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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은 中 슬픈 날···"난징대학살날 방중 잡은 건 한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서해 상공을 날고 있던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1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 방중 13일은 난징대학살 추모일 #시진핑 주석, 추모 행사 위해 베이징 비워 #14일부터 공식 일정…정상 만남 시간 줄어 #연내 방중 성사 시키기 위해 어색한 택일

13일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EPA=연합뉴스]

13일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EPA=연합뉴스]

이 날로 80주년을 맞은 난징(南京) 대학살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것이다. ‘난징대학살 희생동포 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추모식은 시 주석과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추모식은 길게 울려퍼진 사이렌 소리에 맞춰 참석자 전원이 묵념한 데 이어 헌화, 제문(祭文) 낭독 등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난징의 주요 건물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시 주석은 난징 기념관 시찰 등의 현지 일정을 마치고 이날 밤 늦게 베이징으로 귀경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이 부재 중인 베이징에서 방중 첫날 일정을 소화했다. 교민 오찬간담회를 시작으로 오후에는 양국 기업인들의 모임인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3일 열린 재중국 한국인 오찬 간담회에서 추자현-우효광 부부와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3일 열린 재중국 한국인 오찬 간담회에서 추자현-우효광 부부와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 주석이 주재하는 공식 환영식과 정상회담 및 국빈 만찬은 모두 14일 오후 동안에 이뤄진다. 이 때문에 두 정상이 만나는 시간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는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빈방문 당시, 도착 첫날 회담과 환영식, 공동 기자회견, 국빈 만찬 등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이튿날에도 시 주석 부부 및 외교담당 각료들과 함께 오찬을 함께 하면서 7시간 이상을 함께 보낸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은 2014년부터 난징대학살 발생일을 국가의 공식 기념일로 제정해 기리고 있다. 과거 역사를 잊지 말자고 강조하는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시작된 일이다.
따라서 중국 전역이 거국적으로 추모 분위기에 잠기는 이 날 국빈 방문을 시작하는 건 외교 관례상 부적절한 일이다. 한국의 현충일에 외국 국빈을 맞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엄숙한 분위기로 인해 외빈을 환영하고 경축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중국 국빈방문 첫 일정으로 베이징 완다 소피텔 호텔에서 열린 재중국 한국인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중국 국빈방문 첫 일정으로 베이징 완다 소피텔 호텔에서 열린 재중국 한국인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왜 이런 일정을 짰느냐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13일은 한국측이 제시한 날짜”라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의 방중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치른다는 원칙에 따라 당초 13일부터 17일까지 4박 5일 일정을 제시했다가 막바지 조율 단계에서 충칭(重慶) 방문 일정을 하루 줄여 16일 귀국하는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제시한 일정인 만큼 중국의 의도적인 외교 결례로 보긴 힘들다. 당초 일정을 짠 당국자가 난징학살 80주년이란 점, 시진핑 주석의 추모식 참석 가능성을 검토했는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13일 택일’은 연내 방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풀이된다.
중국은 18일부터 시 주석이 주재하는 연례 회의인 경제공작회의를 시작한다. 한국에선 같은 시기에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처음인 재외공관장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그 이후로 가면 연말이어서 방중 성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 이전에 방중 일정을 끝내려다보니 국빈방문으로선 어색한 택일이 되고 만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 날 추모식에서는 시 주석이 연설을 하지 않고 위정성 정협 주석이 연설했다.
위 주석은 “일본 군국주의가 발동한 전쟁은 중국 인민뿐 아니라 일본 인민에게도 큰 상해를 입혔다”며 “양국 인민은 다시 오지 않을 평화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중·일 국교정상화 45주년, 내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맞아 중·일 양국 인민의 근본이익에서 출발해 평화·우호·협력의 큰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최근의 중·일 관계 개선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추모식에는 중국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 사절도 참석했다. 노영민 주중 대사도 문 대통령의 지시로 대통령 영접 계획을 바꿔 난징 추모식에 참석했다. 당초 주중 대사관은 주 상하이 총영사관 관계자를 추모식에 보낼 방침이었다. 이튿날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측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추모식 참석자의 격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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