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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향 아찔한 베트남식 해장국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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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28면

▶공(CON)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62-4(서교동 325-2) 전화번호: 02-336-6266 영업시간: 매일 정오~오후 10시(휴식시간 오후 3~5시), 화요일 휴무 주차: 인근 노변(대중교통 권장)

▶공(CON)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62-4(서교동 325-2) 전화번호: 02-336-6266 영업시간: 매일 정오~오후 10시(휴식시간 오후 3~5시), 화요일 휴무 주차: 인근 노변(대중교통 권장)

이 집을 찾아갈 땐 좀 헤맬지도 모르겠다. 알파벳으로 ‘CON’이라고 쓰고 한글로 표기한 베트남 발음으론 ‘공’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경의선 철길을 공원화한 연트럴파크의 홍대쪽 남단에 있다. 네이버지도어플(앱)에는 ‘서교동 CON’이라고 쳐야 산울림극장에서 경의선 책거리로 향하는 길 쪽 위치가 표시된다. 짙푸른 페인트로 칠한 3층 건물 꼭대기에 개구쟁이 두 아이의 얼굴 사진이 걸려 있다. 이들을 베트남 엄마·아빠라면 이렇게 부를 것이다. “공(Con)!” 자녀를 부르는 베트남식 호칭을 사진 간판으로 걸어놓은 집 ‘공’이다.

강혜란의 그 동네 이 맛집 #<6> 서교동 ‘공(CON)’

공에 앞서 ‘안’(ANH)이 있다. 안은 베트남어로 부부가 서로 부르는 애칭이다. 우리말로 여보, 영어로 허니(Honey)쯤 되겠다. 간판 없는 가게는 연남동 ‘안’에서 먼저 시작했다. 공동대표 제이슨(32)과 케빈(29)이 털어놓은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다.

“페인트칠, 타일, 식물 인테리어, 조명까지 전부 직접 했어요. 간판을 제작할 돈이 없어서 각자 엄마 얼굴 사진을 대신 내걸고 유리창에 가게 이름 ‘ANH’을 썼죠. 2호점 공은 콘셉트를 이어가는 차원에서 우리 어릴 적 사진을 걸고 엄마가 부르던 호칭을 가게 이름으로 삼은 거예요.”

1층 카페 왼쪽에 난 계단을 따라 2층 공 입구로 올라가는 길은 파릇파릇한 화분으로 가득했다. 제이슨과 케빈이 직접 심어 기르는 레몬그라스(레몬 향이 나는 허브의 일종)다. 식당 안에도 식물 넝쿨들이 쏟아질 듯 주렁주렁하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면 경의선 옛 철길 양쪽으로 꽃나무가 무성하다. 이 풍경에 반해 지난 6월 이곳에 2호점을 열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알게 된 두 남자가 2013년 나란히 인천에 영어교사로 정착한 지 4년 만이다. 안을 연 것이 지난해 2월이니 확장 속도가 제법 빠르다.

“둘 다 워낙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경기도 안산 다문화시장에서 재료 사다가 즐겨 해먹었어요. 2015년 서울(이태원)에 이사온 뒤로 여러 베트남식당을 가봤는데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맛이 아니더라고요. ‘차라리 우리가 차리면 어떨까’ 뜻이 맞았죠. 안은 처음이니까 대중적인 포(Pho·쌀국수) 위주로 했고요, 공에선 한국인들에게 더 알려주고 싶은 메뉴로 꾸몄어요.”

공의 메뉴는 다섯 개. 국물국수류는 분보훼(bun bo hue) 하나다. 베트남 옛 수도인 중부도시 후에 스타일의 매콤하고 진한 육수의 쌀국수다. 포에 쓰는 얇은 면이 아니라 우동사리처럼 통통한 면을 쓰는데 한국에선 흔히 구할 수 없단다. 선지·사태살·베트남햄이 들어간 분보훼는 굳이 한국식으로 비유하면 해장국수인데, 레몬그라스 등 허브향이 아찔하다.

한국 음식이 연상되는 또다른 메뉴는 반세오(Banh Xeo). 베트남 쌀가루 반죽옷 안에 각종 야채와 해산물이 들어가 있는 일종의 부침개(영어식으론 크레페)다. 혼합식 피시소스라 할 느억짬(Nuoc cham, 피시소스 ‘느억맘’에 설탕·고추·라임·마늘 등을 넣어 만든 소스)에 찍어먹으면 호치민 빈탄시장이 한입에 와삭 씹히는 듯하다.

고이꿍(Goi Cuon·프레시롤), 분넴느엉(Bun Nem Nuong·비빔국수), 껌(Com·치킨라이스) 등 모든 메뉴가 두 사람이 토론토 집에서 자주 해먹던 것들이다. 제이슨은 홍콩과 중국계 이민 2세이고, 케빈의 부모는 베트남 전쟁을 피해 건너온 보트피플이다. 캐나다의 집 이웃엔 라오스·소말리아 등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과 그들이 향수병을 달래며 만든 음식들로 가득했다. 제이슨과 케빈의 부모는 각각 식당을 했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바빴다. 부모를 도와 만두피를 밀고 땅콩껍질을 까는 게 어릴 적 놀이였다. 부모는 “절대 식당은 하지마라”면서 아들이 변호사나 경찰관이 되길 바랐다. 지금 그들은 서울에서 베트남식당을 하지만, 후회는 없다.

“서울 구석진 동네에 있는 우리 식당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는 건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는 할아버지가 오셔서 ‘맛있다’ 하신 적도 있고. 호치민에서 사업했다는 분들도 그 맛이 그리워 오시기도 하고. 한국 음식이 처음엔 삼겹살·떡볶이 같은 게 알려졌지만 이젠 청국장·제육볶음까지 즐기는 외국인들도 많잖아요. 좋은 재료로 깊이 있게 만들면 베트남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다양한지, 그리고 재료를 어떻게 배합하면 더 맛있는지,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모든 음식은 제철 재료로 정성껏 만들 때 가장 맛있다. 신선함이 중요한 베트남 허브를 제때 구하는 게 어렵지나 않을까. 제이슨 말로는 도매업자로부터 연중 공급받지만 제철엔 한국 농장에서도 들여온단다. “한국 농가에 시집온 베트남 신부들 있잖아요. 그분들에게 의뢰해서 재배하는 규모가 꽤 돼요. 베트남 식당 상당수가 그런 데랑 연계돼 있을 거예요.”

전쟁에, 가난에, 또 다른 부푼 꿈에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렀다. 몸만 온 것이 아니라 고향의 맛과 기억, 씨앗도 가져왔다. 공에서 소고기를 오랜 시간 우린 육수를 떠먹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

글·사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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