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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지자체·기업 ‘묻지마 개발’ 참사 … 의정부경전철 결국 파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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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12년 7월 1일 개통한 의정부경전철이 3600억원대의 누적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26일 파산했다. 이날 경전철은 정상적으로 운행됐다. [김상선 기자]

2012년 7월 1일 개통한 의정부경전철이 3600억원대의 누적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26일 파산했다. 이날 경전철은 정상적으로 운행됐다. [김상선 기자]

수도권에서 운행 1호 경전철인 의정부경전철이 개통 4년10개월 만에 3000억원이 넘는 누적적자를 견디다 못해 26일 파산했다. 지방자치단체 등이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기 위해 민간자본을 유치해 온 가운데 민간투자사업이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이용 수요 예측 2~3배 부풀려 #4년10개월 누적적자만 3676억 #민자방식 SOC 사업으론 처음 #의정부시가 수천억 떠안게 돼 #후속책 마련까진 열차운행 계속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업”

서울회생법원 21부(재판장 심태규)는 이날 “운영사인 의정부경전철㈜의 자산 규모(2200억원)에 비해 부채(4795억원)가 지나치게 많고 계속 운행할 가치가 없다. 또 향후 영업 손실을 막을 해결책 모색도 실패했다”고 파산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의정부경전철(장암동~고산동 총 11.1㎞ 구간)은 현재 누적적자 규모만 총 3676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운행하면 할수록 적자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적자의 시작은 수요 예측의 실패였다. 의정부경전철은 1995년 민선 1기 홍남용(2012년 사망) 시장 당시에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장들도 경전철을 유치하거나 건설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사업 추진을 위해 수요 예측이 부풀려진 것이다. 2012년 개통 당시 하루 7만9049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개통 첫해 하루 평균 이용객은 예측의 20%에도 못 미치는 1만여 명에 불과했다.

이의환(52) 의정부경전철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모임 정책국장은 “의정부경전철은 정부의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환상이 커 추진된 것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이라며 “이용객 수익금으로 투자금을 만회하려다 보니 민간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용객을 부풀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추진하는 민간투자사업이 중단될 경우 민간투자자에게 손실을 메워 주는 구조도 적자 폭을 키우는 데 역할을 했다. 의정부경전철은 총 사업비 6767억원 중 사업시행자(민간자본)인 의정부경전철㈜이 52%(3852억원·경상비)를 투자했고 국비(846억원)·도비(46억원)·시비(1199억원)·분담금(824억원)이 48% 투입됐다. 사업시행자로는 지분 47.5%를 보유한 GS건설이 최대주주로, 고려개발 등 7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시와 시행자 사이의 협약에 따라 승객 수가 예상 수요의 50∼80% 안에 들면 의정부시는 경전철 측에 손실금을 보전해 줘야 한다. 하지만 경전철 이용객이 예상 수요의 50% 이하로 밑돌면서 시는 손실금을 주지 않았다. 시행사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의정부시도 2014년 5월과 11월 각각 경로 무임승차제와 수도권 환승할인제를 도입해 승객 수를 늘렸으나 5년차 이용 예상승객 수 11만8000여 명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김동선(교통공학) 대진대 교수는 “경전철 사업을 추진하면 전문가들은 통상 인구 대비 10%를 이용객으로 예상한다. 의정부시 인구 44만 명을 고려하면 4만4000명 정도로 예상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정부와 의정부시는 하루 평균 이용객을 두 배 가까이 잡았다”고 설명했다.

의정부경전철은 법원의 파산선고에도 불구하고 당장 운행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협약에 따라 파산했더라도 시가 안정적인 후속 운영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열차를 계속 운행하도록 돼 있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시가 직영하든, 대체사업자를 찾든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시가 직영한다면 운영비(연간 50억원)와 시행사에 줘야 할 계약해지 지급금(2200억원)을 떠안아야 한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진다.

◆ 다른 경전철은=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의정부경전철과 비슷한 사례가 전국에 많다”며 “이번 파산 사례를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들이 민간투자사업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경전철처럼 적자가 나면 정부나 지자체가 대신 물어줘야 하다 보니 세금이 빠져나간다.

2013년 4월 개통한 용인경전철은 하루 평균 이용객 수가 16만1000명(2004년 한국교통연구원)에서 3만3000명(2010년 경기개발연구원)으로 예상됐지만 현재 실제 이용객은 1만9000~2만 명 수준이다. 이로 인해 용인시는 경전철 관리운영비와 민간투자비 상환금 등으로 매년 450억원 상당을 지불하고 있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도 17만6000명이 이용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실제 이용객은 3만~5만 명에 이르면서 매년 420억원을 지자체가 물어주고 있다.

850억원 이상 투입됐지만 아예 써 보지도 못하고 철거된 인천 월미은하레일은 민간투자 방식으로 관광용 소형 모노레일로 재추진하다 또다시 사업이 중단됐다. 인천시는 소형 모노레일사업을 재정사업으로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이번 일이 다른 사업으로도 번질 수 있다”며 “민간투자로 진행됐다고 해도 엄연한 공공시설인데 갑작스럽게 파산을 하면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정부=임명수·최모란 기자, 김선미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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