP 협상 전반과 국내 절차 등을 맡아온 산업통상자원부는 농업 등 국내 산업에 미칠 파장 분석과 보완 대책 마련이 지난 9월쯤 끝나 10월에야 비준안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3만 쪽의 협정문 전체를 번역해 국회에 제출하고 예산 협의를 하는 데도 시일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RCEP는 이미 2019년 12월 타결됐고 최종 서명이 지난해 11월 이뤄져 준비 기간이 1~2년 있었다.

국회도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비준안을 제출한 10월 1일은 국정감사 기간이라 즉각적인 심의가 어려운 데다 대상 자료가 협정문을 포함해 모두 15만 쪽에 이르러 물리적으로 심사가 쉽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16일 법안소위에서 처리가 무산됐다. 외통위는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12월 1일 RCEP만을 논의하는 ‘원포인트’ 법안소위를 열기로 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