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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악귀 씌었다"며 친딸 살해한 엄마 무죄 판결 왜? 심신장애 인정해 1심서 치료감호 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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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의 악귀가 씌었다"며 친딸(당시 25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어머니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대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심신상실 상태 범행 책임능력 없어”“치료 필요” #살해 가담 오빠에겐 “죄질 무거워 엄벌 불가피”…징역 10년 선고 #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1형사부는 7일 살인·사체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어머니 김모(55)씨에게 이같이 선고 및 명령했다. 엄마 김씨와 함께 살해에 가담한 김씨의 아들(피살자의 오빠) 김모(27·직장인)씨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어머니 김씨에게는 징역 20년을, 아들 김씨에게는 징역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살해 행위가 인정되지만 어머니 김씨는 환각·피해 망상·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증세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판단돼 처벌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치료감호 명령 이유에 대해서는 “구속 후 약물치료를 받고 있으나 현실 감각, 의사결정 능력 등에 장애가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아들 김씨에 대해서는 “심신장애 증세를 보인 어머니 김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면서 범행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둔기가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사물 변별력도 있었는데 범행 후 신고조치도 않는 등 죄질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을 빼앗는 범죄는 회복이 안 되는 중대 범죄로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나 초범이고 가족이자 유족들이 선처를 호소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 모자는 지난해 8월 19일 오전 6시40분쯤 경기도 시흥시 자신의 집에서 흉기와 둔기로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사건을 수사한 시흥경찰서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9시쯤  경찰에 살인 사건 신고가 들어왔을 때만 해도 어머니 김씨의 아들이 여동생을 살해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나 경찰의 보기에는 30평대 평범한 아파트 살인 사건 현장은 뭔가 이상했다. 시신의 몸에서 목 부분이 분리된 처참한 상태였다.

당일 오후 피살자의 아버지(54·구두수선공)로부터 경찰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이 자수하기 위해 경찰서로 가고 있다고 알려왔다. 피살자의 어머니와 함께 걸어오는 아들(피살자의 오빠)을 경찰이 체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단독 범행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이 “현장에 엄마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흉기와 둔기를 갖고 오라고 해서 가져갔고 어머니가 흉기로 (여동생을) 찌르고, 나는 둔기로 여동생의 옆구리를 때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아들에게 “왜 죽였느냐”고 물었더니 “애완견(푸들)의 악귀가 동생에게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경찰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재차 되물었더니 “동생이 엄마의 목을 조르려는 행동을 하기에 애완견의 악귀가 옮겨간 것으로 봤다”고 아들이 진술했다.

경찰이 “왜 애완견에게 악귀가 씌었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애완견 푸들이) 갑자기 너무 크게 짖었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개가 너무 심하게 짖는다는 이유 때문에 어머니와 아들·딸은 8월19일 오전 6시30분쯤 3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5㎏ 남짓한 푸들을 흉기로 찌르고 야구방망이로 때려 죽였다고 했다. 애완견을 죽일 때는 딸도 가세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다고 한다. 아들은 “애완견을 죽인 직후인 오전 6시40분쯤 옆에 있던 딸이 손을 떨며 엄마의 목을 조르려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아들은 “애완견의 악귀가 딸에게 옮겨갔다”며 딸을 화장실로 데려가 살해했다고 했다. 악귀가 더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3명은 사건 발생 당일까지 닷새 동안 한 끼도 먹지 않고 굶었다. 사건 발생 당일 세 사람은 거실 마루에 앉아 밤새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안산=전익진·김민욱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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