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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어떻게 돈에 오염됐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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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21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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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캐피털리즘
이승현 지음
아트북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면 사람들이 요트를 타기 시작한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496달러. 4년 뒤에는 4만 달러에 이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 3만 달러 시대 아이템이 요트만은 아니다. 책의 저자는 1인당 3만 달러는 본격적으로 미술품 수집이 가능한 경제적 여력이 생기는 단계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사치이겠으나, 저자 말대로라면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거실마다 한 점씩, 국민 컬렉터 시대인 것이다.

그런 추세에 발맞춰 미술품 시장을 기웃거리는 당신. 곧 실존적 위기에 봉착한다. 대체 무얼 사야 하는가. 현대미술은 왜 이리 난해한가. 값은 또 왜 이리 비싼가.

무얼 사야 하는지, 속 시원히 안내해주는 책은 아니다. 왜 이리 난해한가도 충족되기 어렵다. 남은 하나, 왜 이리 비싼가는 알려준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게 말이다. 제목처럼 미술과 자본, 그것들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동시대 미술과 미술 제도, 이를 둘러싼 경제적 배경을 박진감 넘치게 훑고 있어서다. 대학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금융업계로 진출해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을 상대로 자문·컨설팅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생겨 홍대에서 박사 공부까지 한 다음 전시기획 일을 하며 미술 논문을 쓴다. 미술과 돈, 이론과 실물을 두루 섭렵한 셈이다.

베네치아의 궁전을 개조한 팔라초 그라시 미술관.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세웠다. [사진 아트북스]

베네치아의 궁전을 개조한 팔라초 그라시 미술관.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세웠다. [사진 아트북스]

책의 앞부분 절반은 이 분야 교양서들에서 익히 봤던 것 같은 내용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같은 책이 떠오른다. 신이나 왕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던 미술이 어떻게 그런 속박에서 떨어져 나왔는지, 미술 시장과 화상(畵商)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을 다룬다. 기시감이 싫다면 건너뛰자.

본격적인 돈 냄새는 책의 뒷부분 절반에서 폴폴 풍긴다. ‘앤디 워홀은 왜 비싼가?’(4장),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미술’(5장), 이런 얘기들을 한다.

돈으로 얼룩진 미술에 관한 한, 책도 그런 취지인 것 같지만, 끝판왕은 아무래도 영국의 논쟁적인 작가 데미언 허스트다. 한 인터뷰에서 돈과 예술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예술은 정말 비싼 가격에 팔린다. 나는 예술이 화폐보다도 가장 힘센 통화라고 생각한다.” 마릴린 먼로, 캠벨 수프 깡통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무차별 복사해 내다 팔아 엄청난 부를 일군 팝아트 스타 앤디 워홀 찜쪄먹는 소리다.

허스트의 무시무시한 발언은,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논리,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한 현대미술의 생존 논리와 놀랍도록 공명한다. 이런 판국에 미술작품의 내재적 가치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야 한다는 소리를 했다간 퇴출당한다. 비싸니까 좋은 작품이다. 황금알 낳는 미술을 두고 거대 자본이 못 할 일은 없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PPR 그룹의 오너이자 유명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가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는 1998년 세계 최대의 미술작품 경매사인 크리스티를 인수했다. 2007년엔 초대형 다국적 갤러리인 헌치 오브 베니슨을 인수했고, 베네치아의 한 궁전을 사들여 초대형 미술관을 세웠다. 작가 발굴과 육성, 전시, 판매, 유통, 컬렉션에 이르는 미술품 상품화 일관 공정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 컬렉션을 자기 미술관에서 전시한 다음 자기 경매사에서 가격을 높여 팔아먹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경제와 미술에 두루 밝은 저자. 이렇게 쓴다.

“양적 완화로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비롯한 각국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미술작품은 통화가치 하락을 헤지할 수 있는 문화적 기축통화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미술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서구 메이저 갤러리는 그들이 전속한 세계적인 작가들과 자신의 권위로 마치 중앙은행과 같은 발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270쪽)

이건 ‘국뽕’ 발언인가. 균형감각을 갖춘 비판적인 발언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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